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삼동 주택가
구내식당에서 얼른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
회사 근처에 있는 주택가로 나와 정처 없이 걷는 요즘.
매번 같은 산책길을 걷고 있으면
어느 순간에는 걸음이 지루하게 느껴지고는 한다.
갈림길에서 여러 번 변화를 주어 코스 조합을
만들어 보지만,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든지
이미 머릿속에는 전체 도면이 그려지며 그 뒤로
이어지는 뻔한 모습이 감흥을 누그러뜨리는 듯하다.
그러면 곧 지루함을 잊기 위해 친구에게 전화를
걸게 되는데, 고맙게도 그는 항상 별 군말 없이
말동무가 되어주곤 했다. 딱히 할 말이 없더라도
괜스레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러웠다.
하루는 다음번 책출간을 위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는 이전 책을 집필하는데
모든 사유를 쏟아부어버려서 바닥이 드러난 우물 마냥
이제는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모든 말에는 뼈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마다 전달하려는 메세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런 메세지가
내게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글에는 꼭 메세지가 있을 필요가 없다며,
쓰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쓰면 된다고 내게 말을 했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글을 쓰는 것이 과연 괜찮은 것일까
생각하면서도 그에게는 '그래 그렇게 한번 해볼게'라고
답을 전하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대화가 있고 나서 얼마 후,
한동안 읽기를 중단했던 한 시인의 수필집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집어 든 시작과 다르게
책 읽기를 잠시 중단했던 이유는 글을 읽으며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확실한 메세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글이 참 싱겁네.'
나름 문학적 소양이 뛰어나다고 여기는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시인이었기 때문에 큰 기대와 함께
책을 펼쳐 들었지만, 막상 읽어보고서는 눈여겨볼만한
메세지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 몇 개의 글을 넘기고서는
책장에 넣어두고 다시 꺼내보지 않던 상태였다.
그러던 중에 글 속에 메세지를 꼭 넣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고,
그 말에 다시 책을 펼쳐 보기 시작한 것이다.
시인은 자신이 쓰고 싶었던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활자로 풀어놓았으리라. 그저 메세지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로 접어두었던 나의 별 볼일 없는
안목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시인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을 내뱉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사실
자체가 참으로 민망했다.
돌이켜보면 무언가에 대해 항상 의미를 부여하려 하고,
의미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하찮고 경험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글을 쓸 때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날 때에도, 해야 할 일이 주어졌을 때에도,
대부분의 선택에는 얻을 것이 숨겨져 있는지
확인하려는 마음이 앞서 자리 잡았다.
친구가 했던 말을 되뇌며, 시인의 수필집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을 지난 시간 동안 무심코 흘러 보냈던 것들에
다시 덧대어 보았다.
꼭 무언가를 하는 것에 있어서 반드시 알맹이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일은 굳이 그것이
없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일은 그렇게 해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시인의 수필집이 잘 읽혔다. 읽을수록 흥미가 붙었다.
한동안 쓰지 못할 것 같았던 글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지루한 산책을 시작할 때부터
삶은 알려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꼭 '의미'라는 알맹이를 억지로 꿰어 넣을 필요는 없다고.
어떤 일들은 알맹이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그것 자체가 곧 그 일이 가진 의미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얻을 것도 없는 이 지루한 산책을 오늘도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