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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Sep 22. 2022

복약안내서를 쓰는 밤의 워킹맘

'일하는 엄마'와 '직업과 아이가 있는 둘다 있는 여성' 사이 그 어딘가

     한달 전, 코로나에 온 가족이 확진되었다. 2년이 넘도록 잘도 피해왔던 유행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토요일 진료 중에 들었다. 그날 일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가 몇 가지 짐을 싸서 가까운 비즈니스 호텔로 나왔다. 이내 아이와 어머님에게도 차례로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오히려 내가 가족으로부터 격리된 꼴이 되었다.


     지난 코로나 시국에 우리 가족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나가서 일해야 하는 '나'의 자가격리였다. 코로나에 걸려 아프거나 힘든 것보다 나의 부재로 인해 한의원에 발생한 손실이 어느 정도일까를 더 계산하며 서로가 날카로운 적도 많았다.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두문불출 일터와 집을 오가는 생활이 이어졌기에 자가격리의 기준이 완화되었을 때의 안도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제 와 새삼 확진이 되면 격리를 피할 길이 없지 않은가! 아침마다 떨면서 확인한 운명의 자가키트는 다행히 매번 한줄이었다. 살면서 내 삶에 쉬지 않고 일을 계속 하라는 신의 계시가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이번이 그 정점처럼 느껴졌다.


     처음 짐을 싸서 나왔을 때에는 기분이 묘했다. 재난 상황에서 혼자 살아남아 격리된 상황인데, 얼떨결에 혼자있는 시간이 무더기로 주어진 것이 씁쓸하면서도 달콤했다. 일하고 돌아와 침대와 TV로 꽉찬 작은 방에 들어서면 안도감과 답답함, 자괴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온 가족의 확진 속에 살아남은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은 무엇일까. 일터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인 동시에 아이가 아플 때 가장 적극적으로 도망가는 엄마, 가족의 확진 소식에 아이 걱정보다 일 걱정을 먼저 했던 비정한 엄마, 그게 바로 나다. 


     호텔 방에 머문 일주일 내내 밤마다 악몽을 꾸었다. 

     



     전문직, 자영업자, 고용주, 대표원장, 한의사. 직업을 가진 이로서 스스로 정의하는 이름은 이렇게도 다양한데 엄마로서 내 정체성을 굳이 표현할 말은 '워킹맘' 정도겠다. 아이가 있는 일하는 여자는 워킹맘이라는 이름 아래 대충 묶이는데 전부터 이상하게 그 말을 들으면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워킹맘의 삶에 대해 묻거나 워킹맘은 대단해, 라는 말을 하면 하지도 않은 일로 칭찬을 받은 사람처럼 멋적어졌다. 이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본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워킹맘이라는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세간의 기대에 나란 사람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침에는 회사로 출근하고 저녁에는 집으로 출근해 아이가 잠들 때까지 퇴근없는 삶을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수퍼우먼들에 비하면 나는 거의 놀고먹는 편이다. 출산하기도 전부터 지금까지 기꺼이 내 집으로 오셔서 육아와 살림을 전담해주는 어머님이 계시고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남편이 있으니,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어쩌면 세상 모든 워킹맘들이 바라마지않는 혜택받은 환경일 것이다.


     나도 안다. 내가 느끼는 위화감의 이면에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묻어있다. 엄마의 희생은 당연하지 않고 모성애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육아를 타인에게 맡겨두고 일에 파묻혀 사는 나는 과연 몇 퍼센트 짜리 엄마일까 하는 자조섞인 생각을 하게 되는 아이러니.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하는 거의 모든 일을 어머님이 보내주신 카톡의 동영상으로 확인하는 엄마의 존재란 아이에게도 사실 그리 대수롭지 않을지 모른다. 




    그냥 회사에 다녔더라면, 일을 잠시 쉬어도 가계의 운영에 큰 무리가 없는 환경이었다면,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 같은 복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면 상황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작은 한의원의 대표원장이란 오너쉐프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의 쉐프와 같아서 스스로가 주력상품이자 마케팅이고 사장이면서 실무자다. 사업이 더 커지기 전에는 일을 손에서 놓는 것이 쉽지 않고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지금 더 많이 일해야 한다. 그 때가 오면 아이는 도대체 얼마나 더 자라 있을까.


    어딘가의 평행우주에서는 아이에게 온전히 시간을 내어주는 엄마로서의 내가 살고 있을 거라고 상상해본다. 아이의 주양육자가 될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있는 그 세계의 나는 원하는 만큼 모유수유도 하고 해마다 아이의 성장 앨범도 만들어서 간직하고 육아일기도 성실하게 쓰겠지. 자라고 떼쓰고 말안듣고 웃고 울고 사랑스럽게 구는 모든 순간을 현장에서 가장 많이 목격하는 존재이자 아이의 최측근으로서 그제서야 당당하게 '엄마'라는 이름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 세계의 나도 힘들어하고 고민하며 어딘가의 평행우주에서 워커홀릭으로 살고 있을 지금의 나를 떠올릴 거라는 확신을 떨칠 수 없다. 만약 그 때 일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 했더라면, 만약 양육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사람이 한 명만 더 있었더라면, 만약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가지 못한 길은 언제나 더 설레고 가치있어 보인다. 서로 다른 평행우주에서 우리는 마주보고 서 있는 셈이다. 




     코로나로 인한 격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이와 한참 데면데면했다. 가장 아플 때 바로 옆에 있어주었던 할머니와의 애착관계가 더 단단해져 무슨 일이 있어도 모두 할머니가 해주기를 바라는 바람에 어머님은 이후에 더 크게 몸살이 나셨다. 옆에서 뭐라도 놀아줄까 하고 미적거리고 있으면 엄마 가! 하고 밀어냈고, 그래도 가지 않으면 손을 잡고 다른 방으로 가서 거기에 나를 고려장 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버리기 일쑤였다. 그게 섭섭했냐고? 아니, 참 미안했다. 아이에게 그 시간이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 두려웠다. 관계야 곧 회복이 되었지만 가장 아플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 마음은 내게도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그 때 엄마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오긴 했어,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 나중에라도 너의 맘 속에 그런 기억은 남겨두지 말기를.


     육아에 관한 여러 가지 말들 중 내가 특히 좋아하는 몇 가지 말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놀아주는 시간의 길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짧은 시간이라도 얼마나 밀도있게 잘 놀아주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며 걷는다'는 것이다. '그래 나도 어쩌면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가 될 수도 있어' 라고 생각하게 해 주어서 이 말들에 그나마 위로를 받는데, 육아를 위한 조언마저도 아이를 더 잘 돌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위로 받을 수 있는 말을 더 좋아하는 것부터가 애초에 글러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말이 이끄는 대로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잠깐이라도 아이와 함께 있을 때면 몸을 던져 놀아주려고 한다. 아이가 까르르 웃고 재밌어서 데굴데굴 구르면 그 찰나에 일주일 내내 함께하지 못한 엄마의 의무를 스스로 보상받는다. 내 딸이 엄마로서 살아가는 것보다 나처럼 일하는 여자로 살아가길 바라기 때문에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자연스럽다고도 생각한다. 더 멋지게 일해서 나중에 아이가 엄마의 흔적을 짚어갈 때 자랑스러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지금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현실적인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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