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위험합니다

by 주드

영화는 위험합니다.


일단은 영화를 보는(보러가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일상을 대단히 거스르는 일입니다.

달력에 빼곡하게 적어둔 것으로도 모자라

알람까지 맞춰두면서 간신히 하루, 하루 일과를 해치우는 사람으로서는,

영화를 위해 하루 중 짧게는 두 시간에서 길게는 예닐곱 시간까지를

뭉텅이로 베어서 날려버리는 일이란

어지간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아니, 아니.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유지요.

그런 거라면 술도 마시지 말고,

커피타임도 없애버려야지.


영화가 위험한 이유는

자꾸 머릿속에 맴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 생각이 이상하게 흐르거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미지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책이나 음악도 마찬가지로 위험하긴 한데

영화는 좀 더 치명적입니다.

시각과 청각이 한꺼번에 공격을 해오는 바람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나의 자유 의지와 분별력이 기능을 못한다고나 할까요?

너무나 일방적이고 강력한 힘이 밀려들어와서

머리는 마비가 되었는데 가슴은 세차게 두근대고 있는

일종의 뇌사 상태.

willingly helpless,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거지요.

그렇게 나의 일상은 위험에 처하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아무리 여럿이 보러 가서 나란히 앉았다 한들)

지극히,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깜깜한 공간 속에서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스크린에 두 눈을 고정한 채

긴긴 러닝타임 내내 눈 한 번 깜짝이지 않고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영화가 절정으로 치달았다가 엔딩을 맞는 순간까지

그 농밀함과 내밀함을 온전히 혼자 견뎌내야 합니다.

(물론 매우 몰입이 되는 영화의 경우입니다.)

그 농밀함과 내밀함은 영화가 끝난 직후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오히려 고조됩니다.

저의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그러고 나서 영화관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리고 이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그 영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거기에 OST까지 완벽하다면

I'm just dead.


이 사실을 어떻게 까먹을 수가 있었는지,

수년 만에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갔다가 기억이 났습니다.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을 찾아 멀리멀리 갔습니다.

대표적인 젊음의 거리였는데 많이 쇠락해 있어서 놀랐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노는 걸까요.

일요일 오후였는데 데이트하는 커플을 손에 꼽았습니다.

영화관을 가는 것은 더 이상 젊은이들의 문화가 아닌가 봅니다.

그들도 영화는 보겠지요?


2000년대 영화 전성기를 젊은이로서 관통해 살았던 나는 가장 황홀한 일탈의 장소는 영화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몸과 머리를 이 영화에 몽땅 내맡겨버렸고

지금 이렇게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OST에 강타되었는데

어느 유투버가 친절하게 모든 OST를 모아놨습니다.

지금 내 꼴이랑 비슷한 사람이겠지요.

미칠 것 같습니다.


원제 번역을 잘못 해놨지만

아주 상관이 없던 것은 아니라 용서해주었습니다.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여자 주인공은 사랑에 있어서도 정말 최악이더니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갈팡질팡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에 몸을 떨었습니다.


나는 남자 조연에 마음이 너무나 쓰였는데

현실에서도 있다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계속 신경을 쓰게 만드는 유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남긴 대사 중에 다음이 기억에 남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문화란 물건으로 전해지는 것이었다.

직접 만져보고 들어보고 하는 것.

물건으로 감정을 나누었다.


죽음을 앞둔 그는 자신이 사라지면

그녀의 삶 일부분도 사라질 거라고 말합니다.

그가 사라지는 순간 그녀에게서도 사라질 테니까요.

언젠가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조금은 슬픈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의미도 없는 추억으로만 기억되는 것은 나도 싫습니다.

어차피 소멸되어 버릴 것이라면

더욱 솔직해져도 되지 않을까요.

나는 두려움 없이

나의 진심에 더욱 충실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여자는 두 남자와 사랑을 하면서 최악의 인간으로 끔찍한 순간들을 지나고 성장이라는 것을 하긴 합니다.

이게 끝은 아니겠지만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

기가 막히는 일이지요.


새벽이 깊어가네요.

영화는 위험합니다.

그래도 또 가고 싶네요.

영화 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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