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틸 라이프 Feb 10. 2019

믹의 지름길

-생명수는 신기루인가 나침반인가

‘믹의 지름길’은 1845년 개척시대 미국 오래건주를 배경으로 한 정의와 악당의 무협활극이 제거된 날것 그대로의 서부 이야기다. 서부라는 엘도라도를 찾아가는 일시적 유목민의 눈앞에는 길고 험난한 사막과 낮과 밤의 생활과 생존이 기다린다. 거추장스러운 치맛단은 먼지가 날리는 황무지에 쓸리고 문명세계에 살고 있던 그들에게 서부에 이르는 길은 멀고 누추하고 불안하다. 그들이 선택한 믹의 지름길은 과연 이 길이 맞을까. 커다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가슴까지 차오르는 강물을 건너는 여인들의 모습은 이들의 고단한 여정을 예고한다.

인간에 생존에는 목을 축일 물과 어둠을 밝히고 추위를 피하는 불이 필요하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이주민은 강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빨래와 설거지를 하고 새의 물을 챙겨주고 여정에 필요한 물을 비축한다. 그릇의 물을 한 모금씩 나누어 마시는 행위는 여인들의 동지애를 상징하고, 물 한 모금을 인디언에게 양보하는 에밀리의 행동은 어려움에 처한 한 인간에게 베푸는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다. 시간이 지나며 물통의 물이 바닥날수록 이들의 신세계에 대한 희망과 기대는 점점 메말라간다.

이 영화의 사실감을 부여하는 건 자연광의 사용이다. 해가 사라진 밤을 밝히는 것은 하늘의 달이거나 추위를 녹이고 밥을 짓는 모닥불, 잠자리를 밝히는 작은 등불이다. 빛이 사라진 공간을 밝히는 것이 인물의 안광일 뿐일 때도 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은 서부로 가는 길뿐 아니라 당장 마주하는 눈앞의 현실이다. 인위적인 빛이 사라진 공간에서 삶은 자연채집을 하는 원시생활에 가깝다. 낮에는 마차를 고치고 뜨개질하고 요리하며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워 밥을 짓고 어둠을 밝히며 추위를 피한다. 인공조명이 사라진 그들 세계에 참여한 관객은 낮에는 행군하고 밤에는 모닥불 앞에서 노동하는 영화적 체험을 공유한다. 은밀한 어둠은 알 수 없는 미래이고 불시에 닥칠 위험에 긴장하며 두려움을 유발한다.

밝음이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되는 것은 자연과 사람의 소리다. 풀벌레와 야생동물의 울음, 장작불이 타는 소리, 믹과 인디언,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의 소리를 표현한 음악은 음향에 가깝게 귀를 자극하며 인물의 심리에 다가가는 기능을 담당한다.

우리가 흔히 묘사하는 자연의 색은 초록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자연은 거칠고 황폐한 땅의 색깔인 황토색이다. 흙먼지가 바람에 날리고 누렇게 땅이 갈라진 벌거숭이 자연이다. 원래 그 땅의 주인인 인디언의 피부색도 자연과 닮아있다. 저 멀리 지평선이 펼쳐진 대지와 낮의 광대함과 밤의 고요를 품은 하늘은 곁에서 이들의 행군을 지켜보며 말없이 응시할 뿐이다. 말이 없지만 다양한 표정을 지닌 땅과 하늘이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을 품은 끝없는 풍광은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의 배치는 대개 이러하다. 사건이 발생하면 남자들은 앞장서고 여인들은 뒤에 물러서 상황을 주시한다. 빨래하고 뜨개질을 하며 밥을 하며 아이를 돌본다. 하지만, 생사의 순간 여인은 앞으로 나와 방어 자세에서 벗어나 위기를 극복하는 용기를 지녔다. 이것은 강인한 대지의 성별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지도가 없는 그들에게 믹의 지름길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그들은 지금 신세계라 믿고 있는 서부로 가는 길을 만들고 있다. 고난의 행군 끝에 마침내 푸른 나무와 만나는 순간이 온다. 일행이 만난 것은 천국의 입구에서 만나는 생명수인가. 사막 한 가운데에 놓인 신기루일까. 여정의 마침표이든 쉼표이든 그것은 끝없이 횡단하기만 했던 그들에게 방향을 가르쳐 줄 나침반이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 가족  (2018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