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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틸 라이프 Nov 17. 2018

어느 가족  (2018년)

-또 하나의 이웃


                                                                     김태용 감독의 영화 <가족의 탄생 (2006년)>에는 기이한 가족이 등장한다. 가출한 남동생을 중심으로 모이게 된 그의 누나, 20년 연상의 동거녀와 그녀의 딸로 이루어진 가정이다. 감독은 특수한 인연의 그들이 여느 다를 바 없는 ‘가족’이라 선언한다. 이들의 동거는 가족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오랫동안 각인된 혈연이 아니다. 일방적 출발이었고 이탈이 가능하지만 그들은 핏줄보다 끈적한 정으로 지지고 볶는 시간을 함께 살아낸다.
당시 영화는 남녀의 결합과 자식으로 파생된 혈연중심이 공고화된 가부장 사회에 일찍이 여성중심 대안가족의 풍경을 제시한다. 가족이 태생적으로 결정된 운명이 아닌 선택에 의해 ‘탄생’할 수도 있음을 경쾌하게 묘사한다.
미디어와 종교가 이상화한 다정한 부모와 사랑스러운 자식의 홈 스위트 홈 신화는 선한 의도와 다르게 많은 이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따뜻한 온기와 애정이 넘치는 풍경은 가정의 결핍을 가진 다수에게 창문 밖에서 이를 지켜보는 성냥팔이 소녀의 슬픔을 갖게 만든다.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행복의 트라이앵글을 벗어나 혈육의 굴레와 부채에 시달리는 다수는 꼬인 매듭 관계에 대책없이 서글프다.
<가족의 탄생>은 혈연 가족의 해체와 타인과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 탄생의 태동을 알린 영화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가족에 대한 시선도 이와 닮아있다. 나아가 한층 더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다. 어린 동생들을 12살 장남에게 맡기고 가출한 무책임한 엄마 <아무도 모른다 (2005년)>, 뛰어난 자신을 닮지 않은 아들을 냉정하게 대하는 아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년)>, 배다른 여동생을 남기고 사망한 15년 전 집 나간 아버지<바닷가마을 다이어리(2015년)> 등 그의 영화 속 부모는 상처를 주는 무능한 어른들이다. 감독이 그린 가족의 초상은 결핍과 정서적 학대에 놓인 아이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다.
<좀도둑 가족(2018년)>은 원가족에 실패하고 화목한 가정 만들기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어느’가족 이야기다. 이 특수한 가족은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더할 나위 없이 역할에 충실하다. 하지만 지금의 조합과 결합은 불시에 해체되는 한시적 공동체임이 할머니의 죽음 이후 드러난다.
이들의 패밀리 비즈니스 좀도둑질은 작은 생계의 역할과 모종의 부자간 연대를 품게 하는 역할극이다. 수입사가 정했을 ‘어느’란 부사는 가족의 특수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독특한 가족의 개별성을 가늠케 하는 적절한 변용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 유사가족의 정서적 끈끈함을 강화시키는 구심점은 엄마 역할의 배우 안도 사쿠라의 힘이다. 그녀는 고레에다 감독의 이전 여인들과 매우 다른 차별성을 지녔다.
감독의 필모그라피에서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는 상당수 아역의 몫이었다. 고레에다가 그려내는 여성은 엄마이거나 할머니이거나 언니였어도 그녀들은 희미한 형태를 가진 아름다운 정경에 머문 적이 많았다. 선이 고운 외양과 고요한 태도, 너그러운 모성에 인물의 결이 닿아 있었다. 그래서 잔혹 동화에 가까운 현실도 낭만에 가까운 풍경으로 관객에게 오인되기도 했다.
감독의 여성 인물의 변화 조짐은 <세 번째 살인(2017년)>부터 엿보인다. 인물의 지분이 커지고 대사는 직설적이고 시선은 정면을 응시하며 관객을 향해 독백한다.
<어느 가족>에서 하이라이트는 경찰서의 안도 사쿠라가 프랭크 릴리를 접견하며 밝힌 심경이다. 안도의 입을 통해 발화된 감독의 진심은 여느 이웃과 같은 얼굴과 아픔이 전달되는 안도의 연기로 현실성을 획득한다. 다큐에서 출발한 감독은 인터뷰 방식의 촬영을 통해 과연 혈연만 가족인가에 대한 물음을 간절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카메라는 매우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관객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아무런 영화적 장치가 도움을 주지 않는 정공법이 도리어 안도 사쿠라의 민낯을 강조하고 매력을 강화시킨다. 그녀는 감독이 편애하던 정갈한 미인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자유로운 표정과 생명력있는 몸짓을 할 줄 안다. 이러한 안도의 외연은 <어느 가족>의 영화적 거리를 가깝게 하고 감정의 격랑에 관객을 깊이 뛰어들게 한다.
이는 인물의 감정 절제로 관객과의 거리를 지키는 일본 영화의 특성과도 달라 안도의 이질성은 감독의 연출 변화의 한 지점으로 읽히기도 한다.
고레에다의 결혼과 아이의 성장은 그의 영화가 그리는 가족의 조건과 모습에 직접적이고 매우 선명한 인장으로 새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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