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by 주드

주말에 부모님 댁에 갔다가, 책 몇 권을 들고 왔다.

결혼하면서 모두 챙겨 왔다고 생각했는데,

보물찾기 하듯 아직도 발견한다.

이번에는 오르한 파묵이랑 니콜 크라우스, 에밀 졸라의 책을 찾아냈다.

지갑 빈약하던 20대 초중반, 하나 둘 사 모은 책들이다.

그때는 마음도 몸도 참 부지런해서 표지 안쪽에 짤막한 감상들을 빼놓지 않고 적어놨었다.

지금 와서 들춰보면, 오래된 일기를 읽는 기분이다.

놀랍기도 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하기도 하다.

물론 언짢을 때도 있다.

비루하고 부끄러운 과거의 기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는 나에게 감탄한다.

‘참으로 진지한 청춘이로구나.’


에밀 졸라의 <작품>을 읽었던 것은 2005년 1월이었다.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다'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당시 2만 원이었던 책값에 대한 압박을 느껴왔던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의 주인공 클로드의 모델이 에밀 졸라의 30년 죽마고우였던 세잔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초판이 출간되었을 때, 세잔은 에밀 졸라에게 절교의 편지를 보냈고,

들은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나지 않았다.


'언젠가는 내가 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환상이 없어도 계속 일에 대한 정열을 가질 수 있고,

세상의 욕설에도 두 발을 꿋꿋이 버티고 서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본문을 인용해놓고는,

슬프고 무기력하다고 적고 있다.

불멸에의 시도가 좌절된 것은 사회에게 책임이 있을까, 아니면 개인에게 책임이 있을까.

누구의 입으로 '재능'을 말할 수 있는가.

지금 다시 읽게 되면 어떤 감상을 갖게 될지.

수년 전 동생이 비엔나에 출장 갔다가, 에곤 실레 전을 보고 왔다.

1918년 이후의 작품이 없는 것에 의아해하던 동생은 옆 전시실에서 실레의 이력을 보고야 까닭을 알았다.

실레는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2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내가 뱃속에 6개월 된 아이를 품은 채 독감으로 사망한 지 삼일 만이었다.


불행과 고난으로 점철된 예술가의 삶과 죽음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일은 참 비겁하고 씁쓸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이 불멸을 얻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마저도 다른 이들에게 영감과 위안과 희망을 주는 삶이란 위대하다.

그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내 삶의 비루함을 사랑하고, 그에 진정성을 담는 것이

남은 자들의, 범인들의 몫 아니겠나.


불멸의 소우주는 그렇게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