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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영혼 <올가 토카르축 글, 요안나콘세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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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하라

『한 남자가 도시 변두리에 작은 집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어요. 다른 아무 일도 하지 않았죠. 머리가 길게 자라고 수염이 허리에 닿을 무렵에야 그의 영혼이 숨을 헐떡이며 남자를 찾아왔어요. 그 후로 남자는 영혼이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올가 토카르축 『잃어버린 영혼』 , 사계절





내 영혼은 어디쯤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까요? 내가 잠든 시간에도 쉬지 않고 오고 있을 영혼을 위해 일찍 잠을 자야겠어요. 나는 아직 내 영혼을 기다리고 있을 의자가 없답니다. 온종일 뒹굴뒹굴 놀 시간도 없고 꽃들에 물을 줄 시간도 없어요. 그래서 내 정원에는 물이 많이 필요 없는 다육이와 선인장과 스투키같이 뾰족한 것들만 있어요. 꽃을 피운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이 그림책에서처럼 시계를 땅속에 묻어버리면 그 속에서 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온종일 소음에 시달렸어요. 그런 날이면 일찍 잠을 자고 싶어요. 내 몸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 영혼이 내 옆에 올 때를 잠으로 기다립니다. 자지 않는 시간이면 난 뭐라도 하려고 할 테니까요. 새벽에 겨우 도착한 영혼의 발소리에 잠에서 깹니다. 우리는 천천히 함께 책을 읽어요.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잦아드는 순간 행간마다 글자마다 마디마디 쉼표가 있어요. 그 쉼표 속으로 들어가 꽃잠을 자고 나오는 영혼의 윙크에 잠시 설렙니다. 영영 잃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행간마다 꽃 숨을 쉽니다. 그런 소소한 시간이 주어지는 새벽 시간이 저는 가장 행복하지요. 그 시간이 내 영혼과 함께 하는 시간임을 알았습니다.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치통이 있는 밤이었어요. 이가 아픈 것은 헐거워진 내 몸에 아직 영혼이 당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요.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아 글자가 잘 안 보이는 것도 아직 영혼이 당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요. 그런 날이면 두 손으로 아픈 이가 있는 곳을 감싸고 두 눈을 감고 기다려보자고요. 사람은 사실 130년은 살 수 있도록 만들어졌데요. 그러려면 몸과 영혼이 같이 가야 한대요. 오래 살고 싶어서 하는 말은 아니에요. 길게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책 속에 남자는 일을 아주 많이, 빨리하는 사람이었어요. 영혼을 어디 멀리 두고 온 지 오래되었지요. 마치 수학 공책의 가지런한 모눈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평평하고 일정한 삶을 살았어요. 오늘도 열심히 사는 나처럼요. 그런데 이 남자가 ‘몸속에 이미 어떤 사람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거예요. 자기 이름도 잊어버렸지요. 의사를 찾아갔어요. 현명한 의사가 말해줬어요.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들은 그래도 자기가 주인을 잃었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은 보통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지금부터 잠을 좀 많이 자기로 했어요. 매일 12시까지 일하지는 말자고 했어요. 어디선가 나를 찾고 있을 영혼에 대해서 알게 되었거든요. 나를 위해 의자를 하나 내놓을 생각이에요. 가끔 거기에 앉아서 먼 하늘도 올려보고 숲에서 잠 깨는 새의 소리도 듣겠어요. 시계 같은 것은 잠시 땅에 묻겠어요. 내 정원에도 꽃이 피어나길 기다리는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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