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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틸 라이프 Sep 11. 2018

    더 브레이브(2011년)

                -코엔이 그리는 상실의 웨스턴

                                                                                                                                                                                                                                                                                                                                                                                                                                                                                                                                     -프롤로그


이 영화가 아스라한 향수와 낭만적인 정취 어쩌면 동화같은 따스함이 느껴졌다면 그것은 영화가 택한 서두와 말미의 액자식 구성과 과거의 시간을 열고 닫으며 현재로 이어주는 나레이션 형식이 한 몫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브레이브>의 시작은 아주 짧게, 지금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옛날 옛적 서부에서' 그러니까 주인공 매티가  23년 전 소녀였을 때 일어난 '과거' 이야기라는 것을 알리는 여자 목소리로 시작한다. 우리가 지금부터 만나는 이야기의 공간은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되고 다양한 사람들과 사건이 종횡무진 펼쳐지던 개척시대로 법과 질서가 새롭게 만들어지던 시기, 아직은 정법과 무법의 혼재가 가능했던 거친 그때의 자연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우리가 동화책의 예쁜 표지를 열고 제목과 작은 삽화가 그려진 속지를 넘기면 그때 비로소 펼쳐지는 진짜 동화의 시작처럼.



하지만 진정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점은 14살 소녀 매티가 19세기 말 청교도였던 여느 농장주 주인 딸이 입음직한 목까지 단추로 촘촘하게 여민 빳빳하게 다려진 청회색 드레스를 아버지 옷으로 짐작되는 커다란 남성복으로 갈아입고 제 몸의 무게에 버거운 큰 총을 허리에 차고 애마 리틀 브래키를 타고 자신을 가로막는 것이 분명한 서부의 입구가 시작되는 깊고 넓은 강에 다다랐을 때다.

그녀의 용기와 담력을 실험하는 빠른 유속의 강물은 마치 용기있는 스파르타의 전사를 시험하거나 아들 라이언 킹의 담력을 지켜보는 사자의 왕같은 모습이다.

잔인하게 살해당한 아버지 원수를 갚고자하는 단 하나의 열망으로 뛰어든 서부에서 매티는 당연하게도 성별이나 나이로 인한 배척을 당한다. 그녀가 고용한 늙은 주정뱅이 보안관 카그번도 마찬가지다. 그는 일행에 끼기 위해 망설임없이 강물에 뛰어든 소녀를 발견하곤 흠칫 놀라나 굳세게 강을 건너는 모습에서 그녀의 담대한 용기를 단박에 알아본다. 이는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텍사스 레인저 라뷔프의 무심함과 그녀의 행동을 곧바로 폭력으로 응징하려는 태도와 비교된다.

또한  매티가 안전한 주민들의 정착지와 악당들이 달아난 거친 서부를 가로막는 상징적 장애물인 강물이라는 통과의례를 너끈히 건너면서 어리고 연약한 소녀가 주는 이미지에 익숙한 관객의 심리적 관습을 무너뜨리고 악당 톰 채니를 쫒는 매티의 추격전을 응원하고 복수의 주체로서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되는 전환점이 되게 한다.

-서부라는 세계


고작 100여년 전이라는 사실이 믿기 힘들 정도로 매티가 뛰어든 서부 세계는 성문법의 존재는 무용지물에 불과한 총구를 먼저 겨누는 자가 승리하는 거칠고 황량한 세계다. 소녀를 돕는 두 사람은 보안관과 텍사스 특수 경비대라는 공권력을 행사하는 공적 지위를 가졌지만 그들의 과거는 무분별한 사적 처단 행위를 일삼는 악당들과 다를 바 없어보이다.
코엔의 [더 브레이브]를 가장 동화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가장 큰 지점은  어린 매티가 법의 준수와 처벌, 정당성을 주장할때 그녀가 만나는 대부분의 어른들이 완전하게 이행하지는 않아도 수긍하거나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이다.(심지어 악당 무리의 대장까지도) 공권력을 가진 자들조차도 돈과 목숨을 위해 사사로운 살인을 일삼는 서부의 공간에서 그것은 정의를 추구하는 기독교 정서에 바탕을 둔 서부 영화가 지닌 약자를 보호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장르의 약속같아 보인다. 하지만 영화 중반 카그번이 인디언 아이들에게 취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습관적인 폭력 행위는 이 아름다운 약속은 백인에게만 한정된 것이라고 감독이 강조하는처럼 읽히기도 한다.
또한 소녀가 위급상황에 처할 때 모든 문제의 해결은 주위의 도움으로 거의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온 우주의 선량한 기운은 그녀를 둘러 싼 넓고 넓은 서부의 안전망에 골고루 가동된다. 아버지가 남긴 말에 관련된 당돌한 계산법에 순순히 거래를 수긍하고 이득을 희생한 은행가나 자신들을 공격한 소녀를 죽이지 않는 악당 무리의 대장을 비롯한 거의 모든 등장인물은 선함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살인을 일삼는 어른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더구나 매티는 아이도 여인도 아닌 소녀도 소년도 아닌 경계에 머물러 있는 모호한 성정체성을 지녔다. 영화는 초반 라뷔프의 입을 빌어 매티가 성적인 대상으로 보일만한 나이와 외모임을 언급하나 서부의 강물을 뛰어든 뒤로 그녀를 바라보는 모든 시선은 아버지 원수를 찾아나선 당돌함에만 몰려 있어 성적 위협의 안전지대에 머물게 한다.



-카그번 ,유사 아버지


영화에는 출발부터 많은 죽음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장의사에서 만난 여러 개의 관들 , 광장의 행사처럼 공개처형 당하는 죄수들과 악당에게 목매달린 시신의 목격. 무수하게 사사로히 자행되는 매우 쉬운 죽음들. 그리고 이 모험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매티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다. 도입부 매티는 아버지 시신을 곱게 수습한 관을 열차에 실어 고향으로 보낸다. 이 장면은 이후 카그번의 관을 수습하는 장면을 반복 등장시킴으로써  어린 소녀의 아버지의 부재를 대리한 것이 카그번임을 시사한다.
완전한 성인이 되지 못한 이른 시기에 아버지를 잃은 매티가 도움을 얻기 위해 찾아 간 카그번은 서부 영화에서 그리던 의로운 아버지같은 영웅과는 매우 반대 지점에 위치한 인물이다. 가정에 불성실했으며 폭력적이고 즉흥적인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먼지가 휘날리는 춥고 끝없는 서부의 길을 횡단하며  과거의 영광이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서부의 먼지처럼 떠도는 이야기임이 분명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자신의 역사를 지리하게 떠들어댄다. 1대 7로 만나 한 방에 악당들을 해결한 무용담, 여인들과의 방탕한 생활과 무책임한 아버지 노릇까지. 이는 갑자기 남편을 잃고 정신을 놓은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대신해 분연히 나선 용감한 매티와 대조적이다.
하지만 허황되어 보이던 그가 들려주던 이야기 속 전설은 동굴 속 독사에 물려 사경을 헤매는 매티의 목숨을 살리며 실현이 된다. 멀리 수백 미터 거리에서 적을 쏘아 명중했다던 라뷔프의 허언도 네드 페퍼 일당을 해치우며 눈 앞에서 이루어진다.
'옛날 옛적 서부에 악당들에게 아비를 잃은 소녀가 있었지. 용감한 소녀는 정의로운 카그번과 라뷔프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갚게 되었지.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라는 전설의 완성이 이루어진다.

영화는 악당을 하나씩 처단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방식이 매우 빠르고 짧아 살인이 가볍게 처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총격씬이 다음 컷으로 이어지는 경쾌한 리듬 덕에 무수한 죽음이 심각하기 보다는 미션의 수행처럼 지극히 명랑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주위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밤, 숨이 끊어질 듯한 매티를  녹초가 된 말에 싣고 달리다 장애물이 된 말을 죽이면서까지 끝없는 길을 달리던 장면의 묘사는 유독 느리고 서글픈 정서를 느끼게 한다. 힘없고 늙은 아비가 간신히 몸을 일이켜 위태로운 아이를 끌어 안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저 먼 길을, 쓰러질 듯 넘어질 듯 겨우겨우 서부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은 아름답고 안타까우면서도 더욱 더 동화적인 아련함과 서글픔을 안겨준다. 타들어갈 듯한 마음과는 달리 기운이 없어 고꾸라지고 팔다리가 꺾이는 늙은 아비의 현실이 뒷방에 나앉은 한때 영웅이었던 초라한 아버지의 모습과 닮아있다. 카그번이 기어코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매티를 안고 의사에 집에 도착했던 것처럼 매티는 23년후 카그번의 주검을 주위의 수근거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족묘에 이장한다.



-에필로그


마초가 주인이던 서부시대에 원수를 향해 총구를 겨누던 어린 소녀는 이질적 존재였을 것이다. 성인이 된 매티는 결혼을 통한 행복한 가족의 완성이라는 기독교적 이념에서 경시하는 노처녀로 여전히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다. 세월이 흐른 후 매티는 카그번이 서커스의 허풍쟁이 광대가 되어 떠돌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는 이전에 객지에서 아버지의 주검을 수습했던 것처럼 정착하지 못한 캐그번의 시신을 수습해 가족묘에 모시며 부녀로서의 상징적인 마지막 의무를 수행한다.

영화의 라스트, 카메라는 원수를 갚고 한 쪽 팔을 잃는 상처와 영광의 매티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응시한다.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지평선으로 걸어 가 조그만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그녀를 위해 긴 시간을 할애한다. 그것은 어쩌면 마을의 악당을 모두 해치우고 쓸쓸하게 퇴장하던 외로운 영웅 셰인의 뒷모습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모든 사라져가는 화려한 과거와 영광의 쓸쓸한 뒷모습같기도 한 그 장면은 이전까지 밝은 톤을 유지했던 동화가 퇴색되어  낡은 전설로 저 멀리 날아가보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전편에 매우 생동적인 액션과 살인이 가득하지만 그때마다 살벌한 서부의 상황과 소녀의 위기를 잊게했던 화면아래 흐르던 찬송가처럼 조용하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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