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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 산에 뜬 달 May 30. 2023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나의 삶

아니 에르노, 얼어붙은 여자

아니에르노는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다. 1974년 <빈 옷장>을 첫 작품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 <얼어붙은 여자>는 소녀의 탄생부터 성장, 결혼과 출산 양육과 직업생활을 하는 동안의 불균형과 소외의 순간을 수집하고 기록한 책이다. 250여 페이지의 비교적 얇은 책임에도 책장을 넘기기 어려웠다. 많은 문장에 나의 경험과 과거가 대입되고 소환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억들과 감정들. 그녀는 그녀의 인생에서 경험을 길어올렸을텐데 왜 이다지도 나의 경험과 기억과 닮아있는가. 남성이 자신의 연대기를 같은 기간동안 썼다면 이렇게도 유사성을 느낄까. 아닐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그녀가 아이를 낳고 기르고 직장일을 하면서도  거의 모든 집안일을 하는 데서 기인한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여성이 각자의 가정과 사회에서 하는 그 일들 말이다. 


오늘날에는 남학생들만큼이나 여학생들도 대학에 다니고, 여성 대부분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직업을 가지고 있다. 피임은 여성들에게 어머니가 되는 순간을 선택할 자유를 부여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나, 식사, 빨래, 청소같은 실제 생활을 책임지고 항상 걱정하는 쪽은 여전히 여성이다.....이런 상황을 설명해주는 생물학적 이유는 하나도 없다. 단지, 소년과 소녀가 함께 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전통이란 것이 깨어나서 자신의 모델을 강요한다. (아니 에르노, 얼어붙은 여자.p6)

잠자리에 들어서도 나의 전두엽은 그날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내일 아침 메뉴 시뮬레이션 하기. 머릿속에 냉장고를 불러와 먼저 냉동실을 열어본다. 선식이 있군. 좋아. 우유랑 땅콩을 넣고 갈아 주면 되겠어. 아침 식사 준비 완료. 잠들기 전 마지막 고민이 다음날 아침식사 고민이라니. 너무나 실존적이다. 


나는 거의 매끼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고 먹이며, 먹인 후에는 다음 끼의 메뉴를 걱정하고 머릿속 냉장고를 열고 닫으며 식재료를 조합해 식사메뉴를 생각한다. 쉬는날 아침을 해먹이고 나면 큰 녀석은 숟가락을 놓으며 말한다. 엄마 점심은 뭐야. 눈꼬리와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진다. 몰라. 엄마가 밥하는 로봇이니. 저 녀석의 무신경이 어디서 비롯된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해맑은 표정의 남편도 쏘아보는 것이다.


남편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겠지. 뭐 먹을까 하고 이야기를 나눌때도 있다. 나도 그처럼 되는 대로 먹어~ 냉장고에 있는 대로 먹어~ 느긋한 목소리로 말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가 나의 부탁으로 식사를 준비할때도 있다. 군소리 없이 그럭저럭 잘하는 타입이다. 가끔 하는 일은 즐겁고 부담되지 않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많은 집안일에 먼저 고민하거나 실행하지 않는다. 그 일들은 그의 몫이 아니다. 학교 다닐때 청소함이나 소방기구함에는 관리책임자의 이름이 정, 부로 붙어있었는데 실제 그 일을 하는것은 ‘정’이다. ‘부’는 그 일과 거의 상관이 없으며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는다. 나의 집 곳곳 많은 영역에 저 관리책임자 스티커가 붙어 있는 셈이고 “정‘에는 내 이름이 깊게 각인되어 있다. 나는 언제 그 스티커들을 뗄 수 있을까. 하지만 세상 제거하기 힘든게 스티커와 스티커 자국이다. 



어쨋든, 나는 나에게 '뭔가 부족하다'라는 사실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여자아이는 모두 다, 여자는 모두 다 집안일에 신경을 써야만 하니까, 더욱이 그게 장차 내 직업이 될 테니 나도 이런 일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아니 에르노, 얼어붙은 여자.p6) 

결혼전 직장을 다니고 있을때였다. 피곤에 절여진 몸으로 만원전철에 염장생선처럼 실려 집과 회사를 오고갔다. 그날은 비교적 일이 일찍 끝나 6시 퇴근 비슷하게 회사를 나섰는데 그래봐야 집에 도착하면 8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다. 엄마는 일찍 들어온 나를 반겼다. 저녁 먹었니? 아니. 밥을 차려야겠구나. 그럼 조금만 줘요. 조금만 먹는다고 차리는 수고가 덜어지진 않는다는 걸 그때도 알았지만 그래도 괜시리 미안해 그렇게 말한다. 식탁과 냉장고와 싱크대 선반을 분주히 오가며 엄마가 저녁상을 차린다. 내가 먹는 동안 엄마는 나보다 먼저 들어온 남동생이 먹은 밥상을 치우고 설겆이를 한다. 그녀는 몇번의 저녁상을 차린 걸까. 피곤함으로 입맛이 깔깔하다. 대충 밥을 먹고 밥그릇과 비운 찬그릇을 개수대에 갖다놓으려 하면 엄마는 강하게 만류한다. 됐어 저리가 가만히 있는게 도와주는거야. 너는 얼른 가서 씻어.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누나가 좀 치우라고 해. 엄마는 좀 쉬어요. 이런 말을 아빠나 남동생한테 들어왔다. 엄마 좀 도와서 전 좀 부쳐라. 누나 엄마 힘든데 누나가 좀 밥 좀 차려. 엄마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처지는 같음에도 왜 그들은 그녀가 해주는 집안일에 그렇게 당당하며 심지어 노동의 분배권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저렇게 말할 수 있으려면 자기가 먹은 밥그릇을 먼저 설겆이를 해야 자격이 있는 거 아닌가. 화가 난다. 하지만 곧 곰살맞게 엄마의 일손을 나누지 못하는 정없고 게으른 딸로서의 자각으로 위축된다. 죄책감도 든다. 내가 먼저 행동을 바꾸고 그런 제안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 하지만 나는 피곤함을 핑계로 죄책감과 분노를 뭉개고 입을 닫는다. 



한쪽에는 남자들의 길이 있고, 다른 쪽에는 여자들과 아이들의 길이 있지만,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같은 흐름 속에서 같이 산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아니 에르노, 얼어붙은 여자.p23)

남편과 나는 결혼 전 몇가지 굵직한 집안일에 대한 분배를 했다. 하지만 두번의 출산과 양육기간덕에 많은 부분은 나의 몫이 되어버렸다. 살다보니 이렇게 되었지만 첫아이를 임신했을때는 무려 ‘평등육아서약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육아와 가사에 대한 부담을 나누고 같이 참여하기 위한 다짐을 적은것인데, 어찌 어찌 화제가 되어 남편이 원고를 의뢰받아 매체에도 실린 기억이 있다. 남편이 그 때 쓴 글을 찾아보니 이런 부분이 눈에 띈다. 

목욕시키기, 한 10분이면 다 씻기지 않나? 어디서 보니까 아기는 너무 물에 오래 담가놓아도 안좋다는데 3분이면 OK. 가볍게 생각한 부분입니다. ㅠ.ㅠ 예를 들어 목욕을 시키려면 적당한 온도로 물을 받고, 물을 받는 동안 수건과  갈아입힐 옷, 기저귀, 목욕후 발라줄 오일이나 로션을 준비하고, 물이 다 받아지면 물놀이 배쓰북이나 물놀이인형 등을 가지고 놀아주듯 씻겨줘야 합니다. 그리고 어찌나 버둥대는지…아이는 깨끗해져가고 저는 완전 땀으로 목욕을 합니다. 다 씻기면 수건으로 닦아주고, 오일이나 로션으로 마사지해주고, 쭉쭉이 체조도 해주고, 기저귀 채우고, 옷갈아 입히고 엄마한테 젖먹이라고 안겨준 후, 어지럽혀진 욕실청소까지 해야 비로소 “목욕시키기”라는 한단어가 끝이 나는 것입니다. (초보아빠의 평등육아서약 중간점검)

그가 이런 순간을 경험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여성의 눈으로, 여성이 하던 일을 하게 되면 인식도 달라진다. 그 일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가정은 같지 않음, 옳지 않음이 가장 응축되고 정교하게 존재하는 공간이다. 사회의 다른 공간이라면 그런 위계나 불평등이 대놓고 드러나 있기 일쑤여서 변화의 표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가정은 그 구조가 희생과 사랑 배려등으로 위장된 은밀하고 개별적인 공간이라 오히려 변화하기 어렵다. 아니 에르노는 그 양파껍질처럼 부드럽고 불투명한 장막을 하나하나 벗기며 불평등한 그 공간을 묘사하고 있다. 그녀의 이 작품은 지나온 나의 삶과 현재의 모습에까지 대단히 높은 유사성을 가지고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곧 그 감정은 세상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막막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 해야하고, 이야기로 만들어야 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흩어져 있는 무수히 작은 점들을 이어보면 분명 앞으로 나아가는 가느다란 화살표임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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