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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Nov 17. 2017

지방세포, 적과의 동침

여자에게 진짜 다이어트가 필요한 순간

체지방의 변명


    지방만큼 애증의 관계에 있는 영양소가 있을까요. 기억하는 한 어린 시절 지방과의 첫 대면은 무던했습니다. 탄수화물, 단백질과 함께 '3대 필수 영양소' 중 하나, 체온을 유지하는 단열재, 몸의 구조물을 보호하는 쿠션, 1그램 당 4kcal밖에 만들지 못하는 다른 영양소들보다 두 배이상 탁월한 에너지원. 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세포막의 성분도 지방이고 그 세포막을 통과해야 되는 호르몬의 성분도 지방이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장기인 뇌의 구성성분도 대부분 지방입니다. 우리 몸에 이토록 중요한 지방이 언제부터 공공의 적이 될 걸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몸의 지방은 주로 척결의 대상입니다. 현대인에게 체지방은 모름지기 줄여야 하고, 분해해서 없애야 하며, 극단적으로는 얼리거나 녹여서라도 몸 밖으로 빼내면 좋은 것이지요. 연관검색어인 내장지방이나 콜레스테롤, 고지혈증의 이미지도 부정적이긴 마찬가지이고, '기름지다'는 말은 다이어트라는 신흥 종교 아래서 거의 악마적으로 해석됩니다. 이 대동 단결한 지방 배척의 흐름은 곧 거대한 시장으로 연결됩니다. '체지방만 효과적으로 분해한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다이어트 특화를 표방한 의원과 한의원, 피트니스 클럽, 마사지샵과 각종 건강기능식품들이 성행 중이지요.

체지방의 인생무상.jpg


    지난 몇 년 간 <지방의 누명>1), <지방의 역설>2)과 같은 책이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은 이 같은 상황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람의 심리란 '나쁜 놈이 사실은 나쁜 놈이 아니었다'는 반전에 매혹되고 뻔한 이야기 뒤에 숨겨진 내막을 상상하며 사건의 전말을 뒤집는 음모론에 열광하게 마련이거든요. 그러나 지방의 해악을 고발하는 <당신이 몰랐던 지방의 진실>3)과 같은 책도 여전히 베스트셀러에 올라있습니다. 대사증후군이 현대의 난치병으로 창궐하고 남녀노소가 365일 '다이어터'로 살아가는 고영양의 시대, 악의 축으로 몰린 지방을 둘러싼 오해와 반박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감자입니다. 

1) <지방의 누명>, MBC 스페셜 '지방의 누명' 제작진, 디케이제이에스, 2017

2) <지방의 역설-비만과 콜레스테롤의 주범 포화지방, 억울한 누명을 벗다>, 니나 타이숄츠/양준상, 주원진(역자), 시대의 창, 2016

3) <당신이 몰랐던 지방의 진실-어느 심장병 의사의 12년의 실험과 기록>, 콜드웰 에센스틴/강신원(역자), 사이몬북스, 2015


    나이와 체형, BMI, 체지방률까지도 초월하는 다이어트라는 이 신흥종교에 대해 여자라면 누구나 많든 적든 어느 정도의 신앙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물론 저를 포함해서. 저지방 우유와 무지방 요구르트를 사고 버터 대신 올리브유를, 생크림 케이크 대신 그리스식 샐러드를 건강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요즘 여자'의 다이어트 상식이지요. 하지만 여자를 위한 다이어트란 체지방을 줄여서 보기 좋은 날씬한 몸을 만드는 것만 의미하진 않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체지방도, 극단적으로 부족한 체지방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여자에게 체지방과의 전쟁은 아름다움보다 건강을 위한 승부수여야 하지요. 


  

여자에게 진짜 다이어트가 필요한 순간


     체지방은 여자에게 한 가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가임기 여성과 체지방의 관계에 대해서는 '조기폐경'을 주제로 한 글에 짧게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지방 세포는 에스트로겐을 분비하는 일종의 내분비 기관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체지방률의 변화는 여자의 몸을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체지방률과 여성질환의 인과관계가 모두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에요. 어떤 때에는 체지방이 원인이 되어 질환이 나타나고, 또 다른 때에는 다른 원인으로 인해 체지방의 축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여자의 몸에 너무 많거나 혹은 너무 부족한 체지방이 원인이 되어 일어날 수 있는 대표적인 질환에 대해 얘기해볼까 해요.


다낭성 난소 증후군(PCOS)

    다낭성 난소 증후군(Polycystic Ovary Syndrome, PCOS)은 '난소에 초음파상 10 mm 이하의 난포가 여러 개 보이면서 그와 동시에 나타나는 여러 증상의 무리'라는 뜻입니다(병명의 단순함에 대해서는 전에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평소에는 난포가 좌우 번갈아 한 개씩만 성숙해서 배란이 이루어지는 게 정상인데, 동시에 여러 개의 성숙 난포가 보이면 PCOS를 의심해볼 수 있어요. 다낭성 난소, 만성적인 무배란과 무월경,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의 혈중 수치가 높아지는 증상(Hyperandrogenism)까지 세 가지 증상 중 둘 이상이 관찰되면 진단할 수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PCOS로 진단받은 여성은 2006년 12,201명에서 2012년에 23,486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하지요.


    PCOS의 '여러 증상'들 가운데 특징적인 것 중 하나가 높은 인슐린 저항성과 대사증후군입니다. 즉 비만한 여성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여성질환 중 하나예요. 몇 달째 생리가 없어서 찾아오는 많은 여자분들 가운데 최근 급격히 체중이 늘었다거나 허리둘레가 증가하고 고지혈증이 생긴 경우에 초음파를 확인해보고 다시 오시라 하면 PCOS 진단을 받아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남성호르몬 영향으로 털이 많이 난다거나 여드름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에요. 이 경우 다른 약을 쓰지 않고 체중(체지방!)만 정상범위로 조절해주어도 인슐린 저항성이 떨어지면서 무월경이 치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난임

    비만과 난임의 관계는 위에 언급한 PCOS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만성적인 무배란과 무월경이 진단의 한 축이고 보면 당연한 수순이겠지요. 하지만 꼭 PCOS 진단을 받지 않더라도 비만은 임신에 결코 유리한 환경이 아닙니다. 비만이 임신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수정과 착상에 그치지 않고 임신의 유지와 출산의 전반적인 과정을 지배합니다. 임신 초기의 모체 비만은 임신 중 겪을 수 있는 임신 합병증 및 태아 조기 사망과 같은 주산기 증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요. 체중 감량은 난임으로 고통받는 과체중 여성이 가장 먼저 택할 수 있는 치료입니다.


    여성의 비만은 호르몬의 문제뿐 아니라 대사증후군에서 나타나는 순환장애의 문제를 동반합니다. 고혈압과 고혈당, 고지혈증은 끈적하고 탁해진 혈액이 혈관을 원활하게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혈액으로부터 산소와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 난소와 자궁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한의학에서 '담음'이라고 부르는 혈액과 체액 속의 노폐물, 또는 '어혈'이라고 부르는 제 기능을 잃어버린 혈액의 구성성분이 몸 구석구석에 흐르지 않고 남아서 그 부분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것도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겠지요.

대사증후군의 순환장애는 다각도로 일어납니다. 혈액이 탁하고 끈적해지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지요.


성조숙증

    태어나 가장 먼저 겪게 되는 여성질환으로 자리 잡은 성조숙증의 원인은 워낙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이 과잉 영양으로 인한 소아비만이에요. 너무 잘 먹고 영양이 넘쳐서 발육이 남다른 아이들은 성장도 빠르지만 그만큼 성적인 조숙도 먼저 일어나게 됩니다. 여전히 어른들 중에는 '아이들의 살은 나중에 다 키로 간다'며 무조건 잘 먹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어른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삶의 지혜를 담고 있지만, 모자란 영양보다 과잉 영양이나 영양의 불균형이 더 문제가 되는 '요즘 아이'의 비만 문제만큼은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어요. 


    소아 비만이 단지 성조숙증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소아청소년기의 비만은 성인의 경우에 비해 비만의 정도도, 합병증도 심하고 자존감 형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또 어린 시절에 발병한 대사증후군이 커서까지 이어지는 비율도 높은 편이지요. 10대에 대사증후군이 발병해 지속되면 중년에 들어서서 대사증후군이 나타난 사람보다 심근경색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 빨리 나타나거나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갱년기 비만

    갱년기에는 특징적인 증상이 많지만 그중 하나가 갑작스러운 체중의 증가입니다. 45세 이후부터 50세 전후에 다이어트를 위해 한의원을 찾아오시는 분들 중 많은 수가 여기에 속하지요. 말씀하시는 증상은 통하는 데가 있습니다. '평생 유지해오던 체중이 있는데 최근 1년 사이에 갑작 5~10kg가 쪘어요' 내지는 '체중이 많이 는 건 아닌데 배랑 등에 군살이 갑자기 붙어서 옷이 안 맞아요.' 몸에 관해 전반적으로 문진 해보면 흔히 겪는 갱년기 증상을 뒤늦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지요. 월경 주기가 흐트러졌어요. 얼굴로 열이 확확 올라요. 가슴 위쪽으로만 땀이 나요. 잠을 참 잘 잤는데 요즘 잠을 잘 못 잤오. 


    여성호르몬이 줄어들면서 여자의 몸은 체지방을, 그것도 복부 주위에 집중적으로 쌓기 시작합니다. 평소와 식사량 및 활동량이 같다고 가정할 때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갱년기가 지난 이후에도 1년에 0.8~1kg 정도씩 꾸준히 늘어난다고 하지요. 성장기가 끝나고 성장호르몬이 잦아들면서 체중이 쉽게 증가됐던 것처럼, 가임기가 끝나면 여성호르몬이 줄어들면서 같은 수순을 밟게 되는 겁니다. 이 시기에는 체지방을 공격적으로 줄여나가면 몸이 더 축날 수 있습니다. 호르몬의 변화와 제반 증상에 초점을 맞추되 체지방은 차선으로 두고 관리하는 것이 좋겠지요. 

갱년기가 시작되면 갑자기 중앙 집중형으로 군살이 붙기 시작합니다. 브래지어와 타이트한 허리가 불편해지지요. 



비혼 여성의 대사증후군을 막아라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 웬만한 여성질환은 다 낫는 것처럼 들으며 자라지만 애 낳고 나면 여드름도, 자궁근종도, 수족냉증도 다 좋아진다면서요 사실 임신과 출산은 상상 이상으로 여자의 몸을 혹사시킵니다. 출산 자체만으로 이미 산부인과, 마취과, 소아과 적어도 세 분야의 전문의가 대기해야 하는 응급 중의 응급상황인데다 출산을 위해 틀어지는 뼈마디와 허물어지는 산도의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비혼 여성이라서, 여성 호르몬에 오래 노출되어서 오는 질환들이 분명 있지만 임신과 출산, 혹은 거기에 따르는 합병증에 비하면 뭐가 더 심각한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혼자 사는 여성은 식습관이나 생활이 불규칙할 확률이 높고  비혼 여성 건강관리에 있어 제 1과제는 임신과 출산이 아니라 대사증후군을 예방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비혼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던 잡지 <1인용 행복>이 창간호였던 '건강'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기로 한 여성들의 가장 큰 건강 고민은 호르몬의 변화나 불균형으로 인한 여성질환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심장질환과 암, 정신적인 타격을 입는 우울증과 치매, 그리고 노후를 위협하는 고혈압과 당뇨라고 하지요. 


     '혼밥'하는 1인 가구의 비만 유병률에 대해 보도한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세끼 모두 혼자 식사하는 사람의 비만유병률은 34.7%로 세끼 모두 함께 식사한 사람(24.9%) 보다 높았고 나트륨을 하루 2,000㎎ 초과 섭취하는 비율도 혼자 세끼를 먹는 사람이 34.3%로 세끼 모두 함께 식사하는 사람(24.3%)에 비해 역시 높았다는 겁니다.4) 혼밥이 트렌드이긴 하지만 지속적으로 혼자 식사를 하게 되는 1인 가구 여성이라면 이 같은 결과에 조금 더 주목할 필요는 있습니다. '혼밥 같이 먹기'를 중개하는 플랫폼이 인기를 끌고 '소셜다이닝'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개선의 움직임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5)

4) "1인 가구 절반 종일 혼밥… 비만유병률도 35%"... 한국일보, 2017.05.16

5) "혼자 밥 먹기 지겨울 때, 숟가락 얹어도 될까요?… 밥상과 밥상 잇는 ‘소셜 다이닝’"... 경향신문, 2015.12.24

    여성이 중년 이후에 겪는 대사 증후군은 위에 언급한 여러 가지 만성질환의 베이스가 됩니다. 가족공동체 없이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비혼 여성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에 1인 가구, 비혼 여성의 체중관리는 곧 건강관리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 셈이지요. 그렇기에 혼자 사는 여성은 소홀한 식습관과 흐트러진 생활습관에서 오는 대사증후군 형 비만을 더 세심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 그게 진정한 '굿 다이어트'죠.





    

    제 아무리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 용어웰빙과 휘게와 욜로와 라곰 와 핫한 식습관 혁명이 식탁 위를 휩쓸어도 '다이어트'라 불리는 체중 조절에 관한 열망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열망의 뿌리가 아름다운 몸으로부터 건강한 몸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체지방은 여자에게 때로 적이면서 때로 가장 우호적인 아군입니다. 무조건 체지방을 줄이는 게 아니라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 위해 체중을 조절하는 것이 여자에게 진짜 필요한 다이어트일 거예요. 







미미최(최혜미)

전직 패션 에디터, 현직 마르지엘라를 입은 한의사입니다.

요즘 여자를 위한 한의원, '달과궁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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