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영혼에 깃든 한 마음

by 주드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내게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은 나의 여동생, 나와 일란성 쌍둥이 여동생일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지만 나의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든 적이 없다. “의사가 그렇게 말했으니 맞겠지”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이 미덥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일란성 쌍둥이라고 하기에는 꽤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다.


가늘고 보드라운 갈색 머리카락이 언제나 귀밑에서 단정하게 모아져 있고, 안경 너머 보이는 속꺼풀이 져서 깊은 눈은 언제나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다. 짧고 동그란 코, 웃을 때 선뜻 위로 향하는 입 꼬리가 다정하고 순진한 느낌을 주지만 그 아래 붙은 각진 턱이 그녀의 결연함을 엿보이게 한다.


위는 얼핏 나 자신을 묘사한 것 같은데, 동생과 나는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분위기를 입히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내가 장조의 합창곡이라면 동생은 단조의 자장가, 내가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면 동생은 사순절의 그레고리안 성가 같은 사람이다.


서로에 대한 첫 기억은 당연히 남아있지 않지만, ‘나는 존재한다’는 것을 서로를 통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자각은 언제나 한 몸 같았던 유년기를 거쳐 자연스레 각자의 생으로 분리되고 나서도, 서로가 있어서 가능했다. 우리를 잇는 보이지 않는 탯줄 같은 것이 있는 것만 같았다. 사는 것이 지독히 외롭고 끝이 보이지 않아 절망할 때, 우리의 시작으로 돌아가 서로에게서 답을 구한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했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취향, 지능 및 감각의 발달, 이미 일어났거나 곧 닥쳐올 상황에서 내리는 이성적, 감성적 판단이나 서로의 감정을 알아채는 능력 등이 놀랍게도 유사했다.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때때로 서로의 것이 뒤섞일 때가 있는데 뒤섞여 있다 해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서로의 경험이 제 것처럼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애착 인형들로 만든 세계관이나 함께 녹음하고 놀던 전래동화들, 우리가 쓰고 그린 이야기, 서로에게 쓴 수많은 편지, 나누고 또 나누던 서로의 꿈과 미래.


유년기를 지나, 지난한 입시 관문, 부모님의 부조리(?)함에 대항하는 논리, 푹 빠져버렸던 음악과 영화와 책(비틀스, 사운드 오브 뮤직, 셜록 홈스, 장국영, 양조위, 레미제라블, 이터널 선샤인, 잉글리시 페이션트, 제레미 아이언스, 헤르만 헤세, 빌리 홀리데이, 바흐) 등 사춘기를 관통해 갓 20대에 들어섰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공통적으로 경험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너가 좋아하는 것, 너가 싫어하는 것은 나도 싫어하는 것’이었던 우리가 조금씩 달라진 것은 대학 입학과 더불어 서로의 진로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우리의 차이점은 동생은 조용했지만 드러나지 않게 용감했고, 나는 적극적이었지만 결정적일 때 주저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미래의 진로 문제가 그러했다. 동생은 일찌감치 확실한 길을 찾아 차곡차곡 준비를 해나갔고 합당한 성취를 이루어갔지만, 나는 길치처럼 방향조차 잡지 못해 방황했다. 모든 갈림길과 샛길을 걸어봐야 그 길이 내 길이 아님을 알았다.


그런 동생에게서 위화감을 느끼거나 자격지심에 빠졌던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경쟁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자주 무기력함과 좌절감 속에 허덕였던 건 사실이었는데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던 것은 한결같은 동생의 한 마디였다.

“주드는 예술가야.”

동생은 내가 그리고 쓰고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의 첫 감상자였다. 아낌없이 조언하고 응원했고, 무엇보다 늘 기다렸다. 나의 예술을.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더라도, 나의 내면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존중했다. 그리고 늘 감동해줬다. 동생은 내 작품을 찬찬히,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살폈다. 그러고 나서 마침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볼 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이 검은 물결을 일으키며 일렁일 때, 내 가슴은 기쁨으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나는 지금도 나는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 그 한 마디를 부여잡고 애써 용기를 낸다. 나는 예술가야.


결혼과 출산, 육아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더 앞섰기 때문에 동생에게 크고 작은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조카들, 어딘가 묘하게 닮은 그 아이들을 무한히 사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공유하는 것들은 점점 줄어들고, 왕래도 제한적이지만(심지어 동생네는 얼마 전 멀리 타국으로 파견을 나갔다), 여전히 우리는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고, 짧은 암호의 말로도 몇 시간 분량의 대화를 대신할 수 있다.


나의 인생에 수많은 ‘스침’과 ‘스밈’이 있었지만, 동생이 없었더라면 내 인생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렸을 적 우리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었더라면 지금은 ‘두 영혼에 깃든 한 마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