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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Aug 03. 2017

시작하기 전에.

도대체 한의사는 왜 그럴까, 하는 질문에 관하여.

*여기에 쓰는 글은 한의계를 대표하는 입장이 전혀 아니며 저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다만 검증된 내용,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쓰려고 노력합니다. 



바늘 대신 침을 잡게 되다

    원래 전공은 의류학이었다. 고등학교 때 공부에 너무 시달린 나머지 대학가서까지 공부하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택한 과였다. 그림 그리고 옷 만들면서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다는 게 무척 유혹적으로 느껴졌고 막상 가보니 그게 다는 아니었다 실제로 설렁설렁 놀며 20대 초반을 보냈다학점은 물론 엉망이었다. 백화점을 돌아다니고 패션 잡지 들여다보며 천 조각을 잘라 재봉틀로 뚝딱뚝딱 뭔가 만드는 생활은 즐거웠다. 졸업하자마자 패션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 인생에 한의사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공부를 좀 더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딱 10년이 지났을 때였다. 사람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내가 얼마나 공부하기 싫어했던가를 기억해냈는데 그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새로운 목표는 한의대였는데, 허준과 같은 의사가 되어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거창한 포부 같은 건 없었다. 늙어서 다시 공부하는 것에 대해 주변을 납득시킬 만한 목표가 필요했고, 여러 전공 중에 소거법으로 (왠지 의사나 치과의사는 매력적이지가 않았다) 한의대가 남았다.



넌 어느 별에서 왔니 

    몇만 광년 떨어진 직업으로부터 갑자기 이 별에 떨어진 나는 동기들 사이에서도 좀 별종이었다. 선배 동기 할 거 없이 '아니 그 일을 하다가 어찌 여기로 오셨어요'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돈 많이 벌려고요'라고 대답해야 모두의 호기심을 가장 빨리 가라앉힐 수 있다는 것도 금세 터득했다. 공부해본 한의학은 매력적이고 파고들만한 학문이었지만 색깔이 너무 확고하기도 했다. 이과 쪽 전공인데 문과적 자질을 요구했다. 연역적 사고가 아니라 귀납적 사고로 설명하는 이론들이 많았다. 차츰 동기들도 '잘 맞는 사람'과 '지독하게 안 맞는 사람'으로 나눠졌다. 개론 수업을 듣다 말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어서 '의대를 갔어야 했다'며 좌절하는 동기도 있었다. 


    다행히 이 공부가 잘 맞았던 나로서도, 낯선 행성에 들어와 버린 별종으로서 눈에 띄는 한계도 있었다. 일단 기껏해야 1백 명도 안 되는 사람들도 다 이해시킬 수 없는 학문이라는 건 문제가 있다. 사실 학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가르치는 방식이나 커리큘럼의 문제가 크지만 가끔 진지하게 파고드는 사람들 중에서도 좌절하는 이가 있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없는 학문은 흡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의학이 좋은 의학이고 한방이 좋은 기술이라고 생각할수록 이것은 더 문제로 여겨졌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한의대 학생들은 어쩌다 문 닫고 들어간 나랑은 다르게 각자 동네에서 2등 하면 울고 그랬던 수재들이었다. 그리고 똘똘할수록 자기가 전공하는 학문이 겪고 있는 모순과 문제점은 자신을 괴롭히는 법이다. 내가 아는 한 영리한 한의대생들은 한의대라는 안락한 틀 안에서 그저 공부만 하며 '돈 많이 벌어서 소고기 사 묵겠지'라고 안주하는 대신 이 학문에 대한 인식과 치열하게 싸웠다. 어쨌든 한의원은 병원보다 멀고, 한의사는 의사보다 불가해한 존재이며, 한의학은 의학에 비해 정돈되지 않은 학문이라는 인식 말이다.


    한의사로 일하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받는다. 진료 자체에 대한 질문 말고도 진료의 시스템이나 학문의 성격에 관해 이해하지 못해서 나오는 질문이 있다. 그런 의문이 너무 이해되는 이유는 나 역시도 같은 의문을 가졌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아예 물으려고도(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물어라도 봐줘서 고마울 때가 많다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을 모아서 여기에 내 대답을 써보려 한다. 한의계를 변호, 혹은 대변하려는 게 아니라그런 대답은 스스로도 부끄럽다 누가 들어도 '말이 되는',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답안을 만들어보려고 항상 고민한다. 물론 여기에 쓴 것은 나라는 일개 한의사의 대답일 뿐 (당연하게도) 모든 한의사의 대표성을 띨 자격은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단지 나뿐 아니라 난다 긴다 하게 똑똑한 많은 한의사들이 그런 의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서 얻은 각자의 답을 갖고 있다. 부디 어디서든, 많이 물어봐달라. 



아마도 다루게 될 질문들

    일부러 더 공격적으로 쓴 경향도 있지만 실제 사람들이 저렇게 묻는다. 어떤 질문에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대답을 못할 수도 있다. 90퍼센트, 75퍼센트, 때로는 30퍼센트짜리 대답이 될 수도 있다. 공부를 더 하고 나서 돌아와 다시 읽어보면 얼굴이 화끈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대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한의사가 있다많다는 것만은 알아주기를 바란다.  


의사가 한약 먹지 말라고 하던데요?

한약재 처방은 왜 공개 안 해요?

한약 먹으면 간에 안 좋다던데요?

한약은 왜 이렇게 비싸요?

다친 건 왼쪽 발목인데 왜 오른쪽 손목에 침놔요?

한약 잘못 먹으면 살찌는 거 아니에요?

임신, 수유 중에 한약 먹으면 안 되잖아요?

중국산 약재보다 당연히 국산 약재가 더 좋은 거 아니에요?

똑같은 증상을 말했는데 왜 한의원마다 치료가 달라요?

체질이라는 게 진짜 있어요? 

맥 보면 뭐 알아요?


    ......질문은 무궁무진하다.


    한의학은 먼 과거에서 왔지만 그 어떤 학문보다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멀게는 세계 동향이 그렇고, 가깝게는 내가 지켜본 한의계의 젊은피들이 그렇다. 우리나라의 한의학은 보약이나 짓는 고리타분한 학문에 머무느냐 버전2.0으로 세계무대에 치고 나가느냐 하는 기로에 서있는데, 절반은 안쪽 사람들의 책임이고 나머지 절반은 바깥쪽 사람들의 서포트다. 안에 속해 있으면서 어쩐지 바깥에 한 다리를 걸치고 있는 국외자적 입장으로 둘다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길 바라면서.


2017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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