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최 Jul 18. 2022

복약안내서를 쓰는 밤의 부고(訃告)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것들을 지키기 위하여

     지난해 봄, 대학 후배의 부고를 받았다.


     후배라곤 하지만 나보다 서너 살 위였던 그는 입학했을 때 이미 세 아이의 아빠였다. 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얼른 졸업해야 아내와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될 수 있을 텐데'라며 웃었던 그 무해한 얼굴이 떠올랐다. 걱정하면서도 요즘 암은 거의 만성질환에 가깝지 않으냐고 애써 낙관하며 잊었을 때쯤 단톡방을 통해 부고는 갑자기 날아들었다. 처음 투병 소식을 접한 지 일 년도 채 되기 전의 일이었다.

    

     암세포가 처음 발견된 곳은 대장이었다. 바빠서 건강검진을 잊고 살다가 혈변을 보고서야 병원에 갔지만 이미  여기저기에 퍼져 수술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한다는 말이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전해졌으리라. 아무리 준비해도 결코 준비되지 않았을 마음과 지금부터 죽음 사이에 놓인 시간을 견디는 일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애써 낙관하다 이내 잊어버렸던 나의 방관이 오래 마음을 짓눌렀다. 내가  명복이 그에게  닿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지난해 받은 후배의 부고만 두 번이다. 그보다 먼저 부고를 전한 이는 갓 대학을 졸업한 이십 대 중반의 남자후배였다. 모교의 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밟던 중이었는데 의례적인 정기검진에서 백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왔고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일하는 내내 유난히 피곤했고 자주 지쳤지만 레지던트의 삶이란 게 원래 그렇기 마련이라 병이 깊어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려서 더 진행이 빨랐던 건지 그 후 반년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겨우 스물몇의 그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은 어디로 흩어져 버렸을까.


     조사(弔事)가 많아지는 나이라고는 하지만 연이은 후배의 부고를 받으니 죽음이 턱 바로 아래에 닥쳐왔다는 느낌이 서늘하다.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향해 한 발을 내딛으려던 그들의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여섯, 마흔일곱이었다. 백 년을 살아볼 수도 있었다. 한의사로서 명성을 떨쳤을지도 모른다. 암에 걸리고도 살아남은 다른 이들처럼 고통스러웠던 투병의 시간을 성숙의 계기로 삼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하면 그 죽음을 유예할 수 있었을까. 떠나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는데.

 



    불행을 생각하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나는 온갖 '그런 말'에 쉽게 혹하는 사람이라 나쁜 생각을 가급적 안 하려고 노력하지만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에는 별 수 없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죽음,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 죽음에 한없이 가까운 어떤 질병의 선고, 갑작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과 사고들... 어떤 생각을 하지 말자 하면 어김없이 그 생각이 덮쳐온다. 그 일련의 키워드를 떨쳐버리기 위해, 언젠가 내 결혼식장에서 엄마와 눈이 마주쳤을 때 울지 않기 위해 떠올렸던 가장 웃기고 실없는 유머를 복기해야 했다.


   죽음이 이토록 멀고 낯선 키워드인  비해 죽기 전까지 겪는 갖은 통증과 장애, 무서운 질환들은 알고 보면 우리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살아있기 때문에 겪는 문제는 살아만 있다면 해결책이 있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더더욱 고통과 질병 가까이에서 살고 있다. 한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일하면서 고민에 고민을 반복하고 공부에 공부를 거듭하는 원동력이기도  것이다. 살아있기만 하다면 나아질 수 있으니까.


   해부학을 기반으로 몸의 구조를 파헤치고 세포와 유전자 그 이상의 단위까지 도달한 현대의학은 죽음 이후의 사람으로부터 많은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산 사람의 건강을 위해 활용했다. 반면에 한의학은 철저히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 죽음을 더 가까이 다루는 쪽도, 죽음과 더 자주 대면하는 쪽도 역시 현대의학이다. 의전을 갈까 한의대를 갈까 고민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죽음이 두려운 자의 적성은 역시 한의사가 제격이었다고 생각한다.... 하긴 의대를 갈까 생각했던 때에도 내 꿈은 정신과 의사였다.


   언젠가 죽음이 다가올 때가 있을 것이다. 후배의 갑작스러운 부고에 이어 올해는 짧은 기간 안에 친한 친구의 부모님과 시댁 어른들의 가까운 지인분이 연이어 돌아가셨다. 피할 수 없는 그날이 올 때까지는 적어도 내 주위의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음을 누리면서 살기를 바란다. 살아있는 동안 죽어가지 말고, 사는 동안 치열하게 살면서, 불행에 대해 생각하지도, 심연을 들여다보지도, 죽음을 떠올리지도 말기를.




   한의원을 시작한 지 3년 차가 되던 해 5월에 종합 건강검진을 받았다.


   전에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둔 이후로 처음이었다. 위와 대장 내시경도 처음으로 했다. 그때까지는 딱히 소화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위나 장을 억지로 비워내고 카메라를 굳이 집어넣어 속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막 사업을 시작한 데다 엄마까지 되었으니 아프면 안 된다고 남편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일이었다. 나도 내가 아프면, 더 정확히 말해 일을 못할 정도로 아프거나 심지어 죽으면 안 된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가장 괴로운  의외로 대장 내시경  세장을 위한 액체를 꾸역꾸역 마시는 것이었다. 먹다가 너무 역해서  이건  번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내시경을  하고 깨어나 보니 다른 사람들은 멀쩡히 잘만 일어나는데 왜인지 배가 너무 아파서 울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와서 마취가   되어 마취제도 많이 쓰고 장이 너무 구불구불해서 가스도 많이 주입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대장에서  크고 모양이 좋지 않은 종양이 발견되었다. 보통 내시경 도중에 바로 제거할  있는 용종도 많은데 그럴  없는 종류여서 나중에 입원해서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혹시 암일까  덜컥 겁이 나서 일주일 만에  세장액을 마셔야 하는 걱정 따위 하찮아졌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지만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종류의 종양이었다. 조기에 발견해서 운이 좋았던 것이. 이듬해에는 처음 해본 유방 초음파에서 모양이 좋지 않은 종양이 발견되었고  확률이 높아 보인다는 코멘트가 결과서에 쓰여있었다. 조직검사 예약이 다가오기 전까지  구글 검색기록을 유방암과 관련된 키워드가 잠식했다. 이번에도 암은 아니었다. 다행은 이번에도 이어졌지만  다행 언제까지 이어질지   없다. 암은 너무 흔해졌고 그래서 건강검진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의 건강을 진단하는 데 건강검진은 말하자면 커다란 체 같은 것이다. 걸러서 걸려 나오는 것도 있지만 당연히 거르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것도 많다. 그래도 그중 가장 확실하게 걸러지는 것이 암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악의 성적표는 암을 발견하는 것이고 최고의 성과는 암을 암이 되기 전이나 혹은 매우 이른 시기에 발견하는 것, 내게 건강검진의 의미는 일단 그거면 됐다. 마침 다른 문제들을 재차 삼차 거를 수 있는 조금 다른 체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지난주부터 한의원과 관련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활을 걸고 시작한 어떤 일이 있어서 부담이 목 밑까지 차올랐다. 하긴 일이 많아도 힘들고 일이 적어도 힘들고 일이 있어도 없어도 스트레스는 어딘가에서 온다. 끝나가는 줄 알았던 코로나의 시절은 다시 기승을 부리고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쳐지는 날도 많다. 힘든 이유는 그렇지 않은 이유보다 언제나 많고 타당하다.


   그러나 진부하게도, 이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오늘이 나의 후배가 너무나 살아보고 싶었던 어느 하루일 거라는 생각을 하면 불평을 늘어놓을 수 없다. 남편이랑 싸워도, 대출상환시기가 덮쳐와도, 야근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도 상관없다. 우울도 불안도 사치라고 생각하는 오늘, 여전히 혼자 남아 복약안내서를 쓴다.







   



        

이전 05화 복약안내서를 쓰는 밤의 슬럼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