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우산 7년 만에 고친 이야기
내가 다니던 중학교 근처에는 백화점이 있었다. 더운 여름 하굣길에는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 친구들과 백화점 1층을 한 바퀴 휘~ 도는 것이 일상이었다. '쌈지'가 잡화계를 휩쓸고 있던 시절, 검은색 원단에 진회색 파이핑이 둘러진 3단 우산이 눈에 들어왔다.
2만 원 중후반의 가격이었던 쌈지의 3단 우산은 나의 첫 번째 '소소한 사치'였고, 취향을 반영한 첫 번째 생활용품 구입이기도 했다. 중학생이 3만 원에 가까운 우산을 샀으니 엄마와 친구의 핀잔이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 그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내가 그 우산을 정말 오래 사용했다는 기억은 선명히 남아있다.
한두 번은 쌈지에 A/S를 요청했고, 쌈지가 문을 닫은 후에는 동네 어딘가 우산을 고쳐주는 곳을 찾아 수리를 한 후 사용했다. 쌈지 우산과 이별을 고하게 된 것은 우산천이 접히는 부분이 낡아 우산 안으로 빗방물이 똑똑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산 하나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첫 번째 직장을 다니는 동안 사용했으니 나 자신이 조금 신통하기도 했다.
'기왕이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사서 '오래 사용하자'는 나의 소비스타일은 쌈지우산이 출발점이었던 듯하다. 쌈지우산을 보낸 뒤 totes(토스)라는 브랜드의 우산을 몇 차례 A/S와 수리 후 사용하다 역시나 우산 안으로 빗방물이 똑똑 떨어져 이별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유별난 우산 사랑을.
우산 잃어버리는 법이 없으니까!!
우산을 잃어버리는 법이 없고, 몇 번을 고쳐서라도 끝까지 사용한다는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 핸드메이드 우산 브랜드 Londonundercover의 장우산을 직구했다. 왠지 핸드메이드 우산은 내가 죽을 때까지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야 본전을 뽑을 수 있을 것 같은 가격이기도 했다.
키가 작은 나에겐 제법 큰, 그리고 조금 무거운 우산을 비가 오는 날이면 신나게 들고나갔다. 그런데 웬걸?! 우산 보관이 미흡했는지 우산살의 가장 얇은 부분에 녹이 슬어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뚝 끊겨버렸다. 직구를 하는 바람에 국내에서는 브랜드 A/S가 불가능했고, 우산수리점 몇 곳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각 수리점이 갖고 있는 우산살 사이즈와는 맞지 않아 고칠 수가 없었다.
2015년에 고장 난 우산을 몇 번의 이사에도 버리지 않은 인내의 결과였을까. 얼마 전 드디어 우산수리가 가능한 곳을 알게 되었다.
전화로 수리 가능여부를 확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연흥사를 방문했다. 우산을 고쳐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지만 작은 상점 안 벽에는 우산 수리를 부탁한 사람들의 사연 있는 메모지가 여러 장 붙어있었다. 어디서나 살 수 있고, 쉽게 잃어버리기도 하는 물건이 우산이다 보니 '나 너무 유난인가' 싶기도 했는데 전국 여기저기서 모여든 소중한 우산과 우산에 유별난 사람들을 보니 반가웠다.
7년을 고장 난 상태로 있던 우산은 30분 만에 수리가 끝났다. 내 우산은 받침살 끝부분에 녹이 생겨 똑 끊겨버린 상태였다. 수리가 끝난 우산은 어디가 교체되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말끔히 수리되어 있었다.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산수리 장인이 있었는데 이제야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 억울할 정도.
집으로 돌아와 지저분한 부분을 닦아주고, 우산띠 기능을 상실한 늘어난 고무줄도 교체했다. 말끔해진 우산을 보니 7년 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우산수리와 고무줄 교체 비용은 새 우산 하나 살 정도의 가격이었지만 오랫동안 버리지 못한 우산에 대한 나의 집착과 애정에 비하면 적은 비용이었다.
그리고 연흥사로부터 '우산 잘 사용하는' 팁을 듣게 되었다.
바닥에 놓인 상태에서 우산을 살짝 벌려준 후 활짝 펼칠 것(수동 우산의 경우)
- 오므려져 있던 우산살을 한 번에 펼치면 우산살에 충격이 간단다. 그러니 한 번에 펼치지 말라고.
우산짚기는 금지(장우산 해당)
- 우산을 지팡이 사용하듯 땅바닥을 탁탁 짚으면 우산대에 충격이 가해진단다. 나무로 된 우산대는 쪼개질 수 있고 이런 경우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연흥사의 당부는 우산에 유별난 나에겐 아주 반가운 정보였다. 그 동안은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 '우산 말리기'만 알고 있었으니.
일상생활용품인 우산을 대하는 연흥사의 자세를 보며 관찰과 관리가 동반된 물건은 소모품 이상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올해 나에게 가장 큰 기쁨과 웃음을 준 것이 우산수리였으니 물건을 관찰하고 관리하는 행위는 '내 삶을 돌보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번에 수리한 우산은 쌈지우산 보다 더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기왕이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소비해야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소비원칙을 고수하게 하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의 놀라운 폭우로부터도 나를 조금 더 지켜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