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없는 순간, 나는 그런 순간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들켰을 때나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질투에 휩싸이거나 심술을 부리는 모습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할 때 등등 나 자신이 꼴도 보기 싫어지는 이유는 꽤나 다양합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잠시 괴로워하다가 큰 어려움 없이 평상시의 상태로 회복합니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감당할 만큼만 자책하고, 자신이 밉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자기애가 펄펄 끓는 것도 아닌 그런 일상의 모습으로요.
문제는 좀처럼 회복을 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순간은 열이면 열, 낮은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을 때입니다.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자기혐오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자존감이 더욱 낮아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비틀거리며 일어납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나는 그대로였어.’ 쓰라리고 비참합니다.
지금 나는 그러한 순간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사소한 언쟁으로 끝날 수 있었는데, 흥분한 나머지 그만 또다시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흥분도 잘합니다. 활활 타오르던 분노가 차갑게 식어버리고 나서야 열등감이라는 괴물이 나를 다시 삼켜버렸음을 깨닫습니다. 괴물의 뱃속 저 밑바닥에 웅크린 채 나는 되뇝니다. 나는 도저히 나를 좋아할 수가 없어. 패배자는 가까스로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그러고는 잘 벼린 칼로 예리하게 베이는 아픔을 느끼며 하얀 화면에 글자를 입력합니다. ‘내가 좋아지는 시간.’
내게 글쓰기는 지적 허영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보여주기 위한 것, 공들여 꾸며서 인정받기 위한 것, 나의 우월함을 마음껏 펼쳐놓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과정은 늘 짜릿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멋들어진 표현이 만들어진 것에 한껏 만족했지만 그것들이 가장 진실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새벽녘, 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사놓은 지 십 년도 넘은, 오래되었지만 흔적 없이 깨끗한 노트의 첫 장을 펼치고 펜을 들어 아무 말이나 쓰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한 자 한 자 고심하며 골라 쓰느라 오래 걸렸을 테지만 그 순간에는 아무런 계산 없이 떠오르는 대로 거침없이 써 내려갔습니다.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 말’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불안이나 침체되는 감정은……’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언제나 내 안에서 쉼 없이 재생되던 나의 독백이었을 테니까요.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글쓰기가 나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겠다고. 끝까지 붙들고 갈 생명줄일지도 모르겠다고.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써버리고 나니까 어때’, ‘별 것 아니지?’, ‘그러니까 아파하지 마.’ 그 새벽, 그것은 하얀 종이에 검은 눈물처럼 흘러나와 나를 위로해주었습니다.
물론 그 후로도 나는 허영이 가득한 글을 씁니다. 언젠가는 그 누가 나의 글을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아직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나 자신이 싫어지고, 나 자신을 싫어하는 내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질 때면, 마치 비에 홀딱 젖은 채 돌아와 엄마 품에 파고드는 새끼 여우처럼 나는 나만의 글을 찾습니다. 가장 진실된 마음을 담아, 그렇게 글을 완성하고 나면 나 자신이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그 성취감은 희열이고 위로이지만, 한편으로는 불안이기도 합니다.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또다시 좌절하고, 열패감에 시달릴 것이며, 자괴감으로 고통스러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안은 새로운 비밀을 만들기 위해 나선 한밤중의 공기 같은 것입니다. 나는 초조와 혼란과 기대를 갖고 다시 다음 글을 쓸 것이고, 그 글은 또 다른 확신으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내게 글은 든든히 믿는 구석이고, 글을 쓰는 시간은 내가 좋아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