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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밤토끼 Feb 18. 2022

책임감 빼면 시체

가치 찾기와 동기화하기

(*카페 겸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 '아토모스' 오픈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일 하는 동력을 물어보면 늘 농반진반으로 "열정은 없고 책임감으로"라고 답했다.


조직에서 일할 때는 타인으로부터 역할 요구가 있거나 일의 방향성에 동의가 되었을 때 매우 강한 책임감이 발휘되었다. 그러나 개인사업자가 되기로 결심한 후에는 상황이 매우 달라졌다. 개인사업자에게 역할을 요구하는 조직은 없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도 없다. 방법은 스스로 방향성과 가치를 찾아 동기화하는 수밖에 없다.


카페 겸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를 운영하기로 결정했으므로 큰 방향성은 생겼지만 순간순간 스쳐 지나는 생각만으로도 카페와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의 공존은 모순덩어리 같았다. 그래서 김경준(남편)과 단둘이 운영할 작디작은 매장을 준비하면서 어떤 가치를 어떤 이유에서 지향할 것인지를 찾기 시작했다.


커피와 카페 영역은 전문가인 김경준이 있었고, 기본적으로 품질 좋은 커피를 판매한다는 명쾌한 지향이 있었던 반면 제로 웨이스트 영역은 사전 학습 없이는 준비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평소 소소한 의식적 실천과 무의식적 습관이 친환경 라이프 스타일에 조금은 닿아있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까지 운영할 동기로는 충분치 않았다. 더욱이 제로 웨이스트 방식으로 카페도 운영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탐색과 정신무장이 꼭 필요했다.


매장을 준비하던 2020년에는 바이러스와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다양한 수위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손쉽게 정보를 찾고 학습할 수 있었다.

매장을 준비하며 주로 보았던 책들. 몰랐던 내용이 많아 책을 읽는 동안 현타가 수시로 왔다. 조효제 선생님의 <탄소 사회의 종말>은 다른 의미로 정신이 리프레시 되는 느낌을 받았다


제로 웨이스트 실천서부터 문제를 진단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사회과학서적, 연일 보도되던 관련 기사들 덕분에 환경문제에 대한 막연한 위기감이 실질적 위기감과 책임감으로 전환되어 동기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날의 경험과 학습 효과를 통해 김경준과 생각을 나눈 후 우리는  Good Quality / Eco Friendly / Welcome All을 매장 운영 가치로 결정했다.


각각의 가치를 지향하기로 한 이유는 아래와 같다.


Good Quality

우리를 통해 이루어진 소비는 제품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취지를 갖고 있더라도 결국 영리 행위를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좋은 품질을 지향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 나의 일 경험에서도 선한 취지만으로는 지속력이 확보되지 않았다. 나 역시 취지만 좋아서는 반복적으로 돈을 지불하지 않는 냉정한 소비자가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 경험으로 만족할 수 있는 질 좋은 상품을 소비할 때 과잉 소비를 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에서 가능하면 내가 먹었을 때 맛있다고 생각되는 것, 사용감이 좋다고 느껴지는 제품을 소개하기로 했다.


Eco Friendly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를 염두에 뒀을 때부터 친환경은 필수적 가치였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많은 고민이 되었다. 첫 번째는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쓰레기 양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카페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소비행위를 촉발시켜야 하는 상업 매장과 친환경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우려. 심지어 생각이 너무 깊어져 바리스타를 업으로 하는 김경준에게 커피로 인한 탄소배출을 운운하며 우리가 하려는 일이 모순적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래도 학습의 효과가 있었던지 친환경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시에 김경준은 상당히 어이없어하면서도 나의 정신머리를 잘 잡아주었다. 결국 지나치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Eco Friendly를 지향하며 매장을 운영하기로 했다.


Welcome All

아토모스를 운영하기 전 나는 사회복지사, 마을공동체를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 활동가, 협동조합 동물병원인 우리동생에서 일을 했다(우리동생은 반상근으로 10개월 정도 짧게 일했다). 내가 일 했던 모든 조직이 차별을 반대하고 다양성과 생명권을 지향하는 곳들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운영하는 매장도 다양한 사람과 동물을 반기는 공간이길 원했다. 그래서 Welcome All도 중요한 가치로 삼기로 했다. Welcome All이라는 표현은 다이애나랩이 진행하는 프로젝트 <차별없는 가게>에서 따왔다. 차별없는 가게는 우리가 지향하고 지지하는 것이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어 반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였다.

그림 출처 : 차별없는 가게


위 세 가지 가치는 매장 준비가 본격화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늘 고려하고 있다(때때로 내가 내 발목을 잡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매장 공간 어디에도 Good Quality / Eco Friendly / Welcome All을 써붙여놓지 않았지만 방문객들이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느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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