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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Apr 01. 2019

#15 제로니무스 수도원

정적이 흐르는 수도원 회랑을 걸으며

벨렝(Belem) 지구에 내려 처음 들른 곳은

제로니무스 수도원.


후기 포르투갈 고딕 양식인

마누엘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1495년에 처음 지어져

500년이 넘는 역사를 품고 있는 이 곳은

한 때 부유했던 포르투갈의 국력을 대변하듯

화려하면서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정원이 나오고,


나는 정원의 중간쯤에 멈춰 서서

고개를 살짝 든 채 시선을 앞으로 고정하곤

컴퍼스처럼 몸을 한 바퀴 빙 돌아본다.


컴퓨터로 작업한 것만 같은 회랑의

완벽한 대칭과 반복적 구조에서

절도 있는 기품이 느껴지면서

괜스레 마음이 경건해진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2019 오건호)

회랑 안 2층으로 올라가

조용한 이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정사각형의 회랑 복도를 한 바퀴 두 바퀴 돌아

걷다보니 어느새 내가 여기서 얼마만큼이나

걸었는지 가늠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어쨌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에게도, 어떤 생각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지금 여기 나, 이 시간이

너무 좋을 뿐이다. 더할나위없이 평온한 시간.


그렇게 나는 이곳의 일부가 된 것처럼

나 자신을 잠시 잊은 채 계속해서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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