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여정 Start

by 김민지


눈을 뜨니 아침 7시밖에 되지 않았다. 어제가 몸풀기였다면 오늘부터는 진짜 시작인 것이다.

유럽 전 노선이 한 눈에 보이는 유레일 지도를 펼치니 어디를 가야 좋을지 더욱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오늘 밤까지 프랑크프루트 숙소로 예약해놨는데 어제 웬만큼 프랑크프루트 시내를 쭉 둘러봤으니 오늘부터 유레일 패스를 개시해 근교 도시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최대한 몸을 가볍게 돌아다니게 되었으나 이 때는 내가 생각해도 무식하게 그 큰 등산용 배낭을 등에 메고 호스텔을 나섰다. 한 손에는 기차 지도를 꼭 쥔 채로.

처음 와본 기차역은 분주히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로 이른 아침부터 북적거렸고 전광판에 쓰여진 수많은 행선지는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목적지가 확실하면 출발 시간만 확인하면 문제가 없을 텐데 문제는 나의 목적지를 내가 모른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더 이상 지체되면 안된다는 생각에 가까이에 서있던 철도 직원에게 성큼 다가가 기차 노선도를 펼치며 물었다.

"내가 근교를 당일치기로 여행하려 하는데 당신이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도시가 어디인가요?"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그는 당황하면서 멋쩍게 미소 지으며 곰곰이 생각에 빠진 듯하더니 관광객 입장으로써 어떠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도시는 프랑크프루트에서 기차로 한두 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Mainz와 Mannheim이라고 했다. 그의 대답을 듣고 이번엔 내가 당황한 이유는 두 도시 모두 생전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도시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도상의 거리가 짧아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 것 같긴 했는데 마침 전광판에서 Mainz로 가는 기차가 곧 출발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재빨리 기차에 올랐다.


한국에서도 아주 어릴 때 한두 번 외에는 기차를 타 본 적이 없는데 유럽에서 기차를 타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나중에는 기차를 하도 많이 타고 다녀서 온전히 기차에서만 보낸 시간을 모두 더하면 족히 수십일은 될 듯하다)

내가 처음 탄 그 기차는 두 명 두 명씩 서로 마주 보고 앉는 기차였는데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어떤 훤칠한 남자 한 명이 오더니 내 앞에 마주 앉았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누구와 영어로 제대로 대화해 본 적이 없어서 아직은 누구에게도 섣불리 말을 걸기가 주저되어 열심히 지도를 보는 척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내게 여행 다니는 거냐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이 튼 우리는 같은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동안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리스 태생으로 디미트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대학을 독일에서 졸업하고 직장도 독일에서 구해 아예 이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내 영어의 부족함을 신경 쓸 새 없이 그와 나누는 대화들이 너무 유쾌해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차에서 내려 직장으로 출근하는 그와 아쉬운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어제와 같이 무작정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보도 없이 즉흥적으로 온 만큼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왔는데 아담하고 한적한 그곳에서 내가 생각했던 독일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새삼 내게 이 생소한 곳을 추천해준 직원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어제와 같이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과 뜨겁지 않은 눈부신 태양빛이 도시 전체를 더욱 환하게 보이게 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일부러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 다녔는데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한국보다도 비싼 교통 비용도 절감하면서 아담하고 예쁜 골목 사이사이를 거니는 재미도 훨씬 쏠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서울 같으면 워낙에 넓어서 대중교통이나 차를 이용해야 할 것 같은데 이곳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 도시들은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어딜 가든 거의 걸어 다니고는 했다. 나중에는 각 도시마다 안내소에서 지도를 구해 펜으로 내가 걸었던 거리들을 표시하기도 하곤 했는데 그렇게 하면 도시를 정말 구석구석 '탐험'하는 것만 같은 기분도 들어 좋았다.


도시 간 이동거리가 있어 하루가 길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 빠른 걸음으로 Mainz를 둘러보고 다시 기차역으로 갔다. 2014년도부터는 레일플래너라는 유용한 유럽 기차 노선 검색 어플이 있어 편리해졌지만 이때는 아직 그런 것이 없어 매번 책자를 보며 일일이 확인하거나 기차역 안내데스크에서 물어봐야만 했다. 그래도 안내데스크에 물어볼 경우 목적지만 말하면 직원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일정표를 인쇄해주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번거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Mainz에서 Mannheim으로 가는 기차에 오른 후에는 생각지 못한 이를 만나 놀라는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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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40689.JPG Mainz 도시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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