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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Oct 11. 2022

하이볼과 <Blue Sands>

오늘 밤의 하이볼은

돌얼음 두 덩이,

레몬 1/4쪽,

진저에일은 반 캔만,

대신 위스키 양을 더 늘렸습니다.


두 종류 액체의 배합일 뿐인데도

비율이 미묘하게만 달라져도 차이가 납니다.

같은 이름의 칵테일이라고 해도 맛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겠지요.

그저 신기합니다.  

하이볼 한 잔으로 취하는 일은 없지만

약간의 취기를 기대하며 위스키 양을 늘렸습니다.

오늘 밤은 그냥 그러고 싶습니다.


위스키가 다 떨어져 가는데

일본 제품이라 그런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롯데마트 외에는

취급하는 곳이 없습니다.


산토리 위스키로 처음 하이볼을 맛보아서 그런지

다른 위스키는 선뜻 손이 가지 않습니다.

잭콕을 만들어보겠다고 사다 놓은 위스키로도

괜찮은 하이볼이 나올까요.


어제는 시네큐브에서 <한여름밤의 재즈>라는 재즈 콘서트 영화를 봤습니다.

1958년 미국 뉴포트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 실황을 담은 영상이었습니다.

솔직히 일부 장면에서는 꾸벅꾸벅 졸았습니다만

(독한 비염약을 직전에 먹었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어봅니다)

아니타 오데이, 셀로니어스 몽크, 치코 해밀턴 같은 재즈 뮤지션들을 알게 되어

비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광화문까지 간 보람이 있었습니다.


필름 영화 특유의 색감과 해상도,

영상 속 연주자들이나 관람객들이 끊임없이 피워대는 담배,

한껏 치장한 옷차림, 음악에 맞춰 춤추고, 마시고, 웃음 짓는 그들에게서

5,60년대 미국 사회의 풍요와 낭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철없던 시절, 과거로 환생(?)하면 살아보고 싶었던 시대가 둘 있었는데

하나는 19~20세기 초반 유럽의 벨 에포크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 시기 미국이었습니다.

이 영상을 보고 그때의 로망이 아주 잠깐 떠올랐습니다.


치코 해밀턴Chico Hamilton 퀸텟의 <Blue Sands> 연주는 정말 사람을 홀리더군요.

재즈에 대해 잘 모르는 내 가슴에까지 파문이 일었으니 거장이 맞겠지요.

잠이 확 달아나고, 심장이 쫄아붙는 것 같았습니다.

드럼이라 하면 쿵쿵 두들겨대는 것만 알았지,

그렇게 강약을 조절해가며 듣는 사람의 귀를 소멸시킬 것 같은 긴장감 넘치는

연주는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유튜브로 찾아서 들었는데

싸구려 이어폰이라 그런지 확실히 극장 음향 시스템에서의 몰입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이제 10월 초반인데 이문세와 더불어 <Blue Sands>를 건져서 만족스럽습니다.

다만 누군가와 함께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외로움을 타는 것 같습니다.

혼자서 유럽 배낭여행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위스키가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들어간 하이볼 때문인지,

어딘가 모르게 서글픈 선율의 ‘파란 해변’ 때문인지,

하루 종일 비염에 시달려 에너지가 소진되어서인지,

기분이 blue합니다.


그래도,

가족들 잘 잠들었고, 글을 쓸 수 있는 노트북이 있고, 헤드셋으로 들어서 귀가 덜 아프고, 마음에 드는 라임색의 따뜻하고 보드라운 카디건을 입고 있고, 조용한 몇 시간이 보장되었고, 이제 드러눕기만 하면 되는 포근한 잠자리가 있으니,


이 정도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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