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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Mar 20. 2019

#12 포르투갈 가정식 음식점 (1)

나른한 오후의 햇살과 라디오 소리

어느덧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있었다.


여행지에서 식사시간은 절대로 거를 수 없다.

나에게는 한정된 시간 동안

돌아가서 맛보지 못할 현지 음식들로

배를 채워야 할 의무이자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문득 오전 벤치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말을 잠깐 나눴던 여성분이 알려준 음식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곳을 찾아갔다.


포르투갈 가정식을 맛볼 수 있다던 곳.

‘Grelha do Carmo’


굳이 번역하자면,

‘까르무의 구이집’ 정도가 될 듯하다.


까르무 수녀원 앞 음식점 (2019, 오건호)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영업 중인지

인기척을 확인하고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곧 종업원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분이

주방에서 나오며 나를 친절하게 맞이한다.


“어서 오세요, 혼자 오셨나요?”


고개를 끄덕이니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안내하고는

누군가를 부르며 다시 주방으로 걸어간다.


나는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비치는

창가 테이블에 홀로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고는

아무 생각 없이 식당 한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테이블 너머 어딘가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포르투갈어라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이 라디오 소리가 좋다.


해외 현지의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그곳에 속해 있는 느낌이 든다.


마치 태아가 엄마의 뱃속에 있으면서

엄마의 언어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음성으로부터 안락함을 느끼는 것처럼.


라디오가 만들어내는 배경음은

정보 전달이라는 본래 목적을 벗어나

이곳의 이국적인 분위기와 화음을 이루며

이미 여기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

지금 이 순간이 일상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시장기가 다른 감각을 조금씩 무뎌지게 하려던 찰나,


식당 안을 메우는 라디오 소리 사이로

곱슬기 있는 희끗한 머리의 남성분이

메뉴판을 들고 내가 앉은 테이블로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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