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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Apr 03. 2024

숲에서 불어오는 달큰한 소리

2024 통영국제음악제 4.2(화) 21:30 디오티마 콰르텟, 조인혁

    오로지 브람스(1833-1897)를 듣기 위해 이 한밤중의 공연을 예매했다. 브람스의 클라리넷은 내 마음속에 깔려있던 고요함을 꺼내어 한껏 느끼게 해 준다. 브람스의 음악을 듣다 보면 마음 한편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진실된 행복이 몰려오기도 한다.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브람스의 음악엔 불완전한 애틋함과 끝을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달려가는 불안함이 담겨있는데 이런 감정들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더 낭만적으로 만든다. 브람스 음악의 매력이다.


무대가 끝난 후 5명이서 쪼로록 서서 인사를 전했다. 첼로가 키가 큰 연주자에 비해 참 작아보인다. 




    이 날의 브람스는 클라리넷 5중주 b단조. 클라리넷과 현악 4중주, 즉 클라리넷, 바이올린 1, 바이올린 2, 비올라, 첼로. 이렇게 다섯 명이서 호흡을 맞춰 연주를 한다. 연주 처음엔 클라리넷이 워밍업이 필요했는지 약간 어색한 감이 있었지만 점점 연주가 무르익어가면서 하나의 소리로 뭉쳐졌다. 브람스가 1891년 58세의 나이로 작곡한 클라리넷 5중주는 말년에 작곡을 해서인지 초기의 당찬 느낌과는 조금 다르다. 마치 수많은 케이크를 먹어 보았지만 티라미수를 먹는 순간 앞서 먹은 케이크 맛이 사라지고 티라미수의 농밀하고 찐한 맛이 띵-하고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그런 느낌이다. 브람스의 음악은 눈에 띄게 자극적이거나 강렬하지는 않지만, 한마디로 진하다.

    '브람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갈색, 초콜릿, 나무, 바람, 가을 그리고 사랑 등이 있다. 특히 클라리넷이 어우러진 브람스의 음악을 듣다 보면 깊은 음색의 선율을 타고 숲 속을 유영하는 바람이 된 듯한 착각이 든다. 이렇게 길게 표현을 늘어놓았지만 정말로 듣다 보면 빠져든다. 우울하면서도 동시에 하늘이 맑고 푸른 가을과 같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본 작곡가들은 대부분이 굉장한 천재들이다. 그 천재 작곡가들은 너무나도 천재인 나머지 자기만의 세계가 자기 자신을 가득 채워 세상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 적응을 쉽사리 하지 못하거나 극단적으로는 정신병을 얻어 실제로 세상을 일찍 떠나게 되는 것이다. 여러 작곡가의 음악을 비교하며 듣다 보면 이 작곡가는 음악이 음량이 컸다가 몇 마디 후에 바로 작아졌다가 아이고 정신사나워 너무 들쑥날쑥하네, 너무 비참한데, 이런 음악 작곡하면 미치겠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는 창작이 불가능한 음악들이 있다. 조울증이 심각해 다리에서 뛰어들어 요절한 독일의 낭만주의 작곡가 슈만, 그리고 자살시도를 했다가 자신이 위대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끝까지 살아낸 베토벤 등등 음악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예술사를 들여다보면 요절한 천재들은 수두룩하다.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면 다른 작곡가들보다 비교적 인생이 무던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이 안정적이고 묵직하다. 음악을 들으며 머릿속이 복잡해지거나 감정이 요동치는 일이 많지 않다. 브람스는 산책을 하며 머리를 환기해 맑은 정신상태로 있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음악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난다. 브람스는 우울하지만 자기비판적이며 좀 무뚝뚝하지만 낭만적이어서 가끔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농담도 어색하게 던지는 요즘 말로 츤데레(?)인 할아버지의 느낌이 든다.

    오래된 음악을 들으면 작곡가는 이미 죽었지만 그가 남긴 음악을 듣고 작곡가와 이야기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브람스와는 산책을 자주 한다. 그러다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며 심각하게 토론을 하다 다음에 또 만나자며 얘기를 급하게 마무리 짓고 서로의 갈 길을 간다. 이번 연주회에선 브람스와 밤거리를 걷고 어두운 카페에 들어가 또 심각하게 심야 토론을 했다.




    음악은 세계의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과 통하는 강력한 언어이다. 나는 독일어를 모르고 브람스는 한국어를 모르지만, 음악이라는 공통된 언어이자 예술을 통해 서로 공감하고 대화한다. 디오티마 4중주 단과 클라리넷 연주자 조인혁은 나에게 브람스의 음악을 차분하지만 힘 있게 들려주었다. 연주자가 서로 힘을 주고받아 음악을 쌓아나가는 모습에서 삶의 활기와 열정을 얻는다. 통영의 미래사 편백 숲에서 달콤한 공기를 마시는 듯,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갈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디오티마 4중주단과 조인혁의 클라리넷 중주를 들으며 마치 심야의 카페에서 편한 쇼파에 앉아 음악을 듣는 느낌을 받았다. 좋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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