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머릿속에서는 명료하게 자리잡은 생각들이 입을 통해 나오면서는 좀처럼 형태를 갖추지 못한다. 머리로든 입으로든 분명 같은 진실을 다루고 있음에도, 언어의 형태를 띠는 순간 그것은 다른 두 가지가 되어버린다. 아무렇게나 옷을 입힌 허수아비나 설명서대로 따르지 못해 조립을 실패한 레고 장난감처럼. 진지하거나 중요한 순간에 나의 생각은 그렇게 불완전한 존재로 타락한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막힘없이 말이 흘러나온다. 기민한 순발력과 재치, 풍부한 감각이 나의 말에 흘러넘친다. 어떤 생각이든 완벽한 형태의 말로 표현된다. 그것은 자유다. 그 완전한 자유에 나는 흠뻑 취하고, 자만한다. 나의 생각은 여과되지 않은 채 풍부한 물줄기에 올라타 아찔한 유속으로 흐른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착각한다. 그들이 내 말에 공감하고 있다고.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고통스런 밤이 찾아든다. 그런 밤에는 모든 것이 고통스럽다. 모든 것을 감추지 못하는 불완전한 어둠도, 오랫동안 참고 써오는 불편한 베개도, 옆방에서 건너오는 코고는 소리와 밖에서 들려오는 자리를 못 잡고 떠다니는 밤의 소리들. 잠자리에 누워 나는 오늘 내가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말의 향연을 되감기한다. 내가 만들어낸 말들을 하나, 하나 곱씹는다.
세월이 흐르고 나니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간 허탈했지만 곧 이것은 나이듦이 주는 굉장한 축복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내게 주목하는 것은 보여지는 내가 아니라 내가 하는 말 그 자체, 그 말이 품고 있는 메시지가 얼마나 그들에게 유무형적으로 유익하며 따라서 그들의 삶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주는지 아닌지였다. 나의 말이 그들의 감성을 건드렸거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거나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마음을 동하게 했을 때 그들은 나의 말에 귀 기울이고 비로소 ‘나를 보기’ 시작한다. 외양의 매력이 점점 감소하는 시점에서 사람들이 나를 나의 ‘말’을 통해 ‘나’를 본다는 것은 진정 축복이고 위로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고통스런 밤이 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날 내가 뱉어버린 말들이 그날의 ‘나’를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내 생각의 깊이가 여기까지라는 것을 이렇게 용감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나의 어리석은 말들로 내가 별 볼 일 없어지는 것은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만 충격을 주고 후회하는 것으로 그치는 말은 잠깐의 고통으로 끝나버린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가해지는, 그래서 더 이상 나만의 좌절로 끝나지 않는 그런 말들이다. 그건 무례한 거였는데. 그 사람, 상처받았을 텐데. 그 당시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말이 막힘없이 흘러넘치던 그 순간, 그건 경고였는데. 내가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고통을 예방하기 위한 기제인지도 모른다.
이미 나를 떠난 말들, 돌이킬 수 없는데.
나의 생각들은 끝도 없이 한밤을 헤맨다. 내가 한 말들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그 말들의 반이라도, 반의 반만이라도 거둬들일 수 있다면. 어딘가에는 미처 가닿지 못하고 흩어져버린 말들도 있지 않을까. 내 말의 생명력이 고작 그 정도여서 그에게 하찮은 의미조차 남기지 못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러나 자기 놀 것에 흠뻑 빠져있던 게 분명했던 아이가 자신에 대해 나누는 부모의 대화의 토씨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들어버리듯, 대개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은 수많은 말들의 분자 사이를 뚫고 내 귓가에 정확히 와서 꽂힌다. 돌이킬 수 있다는 희망은 없는 것이다.
희망이 사라지면 덧없는 상상이 피어난다. 내가 뱉은 말들을 주워 담을 수 있는 찬스라는 게 있다면? 모든 이에게 공평히 평생 단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던 말들 중 워스트 쓰리는 무엇일까. 잠깐, 평생의 세 번인데 오늘 하루에 썼던 말들을 지우고자 다 써버리는 건 너무 아까운 일 아닐까. 그런 귀한 기회를 쏟아버리기엔 오늘의 말들은 ‘그렇게’ 형편없던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생각까지 미치자 나는 헛웃음이 나온다. 왜? 앞으로도 지독한 말들을 더 하겠다는 것이냐. 고통의 밤은 그저 모순덩어리.
문득, 실제로 누군가에겐 이러한 기회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내 주변의 누군가는 내게 끔찍한 말을 내뱉은 뒤 회한의 밤을 보내고 신중히 선택해서 삭제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슬아슬하게 자존감을 지켜낼 수 있었고, 그 어느 밤을 안전하게 잠들 수 있었으며, 그 또는 그녀와 적이 되지 않고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또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지만 고의가 아니었기에 나를 위해 고통스런 밤을 보냈을 것이고, 나를 위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 기회를 사용했고, 그 후로 나와 대화할 때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있을 것 아닌가. 돌이킬 수 있는 것은 당시에 내뱉은 말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오랜 세월 쌓아온 공든 탑인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비로소 마음이 편해진다. 완벽하진 않지만 해결책을 찾았다는 생각에서다. 내가 뱉은 말을 돌이킬 수 있는 찬스 같은 건 없지만, 무너진 공든 탑 잔재에 가서 박힌 화살을 뽑아내고 돌 하나, 하나 맞춰가며 바로세우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많은 공든 탑들을 향한 모든 말을 조심하며, 말이 너무 많았다거나 자유롭게 흘러나오는 순간, 그 순간을 나는 기민하게 파악하여 자제를 하는 것이다. 그때가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