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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이라는 말의 다른 얼굴

by 달빛마차


합격자 발표날,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마우스를 누르던 그 순간의 떨림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나타난 최종합격이라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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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 첫해의 기억은 합격의 기쁨보다 낯섦의 감정이 더 또렷하다.

나는 대전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시험을 봤고, 최종 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기뻤다. 분명히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은 곧바로 현실이라는 이름의 질문으로 바뀌었다.

이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발령받은 지역은 무연고지였다. 친구 한 명이 겨우 살고 있는 곳.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어렵게 집을 구했지만, 이사는 한 달 뒤였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친구 집에 얹혀살게 됐다.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아무리 친해도 가족은 아니니까. 남편은 와서 잘 곳이 없으니 당일치기로 오기도 했고, 아예 오지 않는 주말도 많았다. 그 한 달은 합격자 신분이었지만, 여전히 임시 거주자 같은 시간이었다.


집으로 이사한 뒤, 진짜 생활이 시작됐다.

발령받은 학교는 3식을 하는 곳이었고, 식수는 천 식이 넘었다. 아침 6시에 출근해 밤 9시 가까이 퇴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합격 당시 첫째는 일곱 살,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친구에게 아이를 맡기는 일은 늘 마음에 걸렸다.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했고, 미안함은 매일 쌓였다. 그래도 친구가 봐주겠다고 해준 덕분에,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를 맡기고 출근했고, 밤이 되어서야 다시 아이를 데리러 갔다. 몇 달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혼자인 시간이 묘하게 양면적으로 느껴졌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시험 준비를 할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이 버겁고 지쳤다. 늘 쫓기듯 공부했고, 아이가 잠든 밤에 겨우 나를 붙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밤에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됐고, 주말에 책을 펴지 않아도 됐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예전처럼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놀러 다니고,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는 시간이 숨을 고르게 해 줬다. 아, 나 이제 공부 안 해도 되는구나. 그 사실이 조금씩 실감 났다.


남편은 말했다.

“오랜만에 경제활동 하는 거잖아. 첫해에는 저금 신경 쓰지 말고, 사고 싶은 거 사.”

그때는 그 말이 배려처럼 들렸다. 나를 편하게 해 주려는 말 같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남편은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 주말에 가족끼리 외식을 해도, 계산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만 생활비는 말 그대로 생활비였다. 고정비를 빼고 나면, 주말 내내 외식을 하거나 큰 물건을 살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그런데 지출은 늘 우리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아이와 함께 먹는 밥, 가족과 보내는 주말, 새로 시작하는 생활을 위한 물건들. 하나하나 따지면 다 필요한 것들이었고, 그래서 더 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설명하기 싫은 분노였다.

'공부할 때 나를 도와줬던 걸, 이렇게 갚으라는 건가.', '결국 내 월급으로 가족의 여유를 유지하라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으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감사한 일과 서운한 일이 동시에 존재했다. 합격의 기쁨과 경제적 부담, 이용당하는 듯한 감정이 뒤엉켰다. 그 감정들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임용 첫해의 나는, 합격자이면서도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었다.

혼자 버텨온 시간 덕분에 여기까지 왔지만, 그다음의 삶은 또 다른 방식의 균형을 요구했다. 그 균형이 무엇인지, 그때의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건, 그해의 나는 다시 한번 배웠다는 사실이다. 합격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질문의 시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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