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몬트의 흙, 저 아래 어딘가에 우리 아빠 헤븐 펙이 묻혀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땀을 흘리며 당신 소유로 만들려던 땅속 깊은 곳에. 하지만 이제는 땅이 아빠를 소유하게 되었다." 우리는 무언가를 갖기 위해 한 생을 바치기도 합니다. 가장 위대한 죽음은 '자기가 가지려 했던 그 무언가에 자신이 묻힌다는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땅이든 글쓰기이든. 방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책들을 봅니다. 나는 그 책들을 소유하고 있으나, 어느 순간 그 책들이 나를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 저는 지금 로버트 뉴턴 펙이라는 아이의 성장 이야기를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 아이가 아빠를 보내는 순간의 의젓함과 최초의 소유물이었던 돼지의 죽음을 집도해야만 하는 그 순간을 느껴보면서요. 그리고 그 아이의 아빠가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것들을 어떻게 사랑하며 살았는지를 다시 더듬어봅니다. 이 세상에 바늘 하나 꽂을 땅도 갖지 못했던 나의 부모님은 평생의 노력으로 자신들이 소유한 땅에 묻히셨어요.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 아버지는 화장한 엄마의 유골함을 보며 휘청하셨지요. 그리고는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해 화장하시고 가족 납골당을 만드신 후 땅의 높이보다 아주 조금 높은 평장을 만드셨어요. 그곳에 어머니를 묻고 자신의 빈자리를 만드셨죠. 그 모든 것들을 마무리하시고 꼭 10개월 후에 엄마 곁으로 가셨어요. 마치 그 마지막 일들을 다 이루셨다는 듯. 심장이 멈추셨죠. 아버지는 알고 계셨나 봐요. 수술을 받으러 가시기 전에 꼭 한 번 눈물을 흘리셨거든요. 우리는 그날도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시계를 돌리고 있었죠. 지금도 그런 것처럼. 로버트 뉴턴 펙은 열세 살이에요. 아버지는 돼지 잡는 일을 했죠. 아버지는 글을 읽을 줄 몰라 투표를 하지도 못하지만 속상해하지 않아요.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우리는 부자야. 우리에겐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 주는 가족이 있고, 농사지을 땅이 있어. 그리고 언젠가는 이 땅이 완전히 우리 것이 될 거야." 글자도 모르는 아버지이지만 꼬마 돼지 핑키를 키우는 아들 로버트의 세계는 아버지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버지가 죽은 후 로버트는 아버지가 쓰신 연장들을 아버지가 잡던 각도로 잡아봅니다. 그리고 그 연장 그릇 안에 이름 쓰기 연습을 한 종이 한 장을 발견합니다. '헤븐 펙' 반복해서 쓴 글자 가운데 하나는 거의 완벽에 가깝습니다. 누렇게 바랜 종이를 조심스레 다시 넣어둡니다. 엄마의 유품들을 정리하다 엄마가 쓰던 오래된 수첩과 마주했던 기억이 나네요. 몸이 유난히 약해 학교를 가지 못했다는 엄마는 한글을 독학으로 떼었어요. 그리고 주민센터에서 하는 문예학교에 나가 글짓기를 배우기도 했죠. 그 수첩에는 엄마의 이름과 우리들 이름과 생시가 적혀 있었고 로컬 푸드에 낸 작물 이름과 수량이 적혀 있었어요. '고춧닢 5봉, 풋고추 10봉, 빨강고추 5봉, 쑥갓 10봉' 엄마의 전 생애가 그 수첩에서 꿈틀거렸어요. 로컬 푸드에 물건을 내는 일은 모든 것이 셀프라 컴퓨터도 다룰 줄 알아야 했는데 서툰 나에게 맡기지 않고 손수 그 일들을 척척해냈죠.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썼던 일기장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계셨어요. 이제 나는 엄마의 수첩을 간직합니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아버지는 헛간에서 자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감기가 심해져서 가족들과 자지 않고 헛간에서 잤던 거예요. 죽기 전까지 돼지를 잡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로버트의 아버지. 로버트는 꼭 한 번 "아빠"라고 불러봅니다. 그리고는 "괜찮아요. 오늘 아침에는 푹 주무세요. 일어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아빠 일까지 다 할게요. 더 이상 일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제 푹 쉬세요."라고 말하죠. 평생을 노동으로 살았으나 세상에 부끄러울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던 나의 엄마. 너무 많은 것들을 주고 가신 나의 부모님께 내가 드릴 수 있는 건 부끄러움 없이 한 세상을 살다가는 것이리라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휘청거리는 하루를 살았으나, 다시 오뚝이처럼 설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소유하고 싶었던 삶으로부터 소유당하는 삶이 되고자 열심히 땅을 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