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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큐 Aug 10. 2023

개인주의 성향의 경상도 출신 아내와 일하고 있습니다

결혼 초반이었던 거 같다. 부산에 있는 처가에 갔다. 처가에서의 내 자리는 대개 거실 소파의 아버님 자리 바로 옆이었다. 같이 텔레비전을 보며 가끔 들려오는 아버님 말씀에 "네, 맞습니다" 정도의 리액션을 해 드리는 게 내 역할이었다. 평소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데다가 일생을 리스너보다는 스피커로 살아온 내가 하루종일 텔레비전을 보며 듣고만 있으려니 쉽지만은 않았다.



          잠시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처형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점점 언성이 높아지더니 두 분이 싸우시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랐다. 정확한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으나 두 분의 억양을 봤을 때 다툼이 분명했다. 긴장을 하고 거실로 돌아왔다. 근데 웬걸? 조금 전 기세와는 달리 평화로운 분위기가 아닌가? 아무튼 다행이었다. 경상도 사람들이 뒤끝이 없다더니. 정말 화끈하구나!!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물었다. "어제 아버님 하고 처형이 다투시는 거 같던데... " 아내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런 적 없는 거 같은데... ", "아냐, 내가 분명 화장실에서 들었어", "하하하. 그거 다투신 거 아냐. 그냥 이야기한 거야" 그게 그냥 이야기한 거라고??


     





아내와 나는 대학에서 만났다. 아내의 첫인상은 차분했다. 외모도 그렇지만 목소리가 특히 그랬다. 두성이 없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매력적이었다. 성격이 괄괄한 데다 목소리까지 큰 나와는 정반대였다.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것만 같은 음성이었다.



          그랬던 아내에게서 언제부턴가 오래전 화장실에서 숨죽이며 들었던 그 억양을 가끔 듣는다. 다 내 탓이다! '기존쎄' 캐릭터에 논쟁을 즐겼던 나에게 연애 십 년, 결혼 십 년, 도합 이십 년 동안 단련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진료 상담으로 다듬어진 말빨이 더해지며 요즘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한 가지 억울한 게 있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면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환장할 노릇이다. 원래 다 같이 야근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퇴근하는데 혼자 남아서 일하는 건 견디기 어렵지 않은가?



          하루는 아내에게 물어봤다. "왜 나한테만 그래?" 아내의 대답은 명료했다. "편해서 그래. 그러면 안돼?"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아내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렌즈를 끼워서 스스로를 보정한다고 한다. 심지어 처가 가족에게도 말이다. 게다가 한의원은 서비스업이라 친절함을 하루 종일 장착해야 한단다.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0'촌이라는 남편에게까지 사회생활을 해야 하냐는 말이었다. 듣고 보니 이해가 됐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나는 달랐다.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만 - 이러지만 않았어도 부장은 달고 퇴사했을 것이다 -, 정작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더 신경을 써서 대한다 -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 당연한 처사이다. 가까운 사람들이 더 소중하니까 더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다. 공자님도 친친현현(賢)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만큼 사람을 대할 때의 나의 잣대는 상대방에게 있다. 하지만 아내의 잣대는 스스로를 향해 있다.



          아내가 개인주의 성향이 있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런 면이 좋았다. 아내는 내 생활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법이 거의 없다. 늦은 술자리에서 친구들은 아내 - 혹은 여자친구 -의 전화를 받느라 들락날락거렸지만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그만큼 아내는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아니 방목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정도이다. 그 싫어한다던 남편의 취미 생활에도 관대했다. 한창 음향 장비에 열을 올릴 때도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심지어 골프를 배우라고 먼저 말을 꺼내기까지 하였다. 친구들과 동료들, 아니 내가 아는 세상의 거의 모든 남자들이 이해심 많은 아내를 둔 나를 부러워하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지나친 너그러움 뒤에는 개인주의적인 성향도 있다는 것을.







그러다 같이 일하게 되었다. 동업을 하는 부부의 세계는 여러모로 달랐다. 그중에서도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매일매일 결정할 것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부딪쳤다.



          이때 오래된 문제가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아내의 말투였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 나한테 화를 낸 거 같았다. 그래서 나도 화를 냈다. 그러면 아내는 - 내가 먼저 화를 냈다고 생각해서인지 - 더 세게 나왔다. 그 후로는 대개 지옥의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상황이 좀 진정돼서 물어보면 아내는 내가 먼저 화를 냈다고 했다. 그럼 그전에 말한 건 뭐냐고 물으면 그냥 이야기한 거라고 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다툼이 반복되면서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오래전 부산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아내도 헷갈렸을 것이다. 남편이랑 일할 때조차 스스로를 보정한 채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아님 남편이니까 편하게 해도 되나? 나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서 일할 때처럼 강하게 받아쳐야 하나? 아니면 아내니까 강도를 좀 낮추어서 이야기해야 하나? 아내도, 나도 혼란스러웠다. 혼란과 혼란이 만난 우리의 관계는 진짜 혼란스러웠다.



          이젠 화를 내지 않았다는 아내를 믿는다. 아니, 적어도 믿으려고 노력한다. 이건 자라난 환경에서 오는 차이일 뿐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의 문제는 아니라고 받아들인다. 그 덕분인지 요즘에는 그렇게 심하게 싸우지 않는다. 횟수도 많이 줄었다. 설사 아내가 화를 내고도 아니라고 한들 손해 볼 게 없다. 적어도 나는 아내가 편하게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거 아닌가? 무언가 모르게 뿌듯하기까지 하다. 우쭐한 기분마저 느껴진다. 문득 지리산에 있는 도사님 같은 생각이 든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긍정적인 셀프 가스라이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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