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나는 늘 돈에 쪼들렸다. 형편에 맞지 않는 소비가 많았다. 지금은 모두 없어졌지만 종로 곳곳에 있던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거의 놓치지 않았고, 책은 꼭 사서 봤다. 물감 욕심도 많았고, 음반도 자꾸 사들였다. 공연 티켓 값이 비싸서 마음을 접었다가도 계속 눈에 아른거려서 결국은 보러가곤 했다.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돈이 모일 턱이 없었다.
그래서 내 기억 속의 20대의 나는 늘 구질구질하고 꾀죄죄했다. 그 당시 사진을 보면 머리 좀 하지, 옷 좀 사 입지, 가방도, 구두도, 화장품도 좀 사서 예쁘게 하고 다니지,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뭘 안 해도 제일 예쁠 때라는데 나는 뭘 좀 해줬으면 나았겠다, 40대의 나는 아쉬워한다.
어쨌거나 그 시절의 나는 그런 것들을 마음에 품지 않았다. 나의 마음은 다른 것들을 향해 내달렸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무대공연을 관람할 때 한바탕 웃거나 울고 나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멋지고 특별한 사람, 내가 되고 싶은 사람, 어쨌든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 어떤 막이 생겨 나를 보호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마냥 좋았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제 3자로서 마음의 정화를 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직접적 주체가 되어 그 세계에 속하고 싶다는 열망이 끓었다. 그래서 그 세계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 누군가에게 막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세계를 추구하는 일은, 열망은 있으나 재능은 없는 이에게 그 길은 지극히 구질구질하고 꾀죄죄한 것이 되리란 것을.
첫 직장을 대학로에서 구했을 때 세상에 어쩜 다들 구질구질하고 꾀죄죄하고 나랑 비슷한 사람들만 모아놨는지 나의 구질구질함과 꾀죄죄함은 엄청난 시너지 속에 가속화되었다. 부모님은 너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 안 보냈다고 하셨지만 나는 이 구질구질함과 꾀죄죄함이 청춘의 다른 말인 줄만 알았다. 이상한 자부심마저 느꼈다. 겪어본 적 없는 격정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선배가 퇴근 후 우리 회사의 공연을 보러 와줬다. 고마운 마음에 뛰쳐나갔는데, 선배는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직장 동료들을 우르르 데리고 왔는데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그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말았다. 어느 때보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지만 속으로는 ‘저들이 선배에게 나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이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나를 둘러싼 막에 가느다란 금이 갔는데, 금이 간 것을 본 나는 더욱 당황했다. 그 뒤로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균열을 일으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주변과 다르다고 느끼게 해줬던, 모든 열정을 다 바쳐 나의 세계를 추구해나가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증표라고 굳게 믿었던 구질구질함과 꾀죄죄함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속일 수 없었다. 그것들은 오직 나의 ‘무재능’을 더욱 초라하고 도드라지게 했을 뿐이었다. 첫 월급조차 부모님께 드리지 못하고 생활비로 써야 했던 나는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대학로를 떠났다.
사실 내가 정말 이겨내지 못했던 건 다른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속이 쓰리고 견딜 수 없는 그것이었다. 나의 청춘은 늘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오만이었을 뿐이었다. 사장님께서 물려주셨던 노트를 다시 돌려드린 날 사장님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붙잡아 주시길 바랐지만 붙잡지 않으셨다.
두 번째 직장 생활은 사무직이었다. 재미는 없었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었다. 화장품이랑 구두랑 백화점의 옷들을 사기 시작했다. 구질구질함과 꾀죄죄함은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서 나는 언제나 셔츠 깃에서, 재킷의 단추에서, 치마 밑단에서 구질구질함과 꾀죄죄함을 찾아냈다. 혐오감이 밀려올라와 서둘러 뒤돌아섰지만 나는 알았다. 내가 그것들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기어이 나는 다시 한 번 이직을 했다. 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적당히 구질구질하고 꾀죄죄한 일이었다. 길을 제대로 찾았다고 생각했으나 이번에는 사람들이 어려웠다. 후회할 것을 알면서 나는 그곳을 나왔다. 구질구질함과 꾀죄죄함에 완전히 지쳐 버리고 말았다. 구질구질하지 않아도 꾀죄죄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남자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긋지긋한 구질구질함과 꾀죄죄함으로부터 도망쳤다.
오늘같이 갑자기 바람의 결이 달라지는 시기가 되면 그 시절의 대학로가 떠오른다. 매서운 칼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며 우리 작품 넘버를 끊임없이 흥얼거린 채 혜화동 로터리를 걸어가던 구질구질하고 꾀죄죄하던 나.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라는데 왜 나는 그때를 떠올리면 힘이 드는 것인가. 솔직하지 못해서였는가. 포기해버렸기 때문인 것인가. 가난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겠냐고, 한 맺힌 시인의 노래를 읊고 또 읊으며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내가, 나는 아직도 미운 것인가.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입는 티셔츠와 면바지와 운동화가 어느 날 문득 그렇게 구질구질하고 꾀죄죄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그렇다고 비싼 옷과 신발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다. 나의 마음은 다른 것들을 향해 내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그게 한심하면서도 기뻐서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