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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Nov 10. 2017

내 몸에 필요 없는 물

나는 왜 자꾸 부을까

살찐 거 아니에요, 부은 거예요


     월간지 에디터의 가장 괴로운 순간은 원고 독촉으로 꽁무니가 타던 밤도 아니고 연이은 철야 후 다시 출근하는 아침도 아닙니다. 마감을 하얗게 불태우고 난 직후에 진행되는 다음 달 기획회의지요. 아이디어 요정이 사라져 버린 빈곤한 뇌를 쥐어짜 낸 끝에 한 번은 이런 기획을 낸 적이 있습니다.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해 여러 작가가 다른 이야기를 풀어가면 어떨까? 이 기획은 운 좋게도 유명한 소설가분들의 도움을 받아 실제로 기사화되었습니다. 똑같은 하나의 문장이 작가에 따라 전혀 다른 스토리텔링으로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진진했지요. 에디터를 그만둔 지 오래된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기획안 중 하나입니다. 

 

    한의사로 일하면서 종종 그때의 그 기획안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같은 진료과목으로 시작하지만 환자 분마다 천차만별의 히스토리가 펼쳐질 때지요. 다이어트 상담이 특히 그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다이어트'로 등록하고 오셔서 '살빼 주세요'라며 운을 떼시지만 그 후에 펼쳐지는 각자의 스토리는 전혀 다른 드라마입니다. 원래 체중이 어땠는지, 갑자기 찌게 된 계기가 뭔지, 운동은 하는지, 식습관은 어떤지, 생리주기는 어떤지, 출산한 적은 있는지 다양한 지표의 조합이 한 사람의 상태를 설명하는 스토리텔링을 구성합니다. 


    그중에서도 여자들의 다이어트 드라마를 구성하는 주요 테마 중 하나는 '붓는다'는 겁니다. 물론 어떻게 붓는지 왜 붓는지 얼마나 붓는지는 다 다릅니다. 살찌니까 더 잘 부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이 부어요. 하루 종일 서있으면 다리가 퉁퉁 부어요. 저녁에 발목에 양말 자국이 남아요. 오후만 되면 다리가 부어서 아파요. 자고 일어나면 손이 부어서 주먹이 안 쥐어져요. 생리하기 전에 퉁퉁 부어요. 생리통으로 진통제 먹으면 더 부어요. 임신하고 부었던 게 출산했는데도 그대로예요. 부어서 몸이 무거워요. 아침하고 저녁에 체중 차이가 너무 많이 나요. 살찐 거 아니에요, 부은 거예요.

절정으로 부으면 내 살이 내 살같지 않습니다. 분명 바지를 벗었는데 바지를 더 벗어야만 할 것 같은 이 느낌...


    저 역시도 붓는 것의 고통을 잘 압니다. 제 월경전 증후군의 가장 큰 증상 중 하나가 붓는 거였거든요. 출근할 때 수월하게 입었던 스키니진을 퇴근해서 벗어보면 다리에 바지의 봉제선이 그대로 남아있곤 했습니다. 임신했을 때에도 저녁만 되면 아침에 분명 있었던 발목의 복숭아뼈가 살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지요. 저의 경우는 주로 하체가 붓고 오후로 갈수록 심해졌다가 아침이 되면 해소되는 타입이었습니다. 건강검진을 해도 붓는 것에 대한 특별한 이상소견은 나오지 않았지요. 



나는 건강한데 왜 자꾸 붓는 걸까요


    붓는 것을 의학적으로는 '부종(浮腫, edema)'이라고 합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제공하는 의학정보에 따르면 부종이'조직 내에 림프액이나 조직의 삼출물 등의 액체가 고여 과잉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성분 중에 50~70%는 물인데 대부분이 세포 안에 있는 세포 내액이고 나머지가 혈액과 세포 사이사이에 있는 세포외액이지요. 이 중 '간질액'이라고도 불리는 세포외액의 양이 늘어나면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붓는 상태가 찾아옵니다. 부었다고 느낄 정도면 간질액이 3L 이상이라고 하는군요어마어마하다.


    부종을 검색해보면 다양한 원인이 나옵니다. 우리는 부으면 '신장에 문제가 있나'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의외로 몸이 붓는다고 신장내과를 찾는 사람 중 진짜 신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1백 명 중 3명밖에 안된다고 신장내과 전문의가 말하기도 했지요그와중에 100명 중 95명이 여자라는 게 함정.1) 신장뿐 아니라 심장, 간, 갑상선의 문제도 부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부종 3대 장기라 불리는 심장, 신장, 간의 이상으로 붓는다면 문제는 조금 심각할지도 모릅니다. 부종을 일으키는 심부정맥혈전증이나 신부전, 간부전은 무서운 병이지요.

신장성 부종은 얼굴과 눈 주변 조직의 급격한 부종이, 심장성 부종은 전신성 부종과 심장의 압박감이, 간성 부종은 다리 부종과 배의 복수가 특징입니다. 


    그밖에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왜 붓는지 당최 알 수 없는 모든 부종을 '특발성 부종'이라고 합니다. 생리학과 병리학을 공부할 때 저를 가장 큰 혼란에 빠뜨린 이름이 바로 저 '특발성 부종'이었습니다. 특발성이라니, 뭔가 특별한 경우에만 일어난다는 뜻같이 생겨서는시험볼 때마다 그렇게 헷갈릴 수가 없다 오히려 '특별한 원인을 밝힐 수 없는 경우'에 붙인다는 게 여전히 와 닿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이유 없이 붓는 경우는 모두 특발성 부종으로 분류됩니다. 건강 검진해보면 어디 아픈데도 없는데 자꾸 붓는 사람들, 저를 포함해 아마도 대부분의 잘 붓는 여자들이 속한 카테고리일 거예요. 


    '건강한데 자꾸 붓는다'는 말은 사실 모순입니다. 원인을 어떤 분류로 특정하지 못할 뿐 어딘가 기능의 이상이 있다는 뜻이지요. 건강검진은 건강에 관한 여러 지표들을 통틀어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긴 하지만 '건강검진에 이상이 없다'가 곧 '건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의학에서 '미병(未病, 아직은 병이 아닌 상태)'이라고 표현하는 상태, 즉 완연한 질병의 모습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분명 기능이 저하된 상태도 분명 존재하거든요. 환자분들이 '저는 건강 검진하면 다 괜찮다고 나와요'라고 말씀하시면서도 '근데 어디 어디가 불편하다'는 말씀을 꼭 함께 하시는 이유지요.



여자와 부종의 밀월관계 


    남자에 비해 여자가 유난히 더 잘 붓는 이유를 질환에서 찾자면 가장 흔한 두 가지는 갑상선 기능 저하와 빈혈일 겁니다. 갑상선 호르몬이 부족하면 피하의 점다당질이 분해되지 못한 채 있다가 수분을 끌어당깁니다. 이렇게 생긴 부종은 '점액 수종'이라고 해서 손가락으로 눌러도 자국이 남지 않는 것이 특징이고 보통 체중 증가와 동반해서 나타나지요. 빈혈이 심한 경우에는 혈관에 알부민이나 글로불린 수치가 낮아져서 삼투압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혈관 밖으로 수분이 쉽게 빠져나옵니다. 둘 다 부종 외에도 특징적인 증상들을 동반하기 때문에 미리 감별해서 대처해야 해요.


    또 하나의 원인은 월경과 여성호르몬의 영향입니다월경은 도대체 여자의 건강에 관여안하는 데가 없군요. 여성호르몬은 임신과 출산을 위해 몸에 수분을 모아두려는 경향이 있어서 배란기부터 생리하기 전까지 이른바 '황체기'에 조직 여기저기에 물을 붙잡아둡니다. 생리가 시작되면 이런 호르몬 작용이 사라지면서 수분이 일시에 배출되기 때문에 갑자기 설사가 일어나기도 하고 소변 양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월경을 기준으로 주기성을 띠고 붓는다면 호르몬의 영향을 의심해볼 만합니다. 

황체기에는 몸에서 수분을 가지고 있으려는 경향 때문에 곧잘 변비가 생기기도 합니다. 


    근육량이 적고 체지방이 많은 것도 한 가지 원인이 됩니다. 근육량이 많으면 기초대사량이 높고 체온이 높게 유지되면서 순환이 원활해집니다. 근육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여자가 살찌면 더 잘 붓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혈관 속에 지방 성분이 축적되어 순환을 한층 더 방해하기 때문이지요. 다리가 특히 잘 붓는 경우 역시 하체 근육량 부족이 원인일 때가 많습니다. 정맥은 근육의 힘과 판막 만으로 혈액을 심장으로 돌려보내야 하는데 근육량이 부족하면 정맥에 수분이 정체되고, 결국 압력 때문에 세포 사이로 빠져나오게 되지요.


    여자에게 셀룰라이트가 유난히 많은 것은 부종의 영향이 큽니다. 셀룰라이트는 넘치는 지방만큼이나 다이어터들의 주적이지요. 셀룰라이트의 정확한 정의는 '여성 진행성 섬유성 부종’입니다. 셀룰라이트는 단순한 지방덩어리가 아니라 굳이 따지자면 '당화 된 지방 껍질'에 가깝습니다. 국소 비만과 부종의 콜라보로 해당 부위 피하조직이 섬유화 되고 딱딱해져서 생기는 것이지요. 남자 성인은 살이 찌고 배가 나올지언정 셀룰라이트가 생기진 않습니다. 이게 다 여자의 부종 때문이지요.


 

몸이 원하지 않는 물 몸 밖으로 내보내기


    부종을 해소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이뇨', 즉 모종의 방법을 이용해 소변으로 내보내는 겁니다. 몸에서 수분을 내보내는 통로는 호흡, 배뇨, 땀 등이 있는데 배뇨가 가장 많은 양의 수분을 빠르게 배출하는 방법이거든요. 너무 심한 부종으로 몸의 다른 기능이 영향을 받을 때 빠르게 수분의 절대량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근본치료가 아니라는 데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몸이 수분을 쌓기 시작한 원인이 어딘가에 있는데 쌓아둔 수분을 빼버리면 몸은 더 적극적으로 수분을 쟁여놓고 싶어 할 겁니다. 급격하게 살을 빼고 나면 요요가 더 심하게 오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식습관입니다. 최대의 적은 '단짠'인데요. 염분은 당연히 제한해야 하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 이유 없이 붓는 사람은 단 것도 짠 것만큼이나 멀리해야 할 음식입니다. 짠 음식은 체액의 삼투압을 높여서 수분을 더 끌어당기게 만들고 단 음식은 신장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소화를 방해해 대사율을 떨어뜨려 간접적으로 몸을 붓게 만듭니다. 동의보감에도 부종을 설명한 부분에 '소금은 입에도 대지 못하게 하라'든가 '단 맛을 삼가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염분을 제한하는 식이에서 중요한 또 한 가지는 칼륨이 풍부한 음식을 먹는 겁니다. 몸에 소금(염화나트륨)이 많이 들어왔어도 칼륨이 들어오면 염화나트륨은 칼륨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몸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나도 모르게 섭취한 염분이 많다고 해도 칼륨이 든 식품 역시 많이 섭취하면 체내 염화나트륨을 줄일 수 있지요. 칼륨이 풍부한 음식은 한 번만 구글링해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신부전 환자는 칼륨을 배설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장 기능의 이상이 의심된다면 칼륨 섭취는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두세요.  


    여성호르몬과 관련된 여자의 부종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특히 임신기간에 붓는 것은 거의 숙명에 가깝지요. 평소 운동으로 적당한 근육량을 유지하고 자주 움직여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 도움이 될 겁니다. 오래 서 있는 것보다는 걷는 것이 좋고, 같은 자세로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편이 낫고, 지나치게 따뜻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보다 적당한 온도 변화를 주는 것이 유리합니다. 평소 순환이 떨어진 상태라면 호르몬의 영향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에는 혈액순환의 개선이 관건이 되겠지요. 

하루종일 서있는 일, 하루종일 앉아있는 일이 모두 잘 붓는 환경입니다. ... 결국은 우리 모두가 부을 수밖에 없나봅니다.



    한의학에는 '습(濕)'과 '담(痰)'과 '음(飮)'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셋 다 '몸이 원하지 않는 물'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포함되어 있는데요. 은 비위의 기능이 떨어져서 소화 과정에서 깔끔하게 처리되지 않고 몸속에 남은 액체를, 과 은 우리 몸의 진액이 혈액, 림프액, 호르몬 등 유용한 액체로 변환되지 못하고 변질된 채 몸속을 돌아다니며 병을 일으키는 액체를 말합니다담은 좀 더 끈적한 것, 음은 좀 더 묽은 것. 이 셋은 부종을 일으킬 뿐 아니라 몸 여기저기에 쌓여 통증을 일으키고 순환장애의 원인이 되며 각종 질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십병중구담(十病中九痰, 열 개의 병 중에 아홉 개가 담이 원인이라는 뜻)'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지요. 이 개념을 이용해 부종 치료에 '제습'과 '거담'의 치료법을 사용합니다.   





    증상의 진단은 종종 명탐정의 일과 비슷합니다. 증거를 모으고 증언을 듣고 현장을 살펴본 다음 사건의 전말을 일목요연하게 풀이하는 일이지요범인은 우리 중에 있어!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한 소설이 백 명의 손에서 백 가지 다른 결말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에서 단서를 그러모아 퍼즐을 맞추듯 진상에 다가서야 합니다. 특별한 원인이 없이 일어나는 특발성 부종이야말로 그 사람만의 특별한 단서를 찾아야만 치료할 수 있는 증상이지요. 범인은 어쨌든, 우리의 몸속에 있으니까요. 

    

1) 몸이 붓는 여섯 가지 이유 ... 헬스조선, 2005.10.27







미미최(최혜미)

전직 패션 에디터, 현직 마르지엘라를 입은 한의사입니다.

요즘 여자를 위한 한의원, '달과궁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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