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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Sep 30. 2019

#37 신트라 여행의 끝

신트라 역, 다시 리스본으로

호카곶에서 403번 신트라행 버스를 타고

신트라 역에 도착해

리스본 호시우 역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기다린다.


여행 지도에는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페나 성, 무어인의 성 등

여전히 가보고픈 곳들이 있지만

이미 앞서 두 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탓에

더 이상 어디를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페나성과 무어인의 성을 못 가봐서 조금 아쉽지 않나요?”


내가 미련이 남은 듯 묻자

그는 웃음기 섞인 말투로 대답한다.


“물론 아쉽죠. 그래도 어느 정도 아쉬움은 남겨두고

가야 그게 여행 아니겠어요.”


여행은 항상 그렇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을 모두 해보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제한적이다.


마치 하고 싶은 걸 모두 다 해보고 살기엔

너무 짧은 인생처럼 말이다.


그래서 여행을 하다 보면 이따금씩

비워져 가는 모래시계 같은 시간의 유한함에

애석함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이러한 아쉬움으로 인해

여행 혹은 인생은 더욱 본질적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과 결정은 가치가 생기고

순간순간 끊임없는 최선의 선택들이 모여

그것이 여행이 되고 인생이 되는 것이다.


아쉬움이 남은 이번 신트라 여행 또한

의미 있는 여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것이

신기루가 되어 나타난 건지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신트라 역 너머 저 멀리 산등성이에 다녀오지 못한

‘무어인의 성’이 보이는 듯하다.


리스본으로 돌아가는 길, 신트라 역


아니면 정말 ‘무어인의 성’인 것일 지도.


여름날인데도 저녁이 되니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그와 나는 승강장 벤치에 앉아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일은 무슨 일정을 계획하고 계세요?”


“저는 포르투로 넘어갈 예정이에요.”


문득 신트라로 오는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포르투를 여행하고 리스본으로 왔다던 말이 떠오른다.


“포르투에서 오셨다고 하셨죠? 혹시 포르투에 추천할 만한 곳이 있나요?”


신트라 여행으로 이미 그에게 신세를 한번 진 터라

약간은 민망함이 들지만 이를 무릅쓰고 그의 도움을 구해본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일단,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니 와이너리에 가보시는 것 그리고...”


“아! 제가 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했었는데 굉장히 좋았어요.” 라며 투어 프로그램 진행자의 연락처를 알려준다.


“정말 신세를 많이 지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그의 호의 덕분에 신트라 여행뿐만 아니라

내일 떠날 포르투 여행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거기에 이 정도는 별 것이 아니라는 무덤덤한

그의 표정에 더욱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뉘엿뉘엿 땅거미가 깔리는 기찻길 선로 위로

리스본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여행이지만, 우연한 인연을 통해 계획된 여행 못지않은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이번 신트라 여행은

더욱 기억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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