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친정에서 열어본 엄마의 옷장은 딸과 며느리가 사준 색색깔 옷들로 채워져 있었다. 두꺼운 솜이불 대신 포실한 차렵이불 한 두채, 투박한 외투들 대신 가붓한 패딩 점퍼가 걸려있다. 엄마는 옷을 들어보이시며 이건 몇년전에 느이 언니가 사준거, 아 이건 니가 사준거하며 기억을 떠올린다. 우리는 사진첩을 보듯 옷 하나하나를 넘기며 옷과 함께 딸려 오는 기억들을 한참 이야기했다.
엄마방을 정확히 반 정도 차지하고 있는 연한 크림색 옷장. 옷장으로 채우고 남은 공간에 1인용 침대와 작은 TV를 놓은 협탁이 겨우 배치되어 있다. 그 방은 그런 사이즈의 옷장이 들어가면 안되는 방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큰 옷장이 필요한 법이다. 엄마에게 옷장은 오랫동안 그 집 살림의 규모를 가늠하는 평가의 척도였다. 언젠가 나 어릴적 이사한 친척 집에 다녀온 날 새로 들인 12자 장롱을 보고 내내 부러워하셨다. 허긴 그런 큰 장롱을 들이고 살려면 집도 넓어야 하고, 옷장에 채워넣을 옷들도 많을 것이고, 장롱에 들일 무겁고 두꺼운 솜튼 이불채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라서 엄마의 부러움이 이해가 됐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곰살궂은 성격으로 두루두루 사람들하고 잘 지내던 아줌마 한분이 돈을 떼어먹고 야반도주를 해서 동네가 시끌했던 적이 있었다. 알고보니 금액의 고하만 다를 뿐이지 돈을 안 떼인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마 후 아줌마의 행방이 알려져 엄마는 동네 사람 여럿과 그 집에 빚독촉을 하러 갔다가 분기탱천해서 돌아왔다. 빚쟁이들 성화에 걸쇠를 걸고 빼꼼히 연 현관문 사이로 방을 꽉 채운 세련된 장롱이 보였는데, 자신은 언감생신 꿈도 못꾸는 그런 장롱을 남의 돈을 떼어먹고 들여놓은 것이 너무 화가 나고 낙담이 되어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한참을 앓아누웠다. 빚을 내고 도망을 간 사람들도 새로운 곳에 정착하면 처음 하는게 장롱을 사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어떨라나. 드레스룸이 있는 집을 사고 지중해 여행 티켓을 끊고 외제차 리스를 하겠지.
엄마에겐 금언(禁言)목록이 있는데 이건 그녀가 주로 무언가를 금지하는 말이다. 만두는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길이 없으니 사먹지 마라, 미나리는 더러운 물에서도 자라니 먹지 마라 같은 것이다. 옷에 관계된 항목도 있다. 돈이 생기면 뭐 사먹거나 다른거 하지 말고 옷부터 사라. 먹는거야 한 때지만 옷 사두면 내내 입잖니. 친구들 만나서 영화보고 술도 한잔 하고 연애도 하던 젊은 시절 난 엄마의 말대로 하지 못했다. 월급의 얼마를 엄마에게 생활비로 주고 나면 옷을 살 돈은 항상 모자랐고, 되는 대로 걸치고 다니다 가끔 옷을 사서 들어와 거울 앞에서 입어보고 있으면 '넌 어디서 거적대기 같은것만 잘도 골라 사는 재주가 있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셨다. 엄마는 향후 30년정도는 유행타지 않을 각잡히고 단정한 옷들을 나에게 원했지만 난 그녀의 심미안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런 엄마의 옷장은 나의 옷장보다 더 빈약했다. 엄마는 계절이 바뀌면 자식들의 철 지난 옷들을 라면박스에 정리해 넣어두었는데 정작 엄마의 옷장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안방 장롱 좁은 한칸이 엄마 몫이었는데 그 안에는 친척 결혼식때마다 입는 한복 한벌과 두꺼운 겨울 잠바등이 걸려있고 사계절 입는 옷들 전부가 그 안에 있었다. 엄마한테 좀처럼 가욋돈이 생길리가 없고, 그런 돈이 생긴다해도 자신의 옷을 사는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널린 시절이었다.
어릴 때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갈때면 엄마와 옷가게 주인의 거래 현장이 늘 조마조마하고 창피해 자리를 피하고 싶은 순간이 많다. 상인이 제시한 가격의 정확히 반값을 불러 결국 관철하고야 마는 엄마때문에 분위기가 자못 살벌하다. 패배를 선언하고 거칠게 옷을 담아주는 상인을 뒤에 두고 엄마는 금언(禁言) 하나를 추가한다. 시장에서 제 값주고 옷 사는 거 아니다. 옷이 이문이 얼마나 많이 남는 줄 아니. 그렇게 획득한 바지를 아빠 앞에 입어보라고 내어놓으면 술 좋아하는 아빠는 술 사다주는 사람 말고는 별로 반가운게 없어서 퉁명스럽게 그 가격에 옷을 샀다 면박을 줘 엄마를 서럽게 했다. 엄마는 그렇게 채운 아빠 옷들을 철이 지날때마다 라면박스에 담아 의자를 놓고 올라가 자개장 장롱위로 올렸다 내렸다 했다.
그 자개장은 날개를 너울거리는 학과 소나무등이 조악하게 오려 붙여져 있었다. 문 네짝이 다 똑같은 패턴이다. 그 자개 무늬는 마치 물에 뜬 석유 기름이 만들어내는 무늬처럼 어지럽게 반딱반딱 빛났다. 어릴때 친척들이 놀러와 숨바꼭질을 할때면 몸집이 작은 나는 그 자개장에 들어가 이불더미 사이에 숨곤 했다. 무거운 이불에 눌려 숨은 답답해져오고 나를 찾으러 오는 발소리를 초조하게 기다리지만 좀처럼 술래는 나를 찾지 못하고 그제사 코에 들어오는 그 쿰쿰한 이불냄새, 쾌쾌한 나무냄새. 밖에 나갔다 들어온 엄마는 무너진 이불들을 발견하고 이러면 나무가 주저앉아 장이 망가진다고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내쫒았다. 한때는 큰 맘 먹고 목돈을 들여 장만했을게 분명한 그 자개장은 점점 촌스러움의 상징이 되었고 동서가구 오크무늬 원목 장롱에 자리를 내주었다. 요즘 예전 디자인 감성이 유행하며 자개장도 리폼을 거쳐 독특한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는 걸 보면 기분이 묘하다.
얼마전 엄마를 여읜 친구는 장례 후 엄마의 옷장을 정리하다 자신과 동생이 어릴때 썼던 모자가 나오드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녀가 그 모자를 발견하고 어떤 질감의 기억과 감정이 올라왔을지 대략 상상이 되어 가슴이 잠시 먹먹했다. 옷장은 그런 곳이다. 옷등을 수납하고 보관하는 것뿐 아니라 추억이나 감정도 같이 보관하는 곳이다. 아이들은 훗날 내가 없을 때 나의 옷장을 보며 어떤 기억과 마주할까. 나의 옷장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그것을 가지고 가 오랫동안 간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