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기엔 너무 흔한 자궁근종
내 몸 안에 무언가 자라고 있다
제가 자궁근종 수술을 받은 건 몇 년 전 겨울이었습니다. 이미 한의사로 일하고 있던 때였고, 근종의 존재를 알고부터 3년쯤 지난 후였으며, 수술을 고민한 지는 두어 달만의 일이었지요. 당시에 제거한 근종 중 가장 큰 것이 8cm 짜리였습니다. 보통 자궁의 평균 직경이 5cm주먹 크기 정도인 걸 생각하면 자궁보다 더 큰 것이 자궁에 붙어있었던 셈이지요. 수술했던 병원이 출산을 주로 하는 병원이었던지라, 분만한 산모들에게 둘러싸여 '다들 아기를 낳는데 나만 보람도 없이 근종을 낳았군'하는 생각으로 우울하게 누워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수술을 결심한 가장 큰 계기는 임신에 대한 대비였습니다. 한때 심했던 월경전 증후군은 한약과 침 치료로 어느 정도 호전된 상태였고, 생리양이 많기는 했지만 참을 수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수술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병원과는 별로 친해본 적 없는 삶이어서 이런 내가 의료인이 되다니 아이러니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차서 부인과 쪽으로 접어드니 웬걸 대반전, 때마다 병원에 안 가는 게 더 이상한 몸인 걸 깨달았습니다. 한가롭게 병원과 내외하고 있을 입장이 아니었던 거지요.
아기가 자라야 할 주머니에 아기보다 더 큰 종양 덩어리가 붙어있는 형국이니 임신을 생각하면 난감했습니다. 게다가 이놈은 호르몬에 반응하여 커지기 때문에 지가 태아도 아니면서 임신기간 동안에도 더 자랄 수 있다고 하더군요. 태아가 안 그래도 좁은 엄마 뱃속을 차지하기 위해 근종과 자리다툼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임신하면 자궁이라는 근육 주머니는 원래 크기의 5백 배나 커진다는데 커다란 혹을 달고 있으면 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쭉쭉 늘어나는 것도, 늘어났다 제 크기로 줄어드는 것도 원활하지 않을 테지요.
제가 받은 수술은 개복수술이었습니다. 근종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거할 수 있지만 제 상황을 본 담당 선생님 옵션에는 개복수술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배에 작은 구멍을 뚫고 거기로 작은 카메라를 넣어서 카메라로 근종을 보면서 수술하는 게 복강경 수술이라면 개복수술은 배를 더 크게 열긴 하지만 카메라가 아니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요. 근종의 개수나 크기도 문제였지만 임신을 준비할 거면 자궁의 절개를 복강경으로 어설프게 마무리하는 것보다 개복해서 제거한 뒤 깔끔하고 단단하게 흉터를 마름 하는 게 더 좋다고 하셔서 설득당했습니다. 물론 수술 직후에는 이 결정을 후회하게 됩니다너무 아파서.
누구나 자궁에 근종 하나쯤은 있는 거 아닌가요
자궁근종으로 치료받는 여성은 매년 늘고 있습니다. 주로는 3, 40대지만 50대와 60대도 빠르게 늘고 있고 요즘은 20대도 흔하지요. 근종 자체도 늘었겠지만, 있어도 몰랐던 근종을 더 빠른 속도로 발견하게 된 것도 환자 수의 급증에 일조했을 겁니다. 저는 아무튼 들여다본 이래로는 줄곧 근종 투성이 자궁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인지라 '근종이 한 개 있는데 1cm 정도 된다'는 환자의 얘길 들으면 내심 그 정도라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자궁근종 환자'라는 말도 어쩐지 어색합니다. 환자라니요, 누구나 자궁에 근종 하나쯤은 있는 거 아닌가요.
자궁근종은 양성종양이고 무증상인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발견하고 추적은 해야겠지만 크기가 커지지 않거나 증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굳이 떼어낼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물론 예전의 저처럼 크기가 커져서 참을 수 없는 증상이 있거나 위치가 임신에 불리해서 수술이 불가피한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증상도 없고 커지지도 않는 근종 한두 개는 인지하고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조그만 근종을 굳이 떼어내는 것보다 근종이 더 커지지 않게 관리하는 게 훨씬 중요하지요.
종양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안에 '악성종양'이라는 악마의 카테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암'이라고 부르는 악성종양은 여러 가지 특징이 알려져 있지만 가장 큰 세 가지 특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성장 속도가 무진장 빠릅니다. 그리고 멈추지도 않습니다. 주변의 조직으로부터 영양분을 빼앗아 먹고 자기 혼자 자라는 매우 왕성하고 탐욕스러운 세포입니다. 주변 세포는 말라죽든말든 아랑곳하지 않지요.
2. 본래의 성질을 잊어버립니다. 우리 몸의 세포는 모두 고유의 역할이 있는데, 암세포화 되고 나면 자기가 원래 뭐하던 세포였는지 잊어버립니다. 그저 증식만 반복하기 때문에 몸에 쓸데없는 세포 덩어리가 끝없이 자라나는 셈이지요.
3. 아무 데나 막 돌아다닙니다. '전이'라고 부르는 이 성질은 악성종양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간에 생긴 암세포가 위에도 가고 방광에도 가고 림프절에도 갑니다. 애초에 발견된 곳에서 영영 사라진 듯하다가 전혀 다른 곳에서 또 나타나곤 하기 때문에 완치가 어렵습니다.
이 감별점으로부터 역산해보면, 자궁근종과 같은 양성종양의 특징은 다음과 같겠지요.
1. 자라는 속도가 매우 더디거나 어느 정도 자란 뒤에 멈춥니다.
2. 본래의 성질을 유지합니다. 근육 세포면 증식해도 근육의 기능을 가진 채로 자라지요.
3. 아무 데나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전이될 걱정은 없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자궁근종이 근육층의 암종인 자궁육종으로 바뀌는 경우는 거의 드뭅니다. 자궁육종은 여성암 중에서도 1% 미만을 차지하는 희귀한 암이에요.
그리고 자궁의 모든 질환
자궁에 관련된 질환은 자궁근종 말고도 많습니다. 자궁폴립(자궁내막 용종), 자궁선근증, 자궁내막증, 자궁내막종, 자궁내막 증식증... 이름만 들어서는 구분도 안 되는 병명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저도 때로는 헷갈리는 이 질환들을 간단히 구분해볼까요.
자궁폴립(자궁내막 용종)
자궁내막 조직이 국소적으로 과잉 증식한 것입니다. 근종은 근육조직, 내막 용종은 내막 조직의 증식이에요. 주요 증상으로는 생리양이 많아지거나 생리가 아닌데 출혈이 있기도 하고, 무증상인 경우도 많습니다.
자궁선근증
자궁내막 조직이 자궁 근육층으로 파고들어간 상태입니다. 어쨌든 내막 조직이 증식한 상태라 생리양이 많아지고 심한 생리통 등이 나타날 수 있어요. 근종이 근육의 덩어리라 상대적으로 절제하는 수술이 쉬운데 비해 선근증은 근육 전체에 퍼지는 내막 조직이 그물처럼 퍼진 상태라서 수술로는 접근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지요.
자궁내막 증식증
말 그대로 자궁내막이 원래 있어야 되는 것보다 과도하게 증식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단순히 증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막 조직의 악성종양인 자궁내막암의 전 단계인 경우도 드물지만 있기 때문에 심한 경우에는 조직검사로 확인해야 합니다.
자궁내막증(症, endometriosis)
'자궁내막증'과 아래 '자궁내막종'은 이름에는 자궁이 들어있지만 사실 자궁에 생기는 증상이 아닙니다. 자궁내막에 있어야 할 조직이 자궁 이외의 부위에 있을 때 생기는 증상인데요. 흔한 원인으로는 생리혈 일부가 역류하면서 자궁내막 세포를 골반 내 다른 장기에 옮기는 게 아닐까 추정됩니다. 주로 '통증'과 관련되어 있어서 심한 골반통과 성교통, 생리통을 일으킬 수 있어요.
자궁내막종(腫, endometrioma)
이름은 자궁내막 종이지만 난소의 종양입니다. 자궁내막 조직이 난소에 붙어서 혹을 형성한 경우를 말해요. 혈액이 고여 초콜릿색으로 변한다고 해서 '초콜릿 낭종'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자궁내막증과 마찬가지로 요통, 골반통, 성교통의 원인이 됩니다.
자궁의 질환이 가장 골치 아픈 이유는 재발이 잦다는 겁니다. 매달 월경을 겪는 여성의 자궁은 어쩔 수 없이 세포가 증식했다 탈락하고 또 증식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겪습니다. 다른 조직에 비해 세포분열이 활발한 곳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의 횟수도 많을 수밖에요. 생활습관과 환경의 영향도 크고 유전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월경과 관련된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자칫 '이번생은망했어' 트랙을 타기 쉬운 질환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궁근종 보유자 여러분이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말이지요.
근종 수술, 해야 되나요 하지 말아야 되나요?
저의 근종 수술 후일담을 마저 이야기할까요. 수술 후 복근이 회복될 때까지, 개복수술을 두고 '한 번은 해볼 만하다'라고 저를 위로했던 모든 사람을 원망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특히 엄마.. 나한테 왜 그랬어요. 이 정도로 끝내주게 아프다고 귀띔해주었다면 못해도 세 번은 더 고민했을 겁니다. 하지만 회복기가 지나고 나서 내린 결론은 '그래도 수술하길 잘했다'는 겁니다. 그 후 생리양도 줄었고 임신도 성공했거든요. 수술을 했어도 제 자궁에 근종은 여전히 존재합니다만 꾸준히 신경 쓰고 있고 적어도 아직은 자궁보다 더 크게 자란 것이 없으니 만족합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케이스를 들려드릴게요. 그분의 시작은 저와 비슷했습니다. 30대 초반에 너무 많은 생리양과 복부 팽만감을 주소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자궁근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저와 같은 개복수술을 감행했지요. 여러 개의 근종을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6개월 뒤 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수술 이전과 똑같은 상태로 근종이 다시 자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다시 수술하면 되지요"라고 담당 의사는 말했다고 합니다. 망설이다 2년 뒤 다시 개복 수술을 받았고, 이번에는 근종이 너무 많아서 수술시간이 무척 길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수술 후 근종이 도로 처음처럼 자란 것을 다시 확인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3개월이었습니다.
도로 자란 근종을 확인했던 마지막 내원 때 담당의사는 그녀에게 이제는 자궁을 들어내는 방법밖에 없다는 말을 전했다고 합니다. 두 번의 수술만으로도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수술을 또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섰다고 해요. 그리고 수술하기 전과 똑같은 상태로 돌아와 지금도 생리만 다가오면 불러오는 배와 많은 생리양을 감내하며 지내고 있고, 최근 생리 컵의 구입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근종은 수술 전과 거의 같은 상태로 더 자라지도 작아지지도 않은 채입니다. 그녀는 두 번이나 수술한 것을 후회합니다. 어차피 결과가 똑같을 거면 그 힘든 수술을 감내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지요.
목표가 뚜렷했고 방법을 스스로 선택했지만 결과는 달랐던 두 개의 케이스를 듣고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해야 되나요, 하지 말아야 되나요. 답을 선뜻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자궁근종은 유전적인 영향이 크고 호르몬에 반응해서 자란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외의 원인은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왜 생겼는지 모르기 때문에 왜 '다시' 생기는 지도 물론 알 수 없지요. 분명한 건 모든 자궁근종을 포함해 자궁의 질환이 수술로 완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수술은 이미 생긴 것을 없애는 훌륭한 방법이지만 다시 생기지 않게 하는 방법은 아니거든요. 이것은 다른 종양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심해선 안되지만 두려워할 것도 없어요
병에 대한 개념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고 그에 따라 '병을 고친다', '병이 낫는다'는 개념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완치가 가능하지 않은 만성적인 질환들로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의학과 과학은 발달했지만 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있고, 수명이 길어지면서 과거에 드물었던 질환들도 이제는 흔해졌습니다. 우리는 긴 평생을 지나면서 많은 질병을 만나는데 개중에는 완전히 낫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평생 잘 달래 가며 데리고 살아야 합니다. 알레르기, 자가면역질환, 고혈압, 그리고 자궁근종 같은 것들이지요.
자궁근종의 관리와 예방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글을 통해 조금씩 언급해왔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보면 가족력이 비교적 두드러지므로 어머니나 여자 형제에게 근종 혹은 자궁질환 내력이 있다면 추적 검사를 통해 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성 호르몬에 반응해 자라는 양성종양이므로 호르몬의 자극이 과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호르몬과 관련해서는
- 붉은 살코기나 피토에스트로겐 식품을 피하고
- 우유와 유제품도 논란이 있으니 주의할 것
- 체지방이 지나치게 늘면 근종의 크기도 커질 수 있으니 비만을 경계할 것
- 에스트로겐인 양 행동하는 플라스틱의 환경호르몬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기억해주세요.
한편 양성이라도 종양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 달리기 등 유산소 운동으로 하체 혈액순환을 촉진해주는 것이 좋고
- 커피나 흡연처럼 순환을 방해하는 습관은 멀리하셔야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자궁 주변의 순환 장애를 여러 자궁질환의 원인으로 봅니다. 아랫배가 차고 혈관이 좁아지고 순환에 장애가 생기면 혈류가 느려지게 마련이고 한의학에서 '담음'과 '어혈'이라고 부르는 피를 탁하게 만드는 찌꺼기 물질들이 자궁 안에 머물게 되지요. 근종 자체는 세포분열의 오작동이지만 오작동이 일어나게 하는 원인, 한번 일어난 오작동이 교정되지 않는 이유의 기저에 이와 같은 탁해진 혈류의 흐름이 있다고 봅니다. 낮은 체온과 질이 떨어진 순환은 암세포가 살기 좋은 배경으로도 꼽히지요. 이와 같은 하복부 내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한의학적 관리의 목적이 있습니다.
'병명'이라는 것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내 증상이 이름을 가진다는 것에 사람들은 두려움도 느끼고 위안도 얻습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질병의 네이밍은 건조하고 단순합니다. 자궁근종은 '자궁이라는 장기의 근육층에 생긴 혹'이고 월경전 증후군은 '월경을 시작하기 전의 시기에 찾아오는 특정할 수 없는 여러 증상의 무리(群)'이지요. 뜯어보면 병에 대한 단순한 개요가 들어있을 뿐이지만 이름을 달고 정의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심각한 환자가 된 것같이 느끼기도 하고, 나만 가진 증상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합니다.
자궁근종은 이미 흔하지만 아마 앞으로 더 흔해질 거예요. 그만큼 몰라서도 안되지만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스로 자궁에 대해 알고, 지켜보고, 치료하고, 관리하는 전방위 감시망을 촘촘히 편다면 근종이 우리를 배신하는 일은 드물 겁니다.
전직 패션 에디터, 현직 마르지엘라를 입은 한의사입니다.
요즘 여자를 위한 한의원, '달과궁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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