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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시생의 시간은 일요일에 시작된다

by 달빛마차

주말부부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내 시간은 날짜가 아니라 요일로 나뉘었다.

월요일이 오면 시작이고, 금요일 밤이 되면 잠깐 숨을 고르는 구조. 남편은 금요일과 토요일의 경계선을 아슬아슬 넘으며 도착해 하루를 함께 보내고, 일요일 점심이면 다시 떠났다. 가끔은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나에게 일요일 오후는 단순한 주말의 끝이 아니었다. 로봇이 합체되었다 분리되듯이 남편, 나, 아이와 합체되었다가 나와 아이로 분리되어 나오는 시간이었다.


남편이 떠난 뒤의 집은 묘하게 조용했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길게 남았고, 나는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괜히 부엌을 서성였다. 그리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을 보고, 반찬을 만들고, 아이 옷을 세 벌 때쯤 미리 꺼내 걸어두었다. 월요일 아침에 허둥대지 않기 위해서였다. 밤이 되면 책상 앞에 앉아 다음 주 계획을 적었다. ‘이번 주엔 조금 더 해보자’는 마음과 ‘이 정도면 버틴 거야’라는 마음이 늘 줄다리기를 했다.


나는 거창한 각오로 공부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월요일 오전이면 스터디에 나갔다.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 가끔은 내가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오롯이 시험을 위해 시간을 쓰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아이 하원 시간을 계산하며 시계를 보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 시간이 좋았다. 백지에 한 주제를 써 내려갈 때면, 엄마도 아내도 아닌 나로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다. 두세 달에 한 번씩 이론을 다 돌리고 나면 시험을 치른 사람들처럼 허탈하게 웃으며 스터디원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 순간만큼은 다들 비슷한 얼굴이었다. 지친 얼굴,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얼굴.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은 혼자 공부하는 날이었다. 점심은 늘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것들로 해결했다. 샌드위치나 삼각김밥, 가끔은 샐러드. 혼자 앉아 먹는 그 짧은 시간이 오히려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십여 분. 그게 그렇게 귀했다.

아이가 하원하면 다시 엄마로 돌아갔다. 저녁을 먹이고, 숙제를 봐주고, 씻기고, 재우고. 그리고 조용해진 밤에 다시 책상에 앉았다. 공부 시간을 인증하는 앱에 사진을 올릴 때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라기보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오늘 하루도 무탈히 잘 지냈다고.

남편이 오지 못하는 주에는 계획을 조금 느슨하게 잡았다. 처음엔 그게 죄책감처럼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건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이라는 걸. 무너지지 않으려면, 버틸 수 있는 속도로 가야 했다.


엄마가 허리를 크게 다쳤을 때는 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하는 일이 내 몫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이상하게 억울하지는 않았다. 가족을 돕는 일은 계산이 되지 않았다. 그냥 해야 하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러다 아빠의 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독서실에 있었다. 평범한 하루가 한순간에 금이 가는 느낌. 세상이 조금 기울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는 다음 날 아침 아이를 깨워 유치원에 보냈고, 스터디에 나갔고, 반찬을 만들었다.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안 하면 생활이 굴러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알게 됐다. 사람을 버티게 하는 건 결심이 아니라 루틴이라는 걸. 장바구니를 채우고, 비워진 반찬통을 다시 채우고, 아이 옷을 미리 걸어두는 일. 그런 사소한 반복이 무너질 틈을 주지 않았다.


주말부부로 살며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배웠다.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외로움. 강해진 만큼,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지는 순간도 늘 함께였다. 일요일 밤, 아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자주 생각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조금은 대견해하겠지.

견딤으로써 건진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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