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가게

by 주드

생각해 보면 나는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는 일이 별로 없다. 기본적으로 옷이나 신발, 장신구, 취미생활 등에 소비를 많이 하지 않기도 하고, 꼭 필요한 소비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한다. 누군가를 만날 일이 없다면 커피는 집에 있는 커피 머신으로 내려 마시고,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간 건 2년도 넘은 듯하다. 어느 집이나 비슷하겠는데, 코로나 때 절박하게 그러나 일시적으로 이용할 것으로 여겼던 시스템을 이제는 벗어날 수가 없게 되었다. 얼음을 인터넷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것도 벌써 오래전 일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온라인으로 구할 수 있다.


그나마 이용하던 가게인 동네 세탁소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커뮤니티에 세탁 서비스 시설이 생긴 이후로는 몇 달째 가지 않고 있다. 아파트 내 세탁 서비스 시설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어쨌든 직접 가서 세탁물을 맡기고 찾으며 돈을 지불(포인트로)하는 행위를 해야 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가게’가 맞다. 그러나 아날로그의 끝물과 디지털 시대의 첫 포문을 동시에 경험한 세대로서, 나는 ‘가게’란 사람과 사람의 접촉이 꼭 일어나야 하는 곳에 어울리는 말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동네 세탁소 아저씨를 처음 봤을 때 어딘가 기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네, 바지 O벌, 셔츠 O벌, 총 OOO원입니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고객님.’ ‘안녕히 가십시오, 고객님.’ 무표정한 얼굴로, 군더더기 없는 말 일절 없이 말끝마다 ‘고객님’을 붙이며 응대했기 때문이다. 세탁물을 맡기고 계산을 치르고 나서려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하던 사장님은 아무리 젊게 봐도 50대 중반으로 보였다. 프랜차이즈 가게 이름이 가슴팍에 박음질된 남색 조끼를 갖춰 입은 채 뿌리 염색이 필요해 보이는 희끗희끗한 정수리가 다 보이도록 고개 숙일 때마다 나도 얼떨결에 허리 굽혀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족히 열 번은 넘게 방문하는 동안에도 아저씨는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한여름 휴가철을 앞둔 어느 날, 세탁물을 가득 안고 세탁소를 갔는데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문이 활짝 열려있고 초대형 선풍기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세게 돌아가고 있었다. 가게 안쪽에서 쓱쓱 싹싹 거친 마찰음이 들려왔다. 아저씨가 운동화를 빨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사장님!’ 여러 차례 고함에 가깝게 부른 뒤에야 아저씨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바지 O벌, 셔츠 O벌, 네 고객님 총 OOO원입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서로 ‘감사합니다’는 말과 함께 맞절을 하고 돌아 나왔을 텐데 그날따라 어색함을 무릅쓰고 나도 모르게 ‘여름휴가 잘 보내세요’라는 말을 건네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긴 휴가가 끝나고 세탁물을 찾으러 갔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아저씨의 얼굴에 표정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고된 노동에서 잠시 벗어나 달콤한 휴식을 취했기 때문일까, 아저씨의 눈빛은 느긋하고 편안해 보였다. 어쩌면 나를 반가워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OOO 고객님이시죠?’라고 한 순간 나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맞다고, 어떻게 기억하시냐고, 휴가 잘 보내고 오셨냐고, 오늘은 더위가 조금 누그러져서 다행이라고, 쓸데없이 호들갑을 잔뜩 떨었다. 아저씨는 ‘아, 네네’라고 멋쩍게 답했을 뿐이었지만 아저씨가 웃는 모습을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아파트 세탁 시설에 다녀올 때마다 아저씨 생각이 한 번씩 떠오른다.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밤늦게 또는 급할 때도 슬리퍼 신고 다녀올 수 있는 이곳을 자꾸 찾게 된다. 한 번 이용하다 보니 동네 세탁소는 안 가게 된다. 딜레마에 빠진다. 귀찮더라도 동네 세탁소를 한 번씩 찾아가는 게 맞을까? 이용료가 조금 차이가 있는데도 기계처럼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아저씨가 있는, 사소한 교류만으로도 소소한 즐거움이 있던 그곳을 다시 찾아야 할까.


금요일 저녁마다 찾는 식당, 마음이 헛헛할 때 가볍게 들를 수 있는 작은 바, 햇볕이 잘 드는 북까페나 믿고 살 수 있는 식료품 가게. 내 일상에 작은 낭만을 불어넣어 주는, 오랫동안 정을 나누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해주는 가게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따금씩 한다. 운 좋게 발견하거나, 주변을 하나하나 공들여 살펴봐야 보물들이 찾아질 텐데. 너무나도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넘어지지 않고 쫓아가느라 급급하다. 느긋하고 너그러운 눈길 한번 돌릴 여유가 없다. 그리고 그동안에 느린 것, 오래된 것, 물려주고 싶은 것들은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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