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동등한 지위 혹은 역할분담이라는 환상
처음 함께 일을 시작할 때 우리는 왜 다투는지도 모르고 말다툼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시작은 그저 단순한 의견조율일 뿐이었는데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언성이 높아져 있습니다. 견해를 물어보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날카로운 대답이 돌아옵니다. 무심하게 대답하고 나서 문득 돌아보면 마음이 상한 듯 보입니다. 싸우다 지친 끝에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언쟁을 곰곰이 복기해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대립하는 일이 반복되니 '어, 이 말 전에도 들었는데'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습니다. 어느 날은 남편이 자주 했던 지적들을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너는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잖아. 예전에 우리 회사 사장님이 그랬어. 은근히 돌려 말하면 내가 알아서 해야 되는 거야? 내가 니 아랫사람이야? 니 태도는 완전 대기업 사장님이야."
"너는 다 안다고 생각하고 생략해서 말하는데 상대는 너만큼 몰라. 디테일까지 다 말해야 알지."
"생각해 본다고 하고선 언제까지 생각하고 있어?? 리더면 빨리 결정해야 할 거 아니야."
"너는 혼자 하는 일은 잘하는데 같이 협업해서 하는 작업에는 너무 약해. 내용을 공유하질 않잖아."
"너는 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 내 시간이 소중하면 남의 시간도 소중한 줄 알아야지."
이 지적들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도, 조금은 억울한 부분도 있습니다. 각자의 말하는 방식이나 일하는 방식이 달랐던 탓도 있었을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서로 다른 사람이기로서니 이렇게 싸울 일인가 싶게 언쟁이 반복되자 어렴풋이 이 모든 싸움의 밑바닥에 어떤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누가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일하다 보면 결정해야 할 세부 사항이 많습니다. 진료 시간을 정하거나 공간을 계획하고 인력을 고용하는 일부터 상담 전화에 대응하는 문구 한 줄을 작성하는 일까지 크든 작든 무시할 수 없는 결정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처음 일에 착수할 때부터 진료에 관한 일은 제가, 내부 운영에 관한 일은 남편이 도맡아서 하는 것으로 대략의 가이드라인을 정했지만 모든 일이 어디 그렇게 딱 칼로 자르듯 나눠지던가요.
막상 일을 진행해 보니 대부분의 결정은 현장에서 진료를 담당하는 저의 의견을 필요로 했습니다. 마케팅 전략이나 운영의 흐름에 대해 남편이 제게 의견을 전해오면 저는 현장에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생각을 정리할 때가 많았지요. 새로운 의견에 대해 불안한 지점부터 말하게 되다 보니 남편은 기껏 낸 아이디어에 부정적인 피드백만 끼얹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곤 했습니다.
가끔은 현장에서 결정하기 어려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시간을 벌기도 했습니다. 그래놓고 진료로 바쁘다 보면 그 '생각할 시간'은 종종 뒤로 미뤄지곤 했지요. 네, 솔직히 말하면 '근데 무슨 얘기였더라' 하고 잊어버린 적도 있습니다. 남편은 기다리는 것이 익숙한 사람도, 반복해서 말하는 것에 친절한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한 말을 또 하게 하는 것에 대단히 분노하는 성격이라 '이제 좀 얘기를 해볼까' 하고 돌아보면 늘 제 생각보다 훨씬 화가 나 있었습니다. "너는 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
한편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서비스나 시스템에 관한 일을 즉석에서 빠르게 결정하고 바로 시행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서비스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가 눈앞에 서 있는데 결정을 유예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그렇게 결정해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일에 대해 즉각적으로 공유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그에 대해 남편은 제가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며 지적하곤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저의 잘못이었을까요? 남편 말대로 제가 제 시간만 소중하고 남의 시간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자에 협업에 소질이 없는 독고다이 스타일이면서 제 의견 하나 간결하고 선명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머저리라서 우리가 싸운 것만은 아닐 겁니다.
남편이 화를 내는 지점은 대부분 어떤 일의 결정이 유예되거나 늦어지는 것에 제 책임이 크다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제가 대표로 있는 사업체에다, 광고든 마케팅이든 제약이 많은 의료서비스라는 판에서, 전문지식이 없는 제너럴리스트의 영역에 대한 한계를 느꼈을 남편이 모든 결정이 제 속도로 이루어지지 않는 데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아이디어를 머릿속에서 굴리고 숙성시켜 결정하는 저의 방식이 느리고 무심하다고 여겼을 것이고 결정을 공유하지 않는 데 대해 무시하고 있다고 느꼈을지 모릅니다. 막상 남편의 아이디어대로 결정된 일이 많았음에도 그 과정에서 느낀 제약이 답답했던 거겠지요.
결국 우리가 사사건건 부딪친 원인은 '최종 결정을 누가 해야 하는가가 정하지 않았거나' 혹은 '두 사람이 같이 결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데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완벽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늘 결정이 어려웠던 겁니다. 차라리 상하관계가 분명한 조직이었다면 뒤에서 욕은 했을 망정 다툼은 줄고 의사결정은 훨씬 빨랐을 겁니다. 결정하는 자리는 이후의 과정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보상이 따르기 마련인데 동업은 동등한 분배를 상정한 구조라 더 동력이 생기지 않았던 건지도 모릅니다.
이제 이 바닥에서 구른 짬밥이 좀 되는 남편은 어떤 결정은 스스로의 판단을 조금 더 믿게 된 것 같습니다. 저도 남편이 가져온 제안을 생각해 본다며 뭉개는 대신 가볍게 생각하고 바로 결정하거나 결정권을 주려고 합니다. 동업하는 파트너라고 해도 세부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결정하는 사람과 그 결정을 따르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에 더 노력하는 연인처럼 완벽한 합의를 믿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평화로운 결정을 이어가는 파트너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아이러니로 가득한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