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 수성동계곡
요즘은 빌딩이 빽빽한 인공숲 대신
진짜 숲을 찾아볼 수 있는 곳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몇 달 동안 파견근무를 온 것이라서
누군가와 점심 약속을 잡아 같이 먹기에는
아는 사람이 없고,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주변을 둘러보는 재미로
산책과 함께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인왕산 둘레길이 있는
수성동계곡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한 손에는 가는 길에 포장 주문한 샐러드 한 상자를 들고서
음식점과 카페가 즐비한 서촌의 골목을 가로질러,
주택가들이 점점 많이 보이는 곳까지 걸어가자
바위가 보이는 조그만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수성동계곡 입구였다.
초록빛 가득한 녹음을 음미하며 벤치에 앉아
샐러드를 먹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예상치 못하게 비가 올 듯 말듯하여
입구를 지났다 다시 돌아가려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결국 나뭇잎이 하늘을 가려주는 벤치를 발견하고선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단 샐러드는 어찌 됐든
처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벤치에 앉아 종이 상자를 열고 자연의 색을 품은
샐러드를 포크로 콕콕 찍어먹기 시작했다.
나처럼 소심한 사람에게는 혼자서,
게다가 벤치에 앉아 취식을 한다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동네 어르신분들이,
여럿 어울려 등산을 하고 내려오시는 아주머니들이,
그리고 나처럼 점심시간을 이용해 산책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직장인들이 벤치를 지나갔다.
그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나는 괜히 시선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고,
행인들이 지나갈 때마다 샐러드에 그리고 벤치 아래에
시선을 번갈아가며 두게 되었다.
한 번은 샐러드를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으며
방향을 조금 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젖은 흙 위로 가득 올라와 있는
새파란 클로버들이 눈에 들어왔다.
클로버를 보면 의도한 것도 아닌데 우선
네잎클로버를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무성한 클로버잎 사이로 혹시나 네잎이 달린
클로버가 있는지 흘깃 훑어보게 된다.
그러던 중, 네잎클로버가 보이지 않으면,
한 때 유행했던 클로버와 관련된 말이 떠올려보게 되는데
벤치 아래에 보이는 수많은 클로버들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네잎클로버의 꽃말이 행운이라면,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입니다.”
학생 때 참 좋아했던 말,
싸이월드 대문에 걸어두기도 했던 말,
이제는 뭔가 진부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그 말이
이번에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는 네잎클로버를 찾아볼까 싶으면서도
늘 내게는 보이지 않았던 사실을 되뇌어보면서
네잎클로버는 누군가 그냥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그냥 실존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게 되었다.
결국 그렇게 본능적으로 네잎클로버를 찾아보려 했다가,
어김없이 떠오르는 말들을 되뇌고선
금세 의지를 내려두고 세잎클로버들을 바라보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행복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웃긴 점은
서너 발걸음 정도 너머에도 한가득 피어 있는
클로버들을 보면서, 그곳에서 다시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느새 네잎짜리 클로버를 찾아 또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더듬고 있었다.
곧장 피곤해진 나는
아예 클로버를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고 아무것도 없는 공(空)을 보자
마음이 다시 차분해졌다.
어쩌면 클로버도 어쩌다 저곳에 피었을 뿐인데,
행복이니, 행운이니 괜한 꽃말을 붙여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클로버 하나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초점을 두면
파릇하고 맑은 하트 모양의 잎이 그렇게도
예뻐 보이는데 말이다.
'토끼가 잘 먹는 풀' 정도로만 알았다면 토실토실하고
귀여운 토끼를 떠올리며 '아 참 예쁘다~'하고
그곳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꽃말이라는 것도,
'행운'과 '행복'이라는 개념도,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만들어낸 표상적인 것인데,
우리는 거기에 너무 집착하여 스스로 불안과 걱정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수성동계곡 입구를 나서며 생각했다.
네잎클로버를 찾는 일이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행운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 뿐이고,
행복을 찾는 것이 허상을 쫓는 것이라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내심 그것을 바라는 자신이 참 한심하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도
'나도 참 너무나도 인간적이구나.
그래서 역시나 나 또한 사람일 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에,
내리막길을 털레털레 걸으며 혼자서 피식 웃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