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저녁 무렵이 되면 나는 억울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월요일은 ‘이번 주도 잘 살아보자!’ 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며 동거인들과 동지애를 다지는 날이다. 화요일은 전날의 다짐이 온기가 간당간당 남아 있는 핫팩만큼 효력이 유지된다. 수요일 아침까지도 핫팩은 쓸 만하다. 그러나 수요일 밤 10시가 넘어가는 시간부터는 또 당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든다.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시간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인가! 지난 주말,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며 내 황금 같은 자유를 날려먹었단 말이냐! 이른 저녁 깜박 잠들었다가 화들짝 놀라서 깬 지금, 내 꼴은 꼭 보풀이 잔뜩 일어난 부직포 같다. 속상하고 분하다.
그런데 더욱 속상하고 분하게 하는 것은 다용도실 한편에 세워둔 와인 네댓 병이다. 두 달 넘게 그 자리를 꼿꼿이 지키고 있다. 와인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먹을 일 없는 독일산 고다 치즈도 꼼짝 않고 냉장고 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이따금 유통기한을 확인해볼 때만 들춰볼 뿐이다. 아니, 대체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거야!
와인도 잊은 채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분노는 차갑게 식는다. 그래, 수요일은 와인 마시는 날로! 일주일의 한가운데서 맥주도 아니고 와인을 마신다고? 주말도 아닌데 누구랑, 안주는 무엇으로, 그리고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이유는 단 한 가지, 오늘은 주말도, 공휴일을 앞둔 평일도, 스케줄이 조금 한가한 날의 전야도 아닌, 바로 수요일이기 때문이다. 도발이고 보복이고,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것을 증명해내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내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시위법이다.
와인은 가능한 한 드라이한 것으로 마시기로 한다. 좀 더 어리고, 좀 더 감정 표현에 거침없었던 시절에는 달달한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 화이트 와인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거칠고 깊고 혓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쓰디쓴 레드와인만 찾았다. 잔에 담긴 검붉은 액체는 참 유혹적이었다. 지금은 허물어지고 없는 옛 영화관의 바닥에 깔린 카펫 색과도 닮았고, 지하실 특유의 냄새마저 분위기에 한몫했던 재즈바의 조명 색을 머금은 듯했다. “나를 마시는 건 특권이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치즈에 대한 지식은 없어서 단순히 식감으로만 고른다. 까망베르 같은 흐물거리는 제형보다는 단단하면서도 짠기가 더 감돌고 꼬순내가 더 강한 고다를 선호한다. 잘게 잘라서 최대한 아껴먹는다. 치즈는 어디까지나 거들뿐이다.
그래, 수요일은 와인 데이로! 유후! 대단한 결정을 내린 듯 뿌듯하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는 와인을 가지러 갈 생각을 한다. 음습해서 한낮에도 들어가기 꺼려지는 다용도실에 가서 와인을 꺼내와, 요즘 들어 쿡쿡 쑤시는 손가락 관절을 힘껏 사용하여 코르크 마개를 딴 뒤 먼지 쌓인 와인잔을 애써 씻어서, 고다 치즈를 자르기 위해 깨끗이 설거지해놓은 도마를 다시 한번 더럽히는 과정을 거치고 난 뒤 마침내 와인을 마시고 나면 밤기차는 새벽차로 바뀌는 시간이 될 것이다. 와인을 다 마시고 뒷정리를 하면서 나는 생각할 것이다. ‘에이,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요즘엔 예전 같지 않아서 밤늦은 술 한 잔은 숙면에 방해가 된다. 술 마셨으면 큰일 날 뻔했다. 몇 시간만 지나 봐. ‘세월이 왜 이렇게 빠르지? 벌써 한 주 다 갔네!’ 모든 늙어가는 생명들과 상련의 정을 나누며, 슬프고도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목요일을 맞이할 것이다. 와인은 그때 가서 마시자. 그런데 참는 김에 조금만 더 참으면 주말이잖아! 그래, 맘 편하게 영화나 보면서 마시자! 야아 기분 좋다. 역시 나는 절제하는 인간이다.
이렇게 우리 집 와인은 몇 달 더 생명을 연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