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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Nov 24. 2017

스트레스에 관한 조금 다른 생각

살게 하는 스트레스, 못살게 하는 스트레스

모두들 스트레스, 받고 계신가요?


    지금 막 차트를 정리하다 종이 한 장을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지난주부터 임신 8개월 차, 요즘 제일 하기 싫은 것 중 하나가 바닥에 떨어뜨린 물건을 줍는 일 그리고 양말 신는 일 인데 어째 평소보다 더 많이 떨어뜨리게 되는 건 왜일까요. 아까부터 계속 떨어뜨리고 줍길 반복하다 짜증이 나서 냅두고 이 글을 씁니다. 

요즘 가장 힘든 일 두 가지입니다. 그렇다고 남한테 부탁하기도 쫌 그런 두 가지 일이기도 합니다.


    주 6일 근무는 여느 한의사나 마찬가지, 진료 중에 틈틈이 브런치에 글을 쓰고 노트북과 태블릿을 꺼내 그림을 그리다가 환자가 오면 후다닥 집어넣곤 하는 생활이 몇 달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주 3회 야간진료에 퇴근하면 다리가 퉁퉁 부어서 바지와 한 몸을 이룹니다. 먹으면 대번에 부대끼고 안 먹으면 허기져서 눈 앞이 핑 돕니다. 지난주에 쓴 글에 안 좋은 댓글이라도 달리면 밤새 해명의 대댓글을 쓰는 꿈에 시달리고 환자는 밀리면 밀리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압박인 날들입니다. 서 있을 때는 무사히 잠겼던 가운의 단추가 마침 오늘 아침 자리에 앉으니 우두둑하고 뜯어지는군요. 한마디로, 저는 요즘 매우 스트레스받고 있습니다. 


    메릴린 먼로는 '다이아몬드가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Diamond is girl's best friend)'라고 노래했지만 그다지 공감은 되지 않는다 빗대어 말하면 스트레스야말로 현대인의 가장 가까운 친구입니다.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은 없지요. 남자의 어깨에는 가장의 무게, 어제 마신 술, 아이와의 대화 단절이 얹혀있고 여자의 마음은 결혼과 출산, 유리천장, 화장실 몰카에 대한 공포로 무겁습니다. 어르신들은 노후자금 부족과 건강에 대한 염려에 시달리고 아이들은 8개나 되는 학원 스케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엄마, 친구 문제로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옵니다. 심지어 제 뱃속에 있는 태아도 일만 하고 태교 따위 하지 않는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얘기는 누구나 합니다. 엄마도 하고 친구들도 하고 한의사인 저도 하고 심지어는 환자분들이 저에게 그렇게 말할 때도 있습니다. 정말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일까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스트레스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스트레스는 정말 만병의 근원일까요?


물리학에서의 스트레스
: 외부에 힘을 받아 변형을 일으킨 물체의 내부에 발생하는 단위면적 당 힘.

    여기에 튼튼한 철제로 된 스프링이 하나 있습니다. 적당히 힘을 주면 어떻게 될까요? 누르면 튀어 오르고 살짝 잡아당기면 튕겨나가겠지요. 적당한 힘이 아니라 아주 무거운 물건을 스프링 위에 3박 4일 정도 올려두어 봅시다. 물건을 치운 뒤에도 스프링은 쭈그러진 채 펴지지 않을 겁니다. 반대로 엄청난 힘으로 잡아당겨보면? 길게 늘어나버려서 원래의 탄력을 되찾기 힘들지도 몰라요. 자, 스프링이 당신이고 잡아당기거나 누르는 힘이 당신이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입니다. 저는 물리학을 잘 못했습니다만 이 스프링 이론이 실제 사람과 스트레스의 관계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스트레스도 감당할 수 있는 티타늄 스프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너무나 유리멘탈...


    각각의 스프링 사람 이 애초에 감당할 수 있는 힘 스트레스의 크기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 이상의 힘을 가하면 모양이 변형되어 버리고, 원래 갖고 있던 탄성마저 잃어버리게 되겠지요. 스프링마다 애초에 감당할 수 있는 힘의 크기는 다 달라서, 고강도 금속으로 만들어 아무리 눌리고 잡아당겨도 끄떡없는 티타늄 스프링이 있는가 하면 조금만 힘을 주어 당겨도 우그러져버리는 연약한 알루미늄 스프링도 있을 겁니다.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 멘탈갑 과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 유리멘탈 이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멘탈갑이든 유리멘탈이든 간에 요즘을 살고 있는 우리는 대체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능력을 요구받고 있기는 합니다. <스트레스: 당신을 병들게 하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1)의 저자이자 스탠퍼드 의대 신경외과 교수인 로버트 새폴스키는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당신을 해치는 방법 심장 돌연사부터 스트레스성 유산까지 을 6백 페이지 18개의 챕터에 걸쳐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치명적인 전염병이나 영양 부족이 우리를 위협했다면 이제는 천천히 손상이 축적되는 만성질환이 우리를 죽이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지요. 그는 과도한 양의 스트레스 호르몬이 신경세포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최초로 밝혀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여자에게도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적입니다. 여자의 월경과 임신, 출산에 관련된 섬세한 호르몬들의 작용을 거친 손으로 마구 흐트러뜨려 놓는 것이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지속된 스트레스는 월경을 멈추고, 착상을 방해하며, 임신을 중단시킵니다. 성욕을 감퇴시키는 것은 물론이고요. 몸의 변화가 회복된 후에도 최초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깨어진 호르몬의 균형은 회복되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에도 이상이 관찰되지 않는 무월경과 난임은 대부분 여기에 원인을 두고 있을 거예요. 



만성 스트레스: 자율신경의 균형이 위태로운 순간


    우리 신경계 중에는 자율신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체라는 기계를 정상적으로 가동 및 유지하기 위해서 뇌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신경인데요. 심장의 박동, 호흡, 체온 조절, 내장의 기능에 이르기까지 생존에 꼭 필요한 부분을 담당합니다. 자율신경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라는 두 줄기가 전혀 상반된 일을 하며 서로 견제하는 시스템이고, 서로가 잘 견제되고 있는 상태를 우리는 '항상성'이라고 부릅니다. 각각의 신경이 하는 일은 매우 다양합니다만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감신경 = 길에서 강도를 맞닥뜨린 순간에 자극되는 신경

    강도를 마주한 순간에 필요한 건 도망칠 거냐, 싸울 거냐 하는 빠른 판단과 몸의 반응입니다. 달리든 때리든 넘치는 긴장감은 기본이지요. 급박한 순간에 우리 몸에 빠른 심장박동, 폭발적으로 운동해야 하는 근육에의 혈액공급, 가쁜 호흡을 감당할 열린 기도, 지형지물을 파악할 수 있는 열린 동공이 저절로 장착되는 것은 본능적으로 생존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교감신경의 작용입니다. 교감신경의 이러한 반응을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action)'이라고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쉽게 긴장하는 저는 교감신경이 저 혼자 바쁩니다. 


부교감신경 = 쫓아오던 강도에게서 벗어나 무사히 집에 도착해 긴장이 풀어졌을 때 자극되는 신경

    한바탕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 끝나고 나면 급격히 나른해지면서 졸음이 쏟아지지요. 지금부터가 부교감신경이 지배하는 시간입니다. 심장박동을 늦추고, 근육에 혈액 공급을 줄이고, 기도나 동공을 제 크기로 돌리는 한편 달리거나 도망칠 때 하지 못했던 소화기능이나 배변기능을 다시 활성화시켜야 하죠. 긴장이 풀리면 갑자기 배가 고프거나 졸리는 것은 모두 부교감신경의 작용 때문입니다. 몸의 긴장을 풀고 충분히 이완되고 나면 부교감신경자극은 자연스럽게 가라앉게 되지요. 자율신경은 이렇게 절묘한 리듬을 이루며 외부 자극에 대해 몸이라는 정밀한 기계를 조율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말하다 말고 갑자기 자율신경을 언급하는 이유는 지속된 스트레스 상황이 자율신경의 절묘한 리듬(항상성)을 깨뜨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협박범에게 억류된 포로나 재난 현장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철야 근무를 계속해야 하거나 갈등 중인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거나 지속적인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은 교감신경의 지속적인 항진을 경험합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부교감신경이 일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유지되던 항상성의 균형이 깨어지겠지요. 마치 스프링에 돌덩이를 3박 4일 동안 올려두거나 계속 같은 힘으로 잡아당기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져도 몸은 회복되지 않지요.



좋은 스트레스가 우리 삶을 구원할 거예요

    

    맨 처음 했던 질문을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스트레스는 정말 만병의 근원일까요? 최근에는 스트레스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는 관점도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스트레스'가 건강에 해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스트레스가 몸에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스트레스 자체가 면역계 기능을 떨어뜨리고 위궤양을 일으키며 암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며, 단기적인 스트레스는 오히려 면역기능을 활성화하고 심지어 상처 치유능력을 끌어올린다는 의견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주장입니다.


굳이 돈을 내고 높은 데서 떨어지는 이유는 일시적인 스트레스 뒤에 뇌가 선물해주는 엔돌핀을 무의식중에 원하기 때문이에요.


    한 가지 예가 여기에 있습니다. 흔히 부모님이 급격하게 늙으시는 순간을 두고 '일을 그만두었을 때'라고들 하지요. 외부로부터의 스트레스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돈벌이'를 그만두고 이제부터 편안히 집에서 취미생활하면서 쉬시면 되는데 왜 갑자기 늙으시는 건지 얼핏 이해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단기 스트레스의 긍정적인 작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성장이 끝난 어른에게서 분비되는 미량의 성장호르몬은 노화 방지에 쓰이는데, 적당한 스트레스가 이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한다고 하지요. 평생을 두고 익숙해진 일에서 오는 적당한 스트레스가 부모님의 노화방지 요인이었던 셈입니다. 


    스트레스에도 좋은 스트레스와 나쁜 스트레스가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독일의 과학 전문 기자 우르스 빌만이 쓴 책 <스트레스는 어떻게 삶을 이롭게 하는가>2)에 따르면 스트레스 연구로 노벨 의학상을 받은 캐나다의 내분비학자 한스 셀리에는 스트레스를 유스트레스eustress디스트레스distress로 나누었습니다. 첫 키스 직전의 흥분, 축구 경기를 앞두고 느끼는 긴장감과 같은 유스트레스는 우리 삶에 활력을 주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원고 마감, 이웃의 소음과 같은 디스트레스는 불쾌하고 위험한 경험으로 남지요. 경우에 따라 처음에 불쾌하게 기억했던 스트레스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스트레스로 각색이 되기도 합니다. 


    스프링에 어떤 힘을 가하지 않는다면 스프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만들어진 후 한 번도 눌러지지 않은 스프링은 자기가 얼마만큼 뛰어오를 수 있는지 모르는 채로 천천히 녹슬어가겠지요. 멈춰 있던 스프링에 일정량의 힘을 주면 스프링은 살아있는 것처럼 튀어 오릅니다. 외부로부터 주어진 적당한 자극은 분명 우리에게 활기를 주고 나도 몰랐던 어떤 능력을 끄집어내게 만드는 측면이 있지요. 어떤 스트레스도 없는 사람은 늘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게 될 겁니다. 어떤 삶을 더 원하는가 하는 것은 우리 선택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더 스트레스받는 당신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 질병이 그렇듯이 스트레스를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장기적인 스트레스가 우리 몸에 미치는 치명적인 각종 해악 대사를 방해하고 혈압을 상승시키며 백혈구를 파괴하고 성욕을 떨어뜨리는! 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트레스와 어깨동무하고 걸어가야만 하는 '요즘 여자'들이기 때문이에요.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트레스는 만성질환처럼 잘 달래서 데리고 가야 하는 대상에 가깝지요. 때로는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결국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시는 게 좋아요.


    스트레스를 절대악으로 생각하는 요즘, 스트레스받을까 봐 더 스트레스받는 당신이라면 다음 방법을 통해 내 몸의 스트레스를 한 발짝 물러서서 냉정하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어요. 일단 긍정적인 측면을 먼저 꼽아보세요! 당신이 긍정적인 측면을 먼저 생각하는 동안에도 부정적인 측면은 어디 가지 않아요.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얘깁니다.

긍정적인 측면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면, 같은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스트레스 요인에 더 큰 관심을 주세요. 사소한 스트레스에 대한 소소한 고민이 큰 스트레스보다 낫거든요. 

스트레스를 주는 일과 상관없는, 친구들과의 끈을 놓지 마세요. 친구란 사회적인 안전망이요,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강력한 버퍼입니다.

운동은 가장 쉽고, 가장 효과적인 스트레스 관리법이에요. 단 억지로 하는 건 효과가 별로 없습니다. 근육, 칼로리소모, 성과 같은 건 집어치우고 하고 싶을 때 좋아하는 운동을 하세요. 너무 무리하면 안 됩니다. 일주일에 몇 번, 2~30분 동안만 가볍게 하는 게 좋아요. 

명상은 교감신경의 긴장을 떨어뜨리는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꿀잠입니다. 푹 주무세요! 그것만큼 좋은 치료는 없습니다. 

명상보다 자는 게 더 좋은 치료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군요! (저는 잠을 정말 사랑합니다)

  



    저에게도 스트레스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합니다. 천성이 게으른지라 '마감'이라는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스무 편이나 되는 '달과궁 프로젝트' 연재를 절대 마무리할 수 없었을 거예요. 환자들이 주는 치료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공부도 진작에 때려치웠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쨌든 오늘은 피곤하기 때문에, 이러니저러니해도 닥치고 일찍 퇴근할 생각입니다. 집에 가면 태교니 집안일이니 다 집어치우고 들어가자마자 쓰러져 잘 거예요. 아, 그전에 아까 떨어뜨린 차트 한 장을 먼저 주워야겠네요. 오늘의 스트레스는 아마도 이게 마지막이 될 겁니다. ...아니군요. 양말 벗는 일이 아직 남았네요털썩.



1) 스트레스: 당신을 병들게 하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 로버트 새폴스키(저자)/이재담(역자), 사이언스북스, 2008

2) 스트레스는 어떻게 삶을 이롭게 하는가 - 질병, 고통, 우울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스트레스에 대한 새로운 탐구, 우르스 빌만(저자)/장혜경(역자), 심심, 2017






미미최(최혜미)

전직 패션 에디터, 현직 마르지엘라를 입은 한의사입니다.

요즘 여자를 위한 한의원, '달과궁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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