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my life

by 주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의 일이다. MD나 MP3가 나오기 직전이거나 나온 직후여서 엄두도 못 내는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늘 묵직한 CDP를 숄더백에 넣고 다녔다.


그 시절은 참으로 외롭던 시절이었는데, 20년가량의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때 내가 느꼈던 외로움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이유를 몇 가지 댈 수 있게 되었다. 그 중 하나에 대해 얘기하자면 나는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너무나도 미숙했는데, 그러한 미숙함을 감안하고 그것들을 꿰뚫어봐 줄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치 물이 가득 들어찬 유리컵에 작용하는 표면장력과도 같았다. 당장이라도 넘쳐흐를 것만 같은 긴장과 초조. 컵 안에 안정적으로 내용물을 담고 있을 여유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한계선을 넘어서 컵 밖의 다른 세상으로 나가보는 패기도 없는 상태. 어디선가 가느다란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오거나 바닥에 아주 작은 진동만 가해졌더라도 장력은 깨졌을 것이다. 물이 컵 벽을 타고 흘러내려와 테이블을 적시고 종이 위의 글씨를 번지게 하고 응집하여 어떤 새로운 모양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 시절 나를 두르고 있던 표면장력을 더욱 팽팽히 만들던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굉장한 조예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마니아적인 오만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때그때마다 이끌리는 음악을 듣고, 듣고, 또 들었다. CDP와 CD 몇 장을 들고 다니며 지하철이나 번화한 거리, 숨 막히는 상아탑의 한복판에서 나는 거추장스럽게 긴 이어폰 줄을 귀에 꽂은 채, 걷는 중에 CDP를 열어 CD를 교체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음악을 듣고 또 들었다. 음악을 듣는 순간에는 사람들과의 완벽한 단절이 이루어졌고 나는 그 고립감을 즐겼던 것 같다. 나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그 표면장력이 음악 비트에 맞춰 두둥 두둠칫 울리며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그 긴장감을 '외로운 사람들만의 특권'이라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다.


내가 닳도록 듣고 또 듣던 음악 중 하나는 비틀즈였다. 비틀즈에 대한 사랑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때는 테이프를 들었다. 유명곡들만 모아놓은 컴필레이션 테이프를 듣다가 우리 학교에 단기로 부임한 영어교사의 책상에 비틀즈의 ‘빨간 앨범’과 ‘파란 앨범’을 발견하고는 그 음반들만 듣고, 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테이프 대신 CD의 음질로 ‘빨간 앨범’과 ‘파란 앨범’을 듣고 또 들었다.


지금까지 두서없이 길게 글을 늘어놓은 건 바로 이 비틀즈의 ‘빨간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비틀즈가 해체하고 3년 후 1973년에 발매한 앨범으로 62년부터 66년까지 비틀즈의 초기 전성기 곡들을 담은 ‘빨간 앨범’과 관련해, 내 인생 어느 하루에 벌어진 기묘하고도 진실된 그 이야기를.


지독히 외로웠던 시절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내게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역시 비틀즈의 광팬이었다. 나는 소녀 때부터 비틀즈를 들었다고는 해도 비틀즈와 관련된 숫자적 지식이나 음악적 이해가 뛰어난 건 아니어서 팬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무리였다. 그러나 그는 마니아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나의 소개로 비틀즈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이다. 몇 개 곡(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하나의 곡을 듣고 또 듣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도 비틀즈의 곡들을 많이 모른다)을 들려주며 이야기를 해주었을 뿐인데 그는 순식간에 비틀즈에 매료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는 입 다물고 그가 비틀즈에 대해 늘어놓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을 때가 더 많아졌다. 말하는 중간 중간 “이미 네가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을 잊지 않았던 그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자취를 했는데, 비틀즈의 앙똘로지 앨범을 사기 위해 한 달 동안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기도 했다.


우리는 비틀즈의 음악을 함께 듣고, 가사의 특별한 의미를 두고 고민해보기도 했다. 나는 비틀즈 멤버 중에서 존 레넌을 가장 좋아했는데, 그가 오노 요코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자 역시 뮤지션인 션 레넌의 음악도 자연스럽게 좋아했다. 아들의 목소리와 음악이 아버지와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나의 친구는 그 유사성에서 션의 비애를 읽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내 방 침대에 엎드려 비틀즈의 ‘빨간 앨범’을 듣고 있었다. 그 날의 하루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날씨는 어떠했는지, 수업이 많았는지 적었는지, 누구의 말에 상처를 입었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오늘날까지 두고두고 가슴에 사무치게 될 어떤 일이 일어난 바로 그날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스탠드의 노란 불빛이 침대 위로 작은 원을 드리우고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엎드려 고개를 옆으로 한 채 눈을 꼭 감고 이어폰을 꽂고 있었고 있었다.


그때였다. 존 레넌의 노랫소리가 이어폰에서 벗어나 바로 내 옆에서, 나의 작은 노란 원 안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나는 눈을 화들짝 떴다. 익숙한 벽지 패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또 다시 존 레넌의 리드 보컬과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의 기타와 링고 스타의 드럼이 바로 내 옆에서 연주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연주는 이어폰을 통해 주입되던 소리들과 분명히 달랐다. 그렇다고 내 방이 콘서트홀이 되어 소리가 공명하듯 울렸다는 것은 아니다. 나만 들을 수 있는 크기로, 아주 내밀하게, 그들의 음악이 ‘라이브’로 왼쪽 귀와 오른쪽 귀를 오가며 들려왔다. “저기, 잠깐만요”라고 말을 걸면 당장에라도 노래와 연주를 멈추고 “What?”하고 대답할 것만 같았다.


이토록 신비하고 황홀한 순간이 끝날까봐 나는 CD가 다 돌아갈 때까지 꼭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혹여 그들의 연주에 방해가 될까봐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들의 신났다가, 우수에 젖었다가, 거리낌 없이 내질렀다가, 더없이 간절하게 호소하는 연주를 마디 하나하나 음 하나하나 따라가며, 그날 밤 나는 그렇게 숨죽인 채 눈물만 계속 쏟아내었다.


“존 레넌이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단 말이지!”


다음 날 역시나 나의 친구는 내 기이한 경험을 조금도 비웃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언젠가 내 왼손 엄지손가락이 링고 스타의 얼굴과 닮았다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도 유쾌하게 받아줬던 그였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그날 밤과 같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 한동안 계속 비틀즈에 심취해 있었긴 했지만, 그들의 연주는 CDP안에서만 존재했고 이어폰으로만 내 귀로 연결되었다. 그 친구와의 관계도 지속되지 못했다. 친구와 나 사이의 표면장력은 결국 무너지지 못했다. 그 이유를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사이에 사랑도 우정도 아닌(정말이지 진부하고 통속적인 구절이 아닐 수 없으나 이렇게밖에 표현이 되지 않는다), 정의내릴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존재했고, 그것을 끝까지 헤아리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비틀즈에 대한 관심이 퇴색하면서 우리 사이의 그것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날 밤은 내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한 시절을 박제하는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물 한 방울이라도 흘리지 않겠다며 몸에 잔뜩 힘을 주고 버티고 섰지만은 사실은 누군가 나의 컵을 세게 흔들어주길, 작은 컵 안에서 물이 소용돌이치고 몽땅 흘러넘쳐버리도록 그래서 새로운 것으로 컵을 다시 채울 수 있도록, 그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만 했던 안타깝고도 어리석었던 그 시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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