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부터 내린 비는 이 저녁 유리창에 이슬만 뿌려놓고서 밤이 되면 더욱 커지는 시계 소리처럼 내 마음을 흔들고 있네.
이렇게 시작하는 옛 노래가 있다. 사춘기 시절부터 지나간 노래들에 속절없이 끌리곤 했다. 이 노래도 스무 살 무렵에 알게 되어(LP를 틀어주던 찻집에서였거나 그 당시만 해도 거리마다 흔하게 보였던 음반가게에서 틀어놓았던 것을 그 앞을 지나다 우연히 들었을 터였다)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우산 없이 빗속을 헤매는 마음이었다. 이젠 젖은 우산을 펼 수는 없는 것 이라잖은 가.
까마득히 어린 시절이었다. 어렸어도,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사랑과 혐오 같은 삶의 장난을 어찌 몰랐겠나. 한없이 찬란하고도 어리숙했던 그때, 왜 이 노래에 그토록 끌렸던 것인지 모르겠다. ‘남아 있던 기억’과 ‘떠오는 기억’ 사이로 어두운 비를 뿌린다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잘 몰라도 그 빗줄기 속을 우산도 못 펴고 헤매는 심정이 어떨지는 가슴으로 먼저 알았다.
<우산>이라는 글감을 보고, 오랜만에 이 노래를 다시 듣는다. 생각보다 격렬하고, 기억보다 처연하다. 20대 여자가 불렀지만 40대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그때 이후로 ‘많은 시간들’이 흘렀고, ‘많은 기억들’이 쌓였기 때문일까. 당황스러울 정도로 절망감이 너무나 견고하다. 은핫물로 목이 젖은 채 슬피 우는 새 귀촉도처럼, 노래는 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빗물에 갇혀 스스로 흐느낀다.
그럼에도, 한 잔의 술이 그러하듯 오래된 노래는 깊은 위로가 되어준다. 내 처지가 흠뻑 젖은 우산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동안 나의 분신이라고만 생각했던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 어느덧 돌아보니 40대 중반이 되어 있는 주름진 내 모습에, 인생 제2막을 어떻게 꾸리면 좋을지 고민이 깊은 한밤중에. 희망이 없어 보이고 서글픔이 밀려들 때, 절망감과 체념으로 가득한 이 노래는 내가 마음껏 슬퍼하도록 해준다. 마음껏 슬퍼하고, 또 슬퍼하다가 더 이상 슬퍼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게 되어서야 마침내 편안하게 잠을 이룬다.
아침이면 다시 부지런히 움직일 것이다. 젖은 우산이 잘 마르도록 펴놓고, 밝고 차가운 아침 햇살 속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