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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틸 라이프 Dec 13. 2021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나에게 도착하는 여행

출장이 하루 연기되어 집으로 돌아온 가후쿠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다.


을 연 가후쿠는 벌거벗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관계하는 장면과 마주한다. 남자의 충격이 지나가고 우리는 대상이 '누구' 인지 궁금한 다음 단계로 진입한다. 그는 아마 아내가 소개했던 '그'일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는 내연남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물음표(?)와 (괄호)로 남겨둔다. 배신한 아내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그녀의 행위만을 중계한다. 고요하고 우아하게 움직이는  아름다운 뒷모습은 쾌락과 유희가 잠시 어른거리지만  익숙한 일상처럼 평온한 안정감이 부드러운 음악처럼 공기에 섞여있다.

두 사람은 남편의 이른 귀가를 전혀 모르고 그들을  바라보는 남편의 얼굴을 우리는 방 안에 반사되는 거울을 통해 발견한다. 가후쿠도 거울이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것을 모른다. 고요한 얼굴 아래 참담한 마음이 비친 거울을 볼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목격한 관객뿐이다.  차갑게 상황을 인식하고 미동도 분노와 절망의 그림자도 없는  남편의 표정은 의아하다. 잠시 후  둘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는 숨죽여 문을 닫고 현장을 빠져나온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거울의 잔상으로 남은 환영과 이별하기 위한 시간이 여느 일본식  영화의 덤덤한 감정처럼  흐른다.


누구에게나 먼 죽음이 가까운 나의 현실이라는 자연의 순환을 깨닫는 시기가 온다. 그때 죽음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 공포로 나머지 고통은 도리어 하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상간남의 얼굴이 사라지거나 아내의 뒷모습만 남은 불륜의 묘사는 가후쿠가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동강 난 현실과 용기 내어 마주 볼 수 없는 내면의 그늘을 닮았다. 그의 현재는 아내의 남자를 향해 품었던 의문들 중에  '누구' 와 '왜' 의 시간이 지나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공유한 사람끼리 외면하고 견디는 일상처럼  보인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모두의 얼굴을 지운다. 연극 대사로만 표현하는 비겁한 마음이 오랫동안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종착역에 이르지 못한 말들은 도로에 궤적으로 남고  다가가지 못한 진심은 길가에 흩어져 날아간다. 그녀의 고백 두려워 주저하고 도망쳤던 남자는 다시 출발역으로 돌아가 지체한 시간만큼 돌아 돌아 뒤늦게  도달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는 고레에다 히로가즈가 개척한 한적한 국도를 하마구치 류스케가 주인을 바꿔가는 중고차에 하루끼 소설 같은 여자들과 동행하며 귀 기울여 모은 말들의 운행 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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