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최 Aug 22. 2023

내가 꼰대인 게 그렇게 나쁩니까.

대표는 처음이라서요.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평균 나이는 스물 일고 여덟쯤 됩니다. '스물다섯여섯에서 서른셋넷 사이라니 그렇게 어리지도 않잖아'라고 생각하지만 따져보면 가장 어린 선생님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고 있을 때 저는 무려 대학생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과 매 순간 함께 하기 때문에 스스로 나이를 떠올린다고 해서 깜짝 놀라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가끔 주위 사람들과의 차이를 새삼 곱씹어 보면 아,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지요. 


     제 동기들은 그 유명한 '90년생'입니다. 스무 살에 사춘기였던 저는 원래 제 학번의 대학생이었을 때보다 90년생들과 함께했던 때에 훨씬 더 청춘처럼 놀았습니다. 여덟아홉 살 차이 나는 아이들과 신나게 여행도 다니고 같이 떡진 머리로 도서관에서 밤도 새우고 동아리에서 봉사활동도 갔어요. 저는 그냥 쉬운 언니 역할에 충실했고 어리지만 훨씬 야무진 동기들에게 감탄했던 기억도 많았지요. 그래서 믿었습니다. '90년생이 온다'거나 MZ들과의 회사생활에 대해 또래들이 고충을 토로해도 저만은 괜찮을 거라고요. 


     친구로 사이좋게 노는 사이와 일로 만난 관계의 차이를 그때 저는 왜 간과했던 걸까요. 




     처음 맡게 된 대표의 자리는 가시방석 같았습니다. 지금은 좀 나아져서 짚으로 만든 자리 정도..? 아마도 맞춤옷처럼 이 자리가 편안해지는 날은 이번 생에는 안 올 것 같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건 뭐든 혼자 조용히 해치우면 제일 속편한데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일을 나누고 시키는 게 영 자연스럽지 않아서 쭈뼛거리고 미안해하기 일쑤였고 시킨 일이나 지시하는 상황에 대해 선생님들이 가질 불만부터 가늠해 보고 불안해지곤 했습니다. 몰래 혼자 해치우려다 남편에게 들켜 한숨을 쉬게 한 적도 많습니다. "그걸 왜 네가 하고 앉았어!!"


     선생님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던 마음은 또 컸습니다. 처음에는 그래서 함께 밥을 먹고 회식을 하고 엠티도 갔습니다. 일 이외의 시간에도 선생님들과 대화를 공유하고 싶었고 일과 상관없는 일상을 나누는 것도 자연스럽기를 바랐고 그게 일로 만난 사이의 '정'이라고 믿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믿음의 뒷면에 누가 붙였는지 모를 노란 경고의 딱지가 붙었습니다. 그 딱지는 '혹시 내가 꼰대인가?' 하는 자기 검열이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회사생활에서는 자연스러웠던 일이 혹시 지금 이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지 않다면 어쩌지? 회식하자고 하면 싫어하면 어쩌지? 내가 챙겨주는 게 부담스럽진 않을까? 같이 밥 먹자고 하면서 혹시 가기 싫은 건 아닌가 눈치를 보고 잘못을 지적하고 나서도 나중에 분위기가 가라앉아있진 않은지 살피곤 했어요.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분명 회사 다닐 때 윗사람 눈치를 많이 봤는데 우리 선생님들 눈치를 내가 훨씬 더 많이 보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그때 눈치 채진 못했지만 우리 팀장님도 혹시 내 눈치를 봤던 걸까? 


     저는 인복이 있었는지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순간이 기꺼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끔은 '아,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분명 있었지요. 사회생활에서 이 정도는 기본 아닌가. 저 선생님은 다른 건 다 좋고 내가 아끼는 사람이니까 이런 말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이 들 때도 자기 검열은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지시하고 가르치려 들면 꼰대라서 안돼. 내가 배웠던 대로 가르쳐주려고 하면 '라떼'가 되니까 그것도 안 되겠지. 음...... 그냥 말하지 말고 넘어가자.




     시간이 지나고 가시방석이 짚방석이 되는 동안 저도 대표 자리에 조금은 익숙해지고 무뎌졌습니다. 선생님들께 지시하고 지적하는 것도 더 자연스러워졌고 덜 스트레스받습니다. 일로 만난 사이에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조직이 커지면서 중간관리자가 생긴 것도 직접 지시하는 데 익숙지 않은 저의 짐을 조금 덜어준 부분입니다.


     가장 많이 달라진 건 '꼰대인가'하는 자기 검열을 약간 집어치웠다는 부분입니다. 속으로는 여전히 눈치를 보고 면담이라도 할라치면 괜히 주저리주저리 설명이 길어지는 건 여전하지만 끝에서는 늘 생각합니다. '아 뭐 좀 꼰대지 뭐,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뭘 어쩌겠어?' 


     얼마 전 잡지사 시절 선후배를 만난 자리에서 이제는 큰 잡지의 편집장이 된 한 후배가 에디터들을 관리하면서 느끼는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선배, 요즘 애들은 '나 에디터 할 때는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어'라고 하면 안 먹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해요. '어제의 너보다 더 나은 오늘의 네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꼰대나 라떼가 되지 않으면서도 팀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나이키의 브랜드 슬로건 같은 문구를 떠올린 후배가 남일 같지 않아 우리는 하하 웃었습니다.


     MZ세대에 대해 소소한 얘기를 나눈 끝에 후배는 한숨을 쉬며 덧붙였습니다. "지들도 나중에 알파 세대한테 당해보라지!!" 우리는 한번 더 크게 웃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우리 모두는 결국 어느 시점에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조금 더 편해졌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개인주의 성향의 경상도 출신 아내와 일하고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