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밤토끼 May 15. 2022

차선의 쇼핑은 하지 않습니다.

헤드 쉘 없는 턴테이블이라니

고백하자면 나는 쇼핑을 좋아한다. 내 기준에 좋은 것, 첫 번째로 마음에 드는 것, 나에게 어울릴만한 것, 오랫동안 사용할만한 것을 장만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쇼핑이다.  


돈을 벌지 않았던 학창 시절에는 첫 번째로 마음에 드는 것은 내 용돈에 비해 비싼 것들이었다. 늘 욕망의 크기는 용돈보다 컸기에 유사한 모양의 저렴한 것을 대체재로 구입했다. 문제는 이런 쇼핑은 꼭 후회가 뒤따랐다는 것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닌 것에 어중간한 비용을 지불하고 나는 돈을 낭비했고, 나에게 온 물건은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몇 번의 쓰라린 경험 후 나는 차선의 쇼핑은 하지 않다는 원칙을 갖게 되었다.


차선의 쇼핑을 하지 않는다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나에게는 중요한 쇼핑 포인트는 있다. 첫째, 첫 번째로 마음에 드는 것을 구입할 것. 둘째, 첫 번째로 마음에 드는 것이 너무 비싸단 이유로 대체재를 구입하지 않을 것. 셋째, 첫 번째로 마음에 드는 것을 살 수 없다면 쇼핑하지 않을 것.


차선의 쇼핑을 하지 않아 좋은 것은 가장 마음에 드는 (질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 구입하니 오래 사용하고 쇼핑에 대한 후회가 적다는 것이다. 그리고 쇼핑의 횟수도 적다. 유의할  쇼핑의 횟수가 준다는 비용까지 줄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 하지만 어정쩡한 쇼핑을 하고 결국 원픽이었던 것까지 구입한다면 이중 지출하는 것이니 차선의 쇼핑을 하지 않는 덕에 비용이 준다는 것은 일정 부분 타당하기도 겠다.


차선의 쇼핑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의 부작용일까? 아주 가끔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난 저걸 가져야겠어'라는 강한 욕망이 생길 때가 있다. 벼락처럼 떨어진 욕망은 때때로 너무나 강렬해 소유하지 않고서는 해소되지 않을 때가 있다.


어느날 브라운 아틀리에 Hi-Fi 오디오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브라운 아틀리에의 다른 모델에 비해 기계적이고 로봇같은 느낌이 내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놨다.


얼마 전 브런치에 썼던 음악을 소유한다는 것 처럼 나는 여전히 시디로 음악 듣는 것을 즐긴다. 결혼할 때 오디오는 꼭 있어야 하는 필수품이었고 아토모스를 준비하면서도 구매 목록의 첫 번째는 오디오였다.


빈티지 오디오에 감흥이 없었건만 우연히 보게 된 브라운 아틀리에의 Hi-Fi 오디오는 내 마음을 송두리째 가져가 버렸다. 그동안 봐왔던 모델에 비해 기계임을 뽐내는 외관과 시디 플레이가 장착된 브라운 아틀리에의 (심지어) 마지막 Hi-Fi 오디오를 보고 난 뒤 나의 욕망은 그것을 가져야만 사라질 것 같았다. '차선의 쇼핑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까지 있으니 나는 '그것이어야만' 하는 상태가 되었다.


차선의 쇼핑을 하지 않으려면 때로는 인내와 끈기도 필요했다. 남편은 나에게 "물건이 없어요" "꼭 그거야 돼요?"라는 말을 수개월 동안 했고, 나는 남편에게 "없어요?" "더 찾아봐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상하리만치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남편을 채근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 남편에게서 "한국으로 바로 배송을 안 해줘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와 함께 "무게 때문에 배송료가 많이 들어요" "관세도 내야 돼요" "진짜 주문해요?"라는 말도 함께.


2020년 11월에 주문한 오디오는 해를 넘기고 2021년 1월에 서울에 도착했다. 두 개가 세트인 스피커는 각각 따로 배송되었다. 독일업체의 완충제를 보고 꽤나 놀랐다.


차선의 쇼핑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나의 쇼핑 성공 비법과도 같았다. 인내, 끈기, 집착이 콜라보된 브라운 아틀리에의 Hi-Fi 오디오 구입은 나에게 성공한 쇼핑이 되었을까?


뭐라고요...? 턴테이블에 헤드 쉘이... 없다고요??????


오디오를 구입하기 전 나는 송창식 앨범을 LP로 구입했다. 송창식의 <그대 있음에>를 꼭 아날로그적으로 듣고 싶었기 때문인데 도착한 브라운 아틀리에 턴테이블에는 헤드 쉘이 없었다. 주문했던 독일 업체에 헤드 쉘이 없다고 메일을 보냈지만 '보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LP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브라운 아틀리에 Hi-Fi 오디오는 턴테이블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LP를 샀다. 하지만 도착한 제품에는 헤드 쉘이 없었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쇼핑이 아니야!!


헤드 쉘 없는 턴테이블이라니. 내가... 내가.. 고물 쇳덩이를 샀다니. 차선의 쇼핑은 하지 않겠다며 어렵게 구한 오디오는 결국 나에게 두 번의 헤드 쉘 구입 실패를 안겨주었다. 단골손님이 알려 준 세운상가의 헤드 쉘 전문점 사장님은  "독일, 스위스 제품은 헤드 쉘 구하기 어려워요. 걔네는 다른 제품이랑 호환이 안돼요"라고 했다. 나의 브라운 아틀리에 Hi-Fi 오디오 구입은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실패한 쇼핑으로 끝나는 걸까?


그런데 아토모스에 설치된 오디오를 보고 집에 잠자고 있던 CD와 테이프를 선물로 주신 손님이 있었으니 헤드 쉘 부재로 인한 허탈함은 생각지 못한 기쁨을 주기도 했다.


아토모스에 설치된 오디오를 보고 CD와 테이프를 선물로 주신 손님들.


방문객이 나눠 준 CD와 테이프가 쓸모를 찾아 기쁘기도 했지만, 여전히 턴테이블은 쓸모없는 물건인 상태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니 남편은 브라운의 헤드 쉘을 찾아 헤맬 수밖에. 나의 오디오 구입기는 결국 성공으로 끝날까? 실패로 끝날까? 송창식의 <그대 있음에>를 턴테이블로 듣는 날은 언제가 될까? 방문객이 LP 재생을 요청하면 웃는 얼굴로 작동시키는 날은 언제가 될까?


턴테이블은 1년 넘게 작동한 적이 없지만 CD와 테이프는 수시로 재생되고 있다. 아끼지 않고 막 굴리고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 굽는 계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