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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장 제이 Oct 10. 2019

그림 읽어주는 남자, 인생을 읽어내는 법

미술사 전문 강사 이창용 대표의 10문 10답

인생에는, 삶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 있다 해도 누구나 똑같이 걷지는 않을 테고, 그 어떤 누구는 초행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불안과 두려움에 힘없이 주저앉기도 한다. 한데 그는 뭔가 남다르다. 거침이 없다고 해야 할까. 가지 않은 길마저 미련도 후회도 없어 보인다. 믿는 만큼, 다가가는 그 걸음만큼, 자신만의 세상을 마음껏 그려내는 그의 얼굴~. 아직은 청년인데, 그 눈은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깊은 빛을 지니고 있다.     


01. 유럽 미술사 전문 강사로 요즘 강연이 많다고 들었다어디서 어떤 주제로 강연 하나.

사원들 복지 차원의 인문학 강좌를 기획하는 기업에서 미술사 강의를 한다. 평소 접하기 쉽지 않은 미술사를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치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중이다. ‘이 작품을 작가는 어떤 상황에서 그려냈을까’~. 작가가 환생해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서는 지금은 그 상황과 감정을 유추해낸 학설만 있을 뿐이다. 정답은 없다. 작가는 세상에 없고, 저마다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만 있을 뿐이니, 이 또한 미술의 세계이자 매력이다.      


02. 바빠서 휴가도 없이 여름을 지났을 것 같다. 

강의했던 아카데미 회원들과 6월 말과 7월 초에 프랑스로 미술 기행을 다녀왔다. 7박 9일, 12박 14일~ 결코 짧지 않은 여정이었고 여행사가 예약 업무는 도왔지만, 나머지 일정과 동선 등 일일이 다 체크하고 결정해야 했기에 몸무게가 한 4kg 감량 된 것 같다. 올해엔 더는 여행 안 해도 될 것 같다(웃음). 8월 초에 사흘 정도 강의 없어 쉬긴 했지만, 이때도 오롯이 쉬진 못한다. 늘 다음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다.      


03.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인상파 거장전(2005)’, ‘바티칸 박물관전(2012)’ 등의 전시 참여 경력이 눈에 뛴다게다가 미술과 클래식의 콜라보아트 콘서트도 진행했다던데.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을 ‘도슨트(Docent)’라 한다. 바티칸 박물관전에는 현장 큐레이터 일까지 겸했다. 유럽에선 클래식 음악도 접할 기회가 적잖이 있었다. 특정 계층의 전유물 같은 국내 클래식 환경은 미술과도 묘하게 비슷하다.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미술 작품을 설명하고 이에 맞는 음악을 클래식 팀이 연주하는 것으로 기획했는데, 반응이 좋아 두 번째 무대를 준비 중이다. 


04. 2006년 로마로 어학연수를 떠났다가 생활비를 벌기 위한 수단이 지금의 일이 됐다

사학 전공 중에 이탈리아 문화와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단돈 27만원 들고 떠난 셈이니, 아르바이트가 절실했다. 현지 술집에서 일 하던 중에 가이드 하는 한국인과 조우했고, 바티칸 박물관에서 다시 만나 그 일을 곁에서 보게 됐다. 관람객에게 바티칸 박물관을 소개하는 그 모습에서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기에, 보다 더 잘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 바로 지원했다.      


05. 군복무와 남은 학업 때문에 2008년 귀국했다제대 그리고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까지 했는데도 2013년 다시 프랑스로 떠난 이유가 뭔가.

시력이 안 좋아 군 면제였지만 라식 수술을 받고 재검을 받아 해군 장교로 복무를 마쳤다. 장교 출신이기에 나름의 덕을 보고 좋은 회사에 입사도 했지만 도슨트 일만큼 성취감이나 만족감이 없었다.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우러러보는 직업도 아니지만, 관람객에게 뭔가를 알려주고 깨우치게 하는 그 쾌감과 희열은 조직에선 절대 기대할 순 없다. 이 때문인지, 도슨트는 한번 발을 들이면 쉽게 못 빠져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06. 군 면제인데도 수술까지 강행한 후다시 신검 받아 군에 간 것부터 범상치 않다

천안함 피격, 연평도 해전이 터져 군 생활 자체는 녹록치 않았다. 때때로 땅도 치고, 가슴도 치며 내 무모한 도전을 자책했다(웃음). 물론 지금 떠올려보면 그 시간과 경험마저 인생의 값진 밑거름이었다. 한데 1년의 직장 생활 후 남들과 같은, 빤한 앞으로의 인생만 보였고 내겐 어울리지 않는 걸 확인했다. 더 늦기 전, 내게 맞는 일을 찾아 길을 나서야했다.      


07. 파리에서의 5년 여 시간원하던 일과 길을 찾은 것 같다.

파리는 유럽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심 도시이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오랑주리 미술관 등에서 수없는 공부와 경험을 했다. 시간이 주어지면 인근 유럽 도시의 박물관과 미술관도 차례로 방문했다. 더 나아가서는 현대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까지 비행기 타고 여러 차례 다녀오면서 한국에서의 일을 하나씩 구체화 시켜갔다. 도슨트는 매력적이지만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 안정적인 생활면에서 분명, 한계도 있다. 그리고 만족감은 강의를 하는 지금이 훨씬 크다. 도슨트는 미술관 등에서 허락된 시간, 장소 등의 제약이 있지만, 지금은 주어진 강의 시간 안에 준비한 만큼, 내 역량 그대로를 충분히 전할 수 있다.      


08. 2년 전 돌아왔고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유럽 미술사 전문 강사가 됐다.

미술이 지닌 사상의 시대적 흐름, 즉 사조를 다 읊는다면 철학과 역사 등을 같이 언급해야 한다. 어려운 공부는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있다. 난 쉬운 쪽을 택했다. 첫 질문에도 살짝 답했지만, 후세에 세상이 다 아는 작품을 남긴~ 그 작가의 인생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제아무리 유명 작가이긴 하지만, 당시엔 작가도 고달픔이 많은 희로애락이 있던 비슷한 인간이다. 작가가 어떤 감정으로 이 작품을 탄생시켰는지에 대해 논하다보면, 보다 쉽게 공감하고 공유하게 된다.      


09. 어렵고 난해한 미술을 쉽게 읽어주는 남자그 준비과정은 간단하진 않을 것 같다.

2시간 강의를 위해 하루에 열 시간 투자한다면 꼬박 두 달 걸린다. 자료 찾고 번역하고 감수 받는 것까지 상당히 고되고 지난한 시간이다. 내가 만든 회사 이름이 ‘아트스토리 105’인데, 목표는 105개의 아트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100도 아니고 왜 105냐면~, 여기저기서 많이 사용한 빤한 숫자 말곤 없나 하던 찰나, 해군장교 105기 출신이었던 것이 떠올랐다(웃음). 현재 15개까지 진행했으니 앞으로 90개는 더 만들어야한다. 가야 할 길이 멀다.      


10. 미술에 관심이 있든 없든 일반적인 사람이라면여행 중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접하는 미술이 유일한 기회이다문제는 너무도 크고 넓어 금방 지친다

전시물을 보는 건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작품 수만 40만 점이 훌쩍 넘는다. 각 작품을 2초씩만 본다고 해도 122일쯤 걸린다. 따라서 대형 박물관과 미술관을 갈 때면 미리 홈페이지 등을 통해 온라인 투어를 먼저 해보는 게 좋다. 미술 사조일지 스타일일지, 어떤 작품 위주로 볼지를 정하곤 전시실 위치를 파악하면 동선도 많이 줄어든다.


그림 읽어주는 남자의 인생을 읽어내는 법, <이창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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