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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밤토끼 Feb 25. 2022

아토모스? 무슨 의미예요?

브랜드 네이밍 하기

(* 카페 겸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 '아토모스' 오픈 과정과 운영기를 글로 씁니다.)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한다. 자아가 형성되기 전 선택권 없이 부여된 이름이지만 내 성격과 잘 어울리는 것 같은 이름이라 좋다. 브랜드 네이밍을 할 때 나름 고심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마음에 쏙 드는 이름을 지어준 할아버지와 그 이름을 선택한 엄마에게 감사하다.


'아토모스(ATOMOS)'라는 브랜드 네이밍을 하는데 두 계절을 보냈다.  나는 평소에 브랜드명의 의미에 대해 궁금했던 적이 많지 않았다. 애초에 브랜드명에 호기심을 가진 적이 없거나, 의미와는 별개로 무엇을 하는 곳인지 대충 짐작되는 곳들이 많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매장을 오픈하고 아토모스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름을 잘 지은 것일까? 잘못 지은 것일까? 늘 긴가민가하다.


아토모스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다. 원자의 영어식 표현인 atom의 어원이기도 하다. 나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것이 '본질'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매사 진정성 있게 살고 싶고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본질로 잘 지켜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투영되어 장고 끝에 브랜드명을 '아토모스'로 결정했다.


브랜드 네이밍을 할 때 고려했던 사항은 아래와 같다.   

흔하지 않지만 그리 어렵지 않을 것

너무 길지 않을 것. 가능하면 다섯 음절 이내

발음이 쉬울 것

하는 일을 짐작할 수 있을 것

브랜드 정체성이 담길 것

유사업종에 동일한 브랜드명이 없을 것

카페와 제 웨이스트 스토어를 포괄할 수 있을 것

이미지화에 용이할 것


결과적으로 우리가 선택한 아토모스는 고려사항 모두를 충족하지 않는다. 특히나 브랜드명만으로는 하는 일이 짐작되지 않아 아쉽지만, 우리가 갖고 있던 몇 개의 안 중 브랜드 정체성을 가장 잘 담고 있어 만족하기도 한다. 직관성보다 추상성을 선택할 때마다 나는 상업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둔 브랜드명은 '우연한 산보'였다. 우리 부부는 골목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관광객이 거의 없는 골목길을 걷다 보면 취향에 맞는 공간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동네 사람만 다니는 골목에 조금은 생뚱맞아 보이는 공간들이 만들어내는 정취가 늘 좋았고 괜히 나만 그곳을 아는 외지인이 된 것 같아 기뻐했다. 이런 낭만적인 이유에서 언젠가 '우연한 산보'라는 이름의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우리 부부의 꽤 오래된 로망이었다.  2018년부터 김경준(남편)은 바리스타로 일하며 좋아하는 문구를 직접 수입하여 네이버 스토어에서 판매를 했다. 현실 세계에 공간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는 '우연한 산보'를 브랜드 명으로 사용했다.

<우연한 산보>는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명이기도 하다. 우연한 산보의 주인공이 문구회사 직원인 것을 보면 문구점 이름으로 우연한 산보는 꽤 좋았다.


현실 세계의 공간을 운영하기로 한 후 우연한 산보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브랜드명으로 결정됐다. 매장 운영을 결정했던 아주 초기에는 김경준(남편) 혼자 운영할 카페 겸 문구점을 준비하기로 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굉장히 들뜬 마음으로 로고를 셀프로 만들고 공간의 이미지도 상상했다.

셀프로 만들었던 서정적 수필집 느낌의 우연한 산보 로고. 오른쪽 사진은 커피와 문구가 함께 있는 현재 아토모스의 모습.


결국 브랜드명을 우연한 산보로 하지 않은 것은 매장 운영 방향성이 카페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로 변경된 것이 가장  이유였다. 우연한 산보가 주는 정서적 평안함매우 좋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이 브랜드명에 녹아있지는 않았다.    가지 이유는 유사한 이름의 매장이 이미 있었고 일본식 표현인 산보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이름 따라 방문객이 정말 '우연히' 찾는 매장이 될까 겁이 나기도 했다.


우연한 산보 외에 우리를 스쳐간 이름 중 진지하게 고민했던 후보 중에는 가득, nevertheless 등이 있었다. 가득은 '가치를 득하다'는 의미와 빈 용기에 내용물을 가득 채운다는 이미지가 떠올라 후보로 삼았다. 하지만 카페 이미지로 가득은 와닿지 않았고, 제로 웨이스트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덜 소비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가득이라는 브랜드명은 어긋남이 있었다. 역시나 신나게 로고까지 만들었지만 결에 어긋나 패스.  


마음에 드는 브랜드명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평소에 좋아하는 말인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영어 단어인 nevertheless를 후보로 생각하기도 했다. 브랜드명을 생각한 후에는 늘 국내 포털사이트와 구글에서 유사업종 중 해당 브랜드명을 갖고 있는 곳이 있는지를 검색했는데 nevertheless라는 이름의 카페가 이미 있었다. 그래서 또 패스. 딱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지 이때는 로고까지 만들진 않았다.


한 동안은 출퇴근하던 버스에서 늘 브랜드명을 생각했다. 그러다 겨울이 다 되어서야 아토모스라는 단어를 우연히 찾게 되었다. 고려했던 8가지 기준 중 절반은 넘어갔다. 인테리어도, 로고도 셀프로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미지화도 조금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열심히 셀프 로고 작업을 했다.


첫 번째, 두 번째는 김경준이 만든 로고(나는 디자인을 입으로만 했다). 마지막 로고는 리플릿 디자인과 제작을 한 스투키 스튜디오의 작업물이다.


직관성이 부족해 매장 입구에 조금은 긴 설명을 붙여놓아야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담은 브랜드명이니 그것대로 만족이다.  


구구절절한 시트지 작업을 하며 언제가 이 설명들이 조금 더 간결해지길 바랬다.


그래도 언젠가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사람들이 아토모스가 하는 일을 알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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