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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Mar 15. 2024

시절인연과 기억의 오류

‘시절인연’이라는 말은 야속하게 들린다. 그렇게 절절했음에도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 인연이 못내 아쉬울 테다. 냉랭하게도 들린다. 어차피, 적절한 그 ‘때’에, 적절한 그 ‘장소’에서 적절한 역학이 작동해 맺어졌던 인연이었을 뿐, 적절함이 유효가 다하면 톱니바퀴 분리하듯 떼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게는 ‘시절인연이었다’는 말이 ‘면죄되었다’로 들린다. 죄를 들먹이자니 내가 마치 과거에 몹쓸 짓만 하고 다니고 관계란 관계는 파탄 내어 버리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한껏 과장한 것일 수도, 어쩌면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지나간 시절에 인연들을 돌이켜보면 애틋한 인연보다는 회한으로 얼룩진 인연들이 더욱 또렷이 떠오른다. 마음의 빚을 졌거나, 부끄럽고 비겁한 처사를 벌였거나, 너무도 미욱해서 또는 지금 생각해도 악랄한 마음에 휘둘려서 망쳐버린 인연들. 그 인연들에 대해 여전히 자책하고 되돌리고만 싶은 마음에 고통스럽지만, 내심 그 인연들이 지나가버려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고 안도한다. 그리고 그런 인연들이 지금의 내게 다시 기회를 주고 있다고 믿는다. 지금 이 순간 맺고 있는 인연들 역시 한 시절에 머물게 될지언정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다.  


기억의 오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를 한다. 오류誤謬란 그릇되어 이치에 맞지 않음을 말한다. 여기서 ‘류謬는 ‘그르치다’는 뜻으로 한자를 하나씩 뜯어보면 ‘말씀 언’에 ‘높이 날아갈 료’로 이루어져 있다. 내뱉은 말이 저 높이 저 멀리 날아가버려서 모든 것이 망가졌다는 의미 같다.


기억의 오류란, 사실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손 쓸 새 없이 망가진 사실, 사건, 인연, 나아가 삶 전체를 가장 사적이고도 공식적이고, 가장 유약하면서도 폭압적인 방식으로 뒤엎고 싶은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게 해야 견디어낼 수 있기에, 꾸덕꾸덕 살아갈  수 있기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발행한 면죄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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