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명절에 만나는 이유

by 주드

최근 한국사 검정 능력 시험을 치렀다. 시험 범위는 한반도의 구석기시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변천사였다. “이것은 시험 범위가 없다는 뜻이군요.” 남편은 이렇게 ‘위로’했다. 아마도 유튜브에 전두환 정부의 통일 정책과 관련해서 궁금한 점을 검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부터 내 유튜브 계정에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 영상이 줄기차게 알고리즘으로 뜨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 극적일 드라마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그리고 필요하면 눈물, 콧물도 좀 흘릴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한두 개 넘겨볼 생각이었는데 한밤에서 새벽녘으로 훌쩍 넘어가고 말았다. 같은 처지로 영상들을 클릭한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댓글에서처럼, 나도 “딱 봐도 맞네”를 연신 입 밖으로 내뱉었다. 30여 년의 세월을 가로질렀음에도, 누가 봐도 그들은 서로 너무나 닮아 있었다. 스스로도 한눈에 자신의 닮은 꼴을 알아봤음에도 극도로 조심을 기울이며 존칭어로 대화를 시작했는데, 확신이 클수록 절망감도 깊을 것이라는 두려움에서였을 것이다(이것이 또한 중대한 ‘감상 포인트’라는 걸 어쩌리).


우리는 끊임없이 혈육 간의 닮은 꼴 찾기를 한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혈육이라는 이름의 집단 속에서 서로의 닮은 꼴을 찾아주느라 애쓴다. 어떤 닮은 꼴은 손쉽게 찾아지는데, 어떤 닮은 꼴은 조금 무리한 시도로 짝지어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틀림없이 모든 구성원들은 각자의 닮은 꼴을 갖고 있다. 그렇게 여러 쌍의 닮은 꼴들이 한데 모인다. 일 년에 두어 번 있는 명절에 만나자마자 닮은 꼴 확인부터 한다. 닮은 꼴은 더욱 공고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닮은 꼴 작대기가 바뀌기도 한다.


지난 명절도 마찬가지였다. 닮은 꼴을 확인하며 경이로워하고, 즐거워하고, 양가에서 하나같이 “전쟁 나도 찾을 수 있겠다”는 농담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곁들이며 웃음꽃을 피웠다(80년대 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유산일 테지). 나 역시 항렬을 넘나들며 열심히 닮은 꼴을 찾으며 혈육들과의 친교에 힘썼다.


한때는 닮은 꼴이란 것이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억척스럽게, 고집스럽게 뚫고 나오는, 불가역적인 이 유사성 앞에서 개인은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외모, 성격, 재능, 병력 등등 한 인간의 역사를 결정하는 모든 것이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지 않은가. 그렇게 닮아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닮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혈육임이 분명해 보였던 그 이산가족들처럼, 그토록 못마땅해 마지않던 형질과 특징 들을 너무도 온전하게 이어받았음을 도저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꼭 닮아버린 것이다. 닮은 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애를 써보았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굳은 다짐을 했지만,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에서 나의 닮은 꼴이 보인다거나 혹은 누군가가 “햐아, 어쩜 나이 들수록 똑같아지냐”며 경탄 섞인 말을 하면 이제는 체념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나와 나의 닮은 꼴의 똑같이 못난 꼴을 보면 불쌍한 마음마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으니, 닮은 꼴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기만 하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어려운 도전에 나선 17살 조카를 이번 추석에 만나고 와서, 닮은 꼴의 위력을 더욱 실감하고 있다. 나의 첫 조카, 어릴 때부터 고모, 고모 부르며 유난히 나를 따르던 그 아이가 길고 어둡던 사춘기에서 벗어나 제 앞가림해보겠다고 열심히 살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워 주책맞은 고모는 그 어미와 함께 폭풍 눈물을 쏟았다. 오빠와 나는 어릴 때는 늘 치고받고 싸웠고, 커서는 각자의 생활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데면데면 지내던 오누이였다. 각자 결혼 후에야 조금씩 철이 들어서 서로 가정의 대소사를 챙기기 시작했지만, 지금도 딱히 우애가 좋다고는 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런 오빠의 자식에게, 오빠의 똑 닮은 닮은 꼴에게 이다지도 애닳는 정감을 느낀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이 같은 측은지심을 불러일으켜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라고, 우리는 그렇게나 닮고 또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명절이란 이런 닮은 꼴들이, 낡고 지친 마음을 어디 편하게 둘 곳 없는 이들이 비록 서로에게서 꼴 보기 싫은 ‘자기혐오’를 발견할지언정 절절하고 또 절절한 ‘자기 연민’으로 서로를 감싸안는 날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올해 명절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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