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나날들
한 땀 한 땀 수공예에 바치는 경의
영화를 보며 풍경을 회화의 주인공으로 바꾼 화가들을 생각한다. 테렌스 멜릭의 회화적 이미지들은 기능적 가치보다 마음에 남는 인상으로 그림의 주제를 바꿨던 선구자들의 도전과 그 유사성을 견주어 보게 된다. 낮과 밤이 교체하는 <매직 아워>를 최대한 활용한 촬영은 어떤 말로도 그 눈부신 아름다움을 전달할 수 없다. 사진은 빛과 어둠을 이용한 마술이며 그 씬들의 연결을 이용한 착시라는 영화의 정의를 되새기며 황홀하게 빛나는 모든 장면을 사랑하게 만든다.
1910년대 대공황을 1978년에 재현한 영화를 2021년에 마주하는 기쁨은 경이롭다. 자연광으로 찍은 노고에 경탄하는 마음은 이젠 그러한 노동 집약적 아날로그 방식의 수공예 제작이 어렵기 때문이다. 40여 년 전 스크린이 붙잡은 부드러운 표정의 하늘과 밀밭의 고요한 바람은 과학 기술의 도움으로 완성되는 영화가 회화의 예술적 가치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들 만의 외딴 저택에서 벌어지는 세 남녀의 격정적 사랑과 비극은 영화의 가장 중요한 테마가 아니다. <천국의 나날들>의 주인공은 카메라가 인내하며 채집한 천국을 닮은 대자연이다. 추수 후 뒹구는 이삭처럼 인간은 평야를 가로지르는 무정한 기차나 대륙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물의 배경일뿐이다. 각각 따로 존재하는 하늘과 강과 밀밭의 시간을 하나로 매끄럽게 이어주는 엔니오 모리코네 특유의 서정 가득한 음악은 자연음의 일부인양 화면에 동화된다. 장인 테렌스 멜릭이 선택한 모든 장면은 프리드리히가 숲 속에서 맞는 신성한 새벽이나 베르미어의 항구를 조망하는 델프트 하늘, 에드워드 호퍼의 외로운 고딕식 건물처럼 각각 하나의 뛰어난 풍경화로 마음에 각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