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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Dec 01. 2017

Epilogue: 여자의 모든 순간

'요즘 여자'의 실전 건강법

달과 궁, 슬럼독 밀리어네어


    2008년 개봉한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은 가난하기 짝이 없는 빈민가 출신 소년입니다. 나이는 고작 열여덟 살,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세간이 은연중에 정해놓은 '지적인' 사람과 지구와 명왕성만큼 멀리 있는 이 남자가 백만 달러 상금의 퀴즈쇼에서 우승의 문턱 앞에 다다릅니다. 영화는 퀴즈의 정답을 맞히는 순간과 소년이 그 문제의 정답을 알 수밖에 없었던 인생의 굴곡진 순간을 교차 편집해서 보여줍니다. 짧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온몸으로 부딪쳐온 사람이기에 책에서도 얻을 수 없는 지식을 체득하게 된 것이지요. 


    여자의 건강에 대해 진료하고 상담하고 글 쓸 때마다 가끔 이 영화를 떠올리곤 합니다. 저는 왜 꼭 여자의 몸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스스로 여자라는 것도 이유는 되겠지만 아마 제가 보고 자란 사람들이 모두 여자였기 때문일 겁니다. 딸만 넷인 집의 마지막 딸로 태어났고, 공무원이라 주말에만 집에 오셨던 아버지 대신 늘 엄마와 언니들을 보며 자랐으며,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여중과 여고를 나와 역시 바랐던 건 아니지만 여대도 아니면서 여자뿐이었던 의류학과에 들어갔지요. 거기다 여자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던 패션계에서 일한 시간까지 더하면 서른 해 가까운 시간 동안 다양한 연령대의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온 셈입니다.


    그 시간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여자들이 어떤 생애주기를 갖는지, 언제 월경을 시작하고 생리통으로 어떻게 괴로워하며 근종을 발견해서 얼마나 충격을 받는지, 또 근종은 몇 개까지 생겨서 몇 센티까지 자랄 수 있는지, 여자에게 올 수 있는 암이 어떤 것이 있고 자궁을 절제한 뒤 여자의 몸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 얼마나 신기한지, 그 과정에서 여자는 건강의 어떤 부분을 희생해야 하는지, 여성 호르몬이 여자의 몸에 미치는 영향은 또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제가 한의사가 될지도 몰랐고, 여자의 몸을 치료하게 될지는 더더욱 몰랐던 시절에 직접적으로 또 간접적으로 겪은 '여자의 삶'이 지금의 이 <달과궁 프로젝트>에 모여있습니다. 



'요즘 여자'의 '건강 백서'


    이 연재의 두 가지 핵심 키워드는 '요즘 여자'와 '건강 백서'였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요즘' 여자의 건강 '백서'라고 해야겠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요즘'은 어떤 시대인가요? 제게 요즘이란, 삶은 빡세고 스트레스는 늘고 환경호르몬은 어디에나 있으며 결혼이나 출산처럼 이전 세기의 여자들에게 절대적이었던 통과의례의 가치가 모호해져 가는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자들의 성조숙증부터 갱년기 장애까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지 모를 환경과 스트레스까지 다루었지만 어딘가에 빠뜨린 주제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못다 한 주제에 대해서는 번외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 '백서'라는 키워드를 위해서는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질환'으로 분류되는 무거운 주제와 질환까지는 아닌 가벼운 증상을 모두 다루고자 했습니다. 첫 번째 주제를 자궁근종이나 조기폐경처럼 무거운 주제가 아니라 생활 속에 소소하게 파고들어있는 월경전 증후군으로 삼았던 것도 그러한 맥락이었습니다. 수족냉증이나 스트레스처럼 가벼운 주제도 진단명이 있는 질환과 같은 무게로 다루었고, 자궁적출 문제처럼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굳이 포함시켰습니다. '삶의 질'은 무거운 질환에 의해서도 해쳐지지만 무심코 넘기는 작은 증상으로 더 빈번히, 더 적극적으로 손상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또 한 가지 방향은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지식을 동원해 이야기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서양의학적 진단기준부터 식단, 영양제, 한의학적인 치료와 처방까지 망라한 것은 그 때문이지요. 한의사라는 전문직이 이 글에 조금 더 신빙성을 더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면서도 한의학적인 이야기로만 글을 끌고 가고 싶지 않았던 아이러니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한의사가 왜 양방 이야기를 하느냐는 비판도 있었고 사실 주제넘은 의견이었을지 모를 부분도 없지 않기에 반성도 됩니다만, 지식에 성역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중요한 건 어디에나 널려있는 지식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편집할지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요즘 여자의 건강 백서'라는 키워드는 여자로서도 한의사로서도 늘 고민하고 연구할 주제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자라는 뜨거운 감자


      요즘만큼 '여자'라는 화두가 피부로 느껴지는 때가 또 있었을까요. 분홍색 표지와 도발적인 제목을 단 페미니즘 서적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82년생 김지영'들이 거대한 공감대를 이루며 작은 이슈에도 여자의 편과 남자의 편이 쉽게 갈리어 설전을 벌입니다. 지금 온라인 공간에서 '여자'를 주제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여러 모로 복잡한 의미로 읽힐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저 건강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대척점에 남자의 존재를 세워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읽어내는 댓글과 반응들도 꽤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글이 그저 건강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고전적인 임신, 출산 위주의 건강백서에서 벗어나 보자는 것이 애초의 시도였으니까요. 


    제 삶을 둘러싼 수많은 여자들 중에 출산을 경험하지 않았거나 앞으로도 경험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매우 많고 그 삶을 존중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이를 낳았지만 '또' 낳고 싶어 하지는 않는 여자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 선택을 존중하지 않을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아이를 여러 명 낳고 전업주부로 살아온 여자도, 그렇게 살기로 결심한 여자도 역시나 많습니다. 그들의 선택도 역시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아이를 원하지만 갖지 못해 노력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들의 노력 역시 지지받아야 합니다. 논란을 일으킬만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저는 유리멘탈 개복치입니다제게 오는 환자 한 명 한 명이 저의 소중한 사람들을 닮아있기에 어떤 선택도 무시할 수 없을 뿐입니다. 


    저는 여전히 '여자가 행복한 세상'을 꿈꿉니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건강이라고 생각하고요. 세상은 건강하게 살기에 더 좋은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환경오염이나 스트레스와 같은 '온갖난관시리즈'는 건재하지만 의학기술은 발달하고 있고 접근 가능한 건강 정보는 무궁무진합니다. 주변에 내 건강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의료인은 또 얼마나 많은가요. 내 몸을 소중히 하겠다는 인식만 있다면 그 모든 것이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 글은 '요즘 여자 건강백서'라는 부제를 단 매거진 <달과궁 프로젝트> 연재의 마지막 글입니다. 글을 쓰면서 '여자의 건강과 삶의 질'에 대해 스스로 더 깊이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습니다. 함께 응원해주시고 구독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제 부족한 글이 여자들에게, 혹은 여자를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남자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기를 바랍니다. 





미미최(최혜미)

전직 패션 에디터, 현직 마르지엘라를 입은 한의사입니다.

요즘 여자를 위한 한의원, '달과궁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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