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배 안고파?

by 김민지

기차역이 여러 개라는 사실도 모른 채 도착한 벨기에 브뤼셀

그동안 독일에서의 기차역들과는 규모나 인파에서부터 달라 정신이 없었다.

나가는 출구조차 찾지를 못해 같은 기차에서 내리던 훤칠한 청년에게 길을 물었다.

첼로 같은 악기를 들고 있는 그에게 음악가냐고 물으니 오늘 밤 Gent라는 도시에서 야외 연주회가 있는데

시간이 된다면 얼마든지 환영이라며 즉석 초대를 받았으나

오늘의 나의 계획을 나도 모른 상태에서 확답을 할 수가 없어 고맙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사진 한번 찍어도 될까?" "Sure!"


이른 아침에 도착한터라 이곳에 얼마나 머무를지는 일단 도시 탐색을 해본 뒤 정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마음에 들면 숙소를 찾아 더 머무르면 되고 별로면 떠나버리지 뭐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 허리에 매는 가방만 남기고 기차역에 있는 락커에 모든 짐을 쑤셔 넣고서는

기차역 내에 있는 사탕가게 직원에게

"나 여기 처음 와보는데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데, 어디가 유명하고 내가 어디를 가야 할까?"

직원의 얼굴에서 얼핏 독일 기차역 직원의 당황스러움이 엿보였다.

흰 노트에 적힌 그녀의 휘갈긴 여러 지명들에 만족하며 기차역을 나섰다.


그녀가 추천해준 곳들 중 Parc de Bruxelles, 브뤼셀 공원이 왠지 먼저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왜 하필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나 있는 공원이 가고 싶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브뤼셀 지도 하나 없이 무작정 내 방향감각에 의존해 길을 걷다 보니

여기가 어딘지 내가 어디를 가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내 앞에서 걸어가던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두 남자 아이에게 길을 물었더니

영어를 못하는 건지 잠시 난감해하더니 나보고 자기들을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벨기에의 공용어가 불어인 것도 몰랐을 정도인 나는 얼마나 무지했던지

한국어 불어 영어 모두 통하지 않는 우리 사이에 맴도는 적막감을 깰 수가 없어

졸졸졸 말없이 따라가는 내내 든 생각은

'아... 고등학교 불어 시간 때 열심히 좀 배워놓을걸... 봉주르밖에 생각이 안 나...'

한참을 골목 이리저리 걷다 어느 순간 멈춘 아이들이 내게 손가락으로 직진 방향을 가리킨다.

"아, 저리로 쭉 가면 된다고?" 끄덕끄덕

내게 길잡이가 되어준 아이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로 한국에서 사온 열쇠고리를 건네니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저 멀리 사라져갔다.


다시 혼자가 되어 케밥집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케밥집 앞의 기둥에 기대어 서있던 20대 중반 정도 되보이는 남자가 갑자기 내게 말을 걸었다.

"너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너 배고프지 않아?"

'뭐지 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은?' 성진 아저씨가 만들어준 아침 먹은 지 대여섯 시간이 지나긴 했는데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 거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왜라고 물었다.

"나 케밥 먹으려고 하는데 내가 사줄 테니까 같이 먹자"

내 의사를 묻는 의문문도 아닌 반명령조의 어이없는 제안에 웃음이 나왔다.

좁은 케밥 가게 안에 마주 보고 앉아있으니 곧이어 주문한 케밥이 나왔다.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파는 케밥이랑은 다른 생김새의 길쭉한 모양이었는데 뭐야 이거 진짜 맛있잖아!


26살이라는 이즈마엘이 내가 물었다.

"여기는 뭐 때문에 왔어?"

"그냥 유럽 여행 다니는데 벨기에는 처음 와봐. 사실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들에 비해서 좀 생소하기도 해. 옛날에 학교 다닐 때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로 이루어진 베네룩스라는 동맹에 대해 배운 적이 있거든? 그때 무슨 나라인가 궁금하긴 했는데 사실 그 뒤로 별로 관심 없다가 왠지 와봐야만 될 것 같더라고."

"나도 우리나라 잘 몰라 하하. 벨기에 와플이랑 초콜릿이랑 홍합 유명한 건 알지?"

"와플이랑 초콜릿은 들어봤는데 홍합은 처음 들어보는데. 유명한 거 맞아?"

"관광객들 여기 오면 다들 홍합도 먹으려고 해! 벨기에 언제 왔어?"

"나 사실 방금 왔는데. 오늘 아침에 독일에서 기차 타고 왔어."

"너 아직 어려 보이는데 학생이야?"

"응, 한국에서 대학생이야. 우리나라에선 대학생들이 방학 중에 여행 많이 다니거든. 너도 학생이야?"

"아니, 난 집 수리하는 일 하는데 오늘은 쉬는 날이야. 나 근데 딸도 있어."

"에 진짜? 너도 아직 젊은 편인데 딸이 있구나. 몇 살인데?"

"2살인데 진짜 예뻐. 사진 보여줄게."

이 남자 왠지 팔불출일 것만 같다. 유럽 애기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그런가 인형같이도 생겼네

애기 아빠라서 그런지 처음에 느꼈던 경계심이 확 풀어졌다

"진짜 예쁘다! 나중에 남자들이 좋다고 많이 달라붙을 거 같은데 너 조심해야겠다 하하. 아 근데 너 왜 아까 나한테 뜬금없이 배고프냐고 물어봤어?"

"왠지 배고플 것 같아 보여서. 그리고 같이 먹으면 뭔가 덜 심심하잖아."

"뭐야, 나 그렇게 배고픈 거 아니었거든. 길가는 사람한테 뜬금없이 그렇게 물어보면 되게 이상한 사람 같잖아."
"나 이상한 사람 아닌데. 이상한 사람 같아?"

"이렇게 예쁜 딸을 둔 아빠라니까 좀 덜 이상해 보이긴 한다."

"나 이거 먹고 스케이트보드 타러 가려했는데 여기 앞에 스케이트 파크 있거든. 너도 같이 갈래? 내 친구들도 많고 재밌어."

"스케이트보드? 나 예전부터 배워보고 싶었는데 한 번도 안 타 봤어. 너 잘타?"

"나 완전 어릴 때부터 계속 탔었는데 지금도 매일 타. 그래도 좀 탄다고 할 수 있지. 너도 타 보고 싶으면 타 봐. 나나 내 친구들이 타는 법 알려줄게."


왠지 오늘도 예상하지 못한 인연으로 인해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보다는 더 큰 설렘을 안고 우리는 케밥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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