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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틸 라이프 Feb 14. 2019

4등

-선을 유영하며 얻은 소년의 자유

재능이 있으나 성적이 부진한 초등학생 수영선수 준호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극성 엄마의 권유로 새로운 코치 광수를 만난다. 그는 과거 아시아 신기록까지 낸 국가대표였지만 감독의 폭력으로 선수촌을 뛰쳐나온 전력이 있다. 광수와 참가한 첫 대회에서 준호는 1등에 근접한 성적을 올리고 코치는 기록 경신을 위해 아이에게 체벌을 가하기 시작한다. 엄격한 훈련을 위해 수영장 출입을 금지당한 엄마는 곧, 광수의 체벌을 눈치채지만 1등이라는 목표를 위해 아빠도 그의 폭력을 방관한다.
자유롭게 물속에서 유영하고 수영장을 관통하는 세상의 빛을 사랑하는 소년 준호는 성적 만능주의를 강요하는 세상의 폭력을 어떻게 헤엄쳐 나갈까.

재능이 있으나 성실하지는 않았던 어린 광수는 수영을 좋아하나 성적에는 무관심한 초등생 준호와 닮은꼴이다. 폭행의 피해자로 선수의 길을 스스로 접은 광수는 자신이 코치의 입장이 되자 성적을 위해 쉽게 폭력을 행사한다. 이는 학습으로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되는 폭력 대물림의 무서움을 잘 나타낸다. 더구나 목표만을 위해 체벌이라는 낡은 교수법을 답습하고 주변의 희생을 등한시하는 엘리트 체육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하지만 이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랑하는 자식의 폭력의 희생양임을 발견하고도 짐짓 모른 체하거나 묵인하는 준호 부모의 소름 끼치는 태도다. 자식을 자신의 성공의 대리 물로 여기고 아이를 향한 채찍을 용인하고 부채질하는 부모는 고용된 코치 광수보다 더 잔인하다.
영화의 마지막, 경기 시작 휘슬이 올리자 모두가 일직선의 레인을 숨 가쁘게 달려 나갈 때 너와 나를 구분 짓는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고도 쉽게 우승을 거머쥔 준호의 경기는 우리가 꿈과 재능을 가진 소년에게 해 줄 것은 결국 힘찬 응원일 뿐임을 묘사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잠영하는 준호를 유혹하는 천장의 빛은 현실을 모호하게 하는 환상의 느낌과 맞닿아 그 우승은 과연 실재였을까 하는 의문을 거두기 어려워 준호를 향한 응원을 목청껏 할 수는 없었다.

경기 종료 후 물에서 나와 환호를 뒤로하고 샤워실로 걸어가는 준호의 시점이라 여겼던 쇼트는 준호가 관객을 향해 보여주는 마지막 표정에서 우리를 멈칫하게 만든다. 여태껏 준호의 것이라 믿게 한 카메라의 눈은 승리의 세리머니가 당연히 소년의 몫이라 여긴 우리의 믿음을 깨뜨린다. 관객은 우승의 기쁨이 묻어나지 않는 준호의 얼굴에 이르러 뚜렷한 의문이 생긴다. 전광판에 선명하게 새겨진 1이라는 숫자, 현장에 메아리치는 커다란 함성은 우리가 익숙하게 학습해온 승리의 익숙한 그림이다. 그러나, 치열한 경기가 끝나고 눈에서 물안경을 떼고 귀마개를 제거하고 마주한 영광이 사실은 부모나 코치 아니면 환호하는 관객이 준호를 통해 얻고 싶던 대리 소원은 아니었을까. 그 기쁨의 수면 아래에는 물에서 누리는 자유가 좋다는 소년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결과를 위해 희생당한 아이의 상처가 숨어있다. 우리는 쉽게 폭력을 묵인하고 가해했던 공범으로서의 자의식은 성적을 위해 희생되고 희석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준호인 듯 보였던 준호의 것이 아닌 그 시점은 숫자 1등이 아이 스스로가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얘기하는 듯하다.
탈의실로 퇴장하기 전 알 수 없는 준호의 표정에는 오늘처럼 즐겁게 달리리라는 수영장의 내일에 대한 소박한 기대와 성적 만능을 당연시한 모두의 책임을 똑바로 응시하라는 작은 압력이 숨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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