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파크 in Bruxelles

by 김민지

이렇게 날 좋은 날 공원에 가서 여유 있게 드러누워 있어야지 했던 내 생각과 달리

얼떨결에 나는 그와 함께 브뤼셀 시내 근처의 스케이트파크에 다다랐다.


중고등학생부터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이들까지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으나 아시아인은 보이지 않았다.

이즈마엘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보아 인맥이 꽤 넓은 사람인가 보다.

하긴 매일같이 여기에 온다니 그럴 만도 했다.

그의 친구들이 뒤에 붙어있던 내 존재를 의식하고는 그에게 내가 누군지 묻는 듯했다.

뭐라는지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으나 나 대신 나를 잘 소개해 준 것 같았다.

그들에게 갑작스러운 불청객일지도 모르는 나를 웃으며 진심으로 환대해주어 고마움을 느꼈다.

막스와 마티스와 지미 데미안 등등 그들 모두는 한눈에 봐도 엄청난 스케이트보드 실력의 소유자들이었다.

한참을 스케이트보드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는 그들 모습에 감탄하고 있는데

마티스가 발끝으로 나에게 스케이트보드를 밀었다.

"나보고 타라고? 에이, 나 한 번도 안 타 봐서 못타."

"그럼 내가 가르쳐줄게. 한번 시도해봐. 재밌을 거야."

그는 어린 학생들에게 스케이트보드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했다.

한국에 있을 때 친구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을 보고 언젠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벨기에에서 스케이트보드강사에게 직접 배워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게 당연했다.

아기가 걸음마를 떼듯, 그의 두 손위에 내 두 손을 얹어 아주 조심스럽고 천천히 나아가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 할 때마다 힘이 쫙 들어가는 그의 손 덕분에 간신히 모면했다.

관광객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듯 보이는 그곳에서 한 무리의 벨기에 사람들에 섞여 스케이트보드를

'타고자 노력'하는 낯선 아시아인 여자가 신기한지 여기 저기서 계속 힐끔거리며 나를 지켜보는 통에

조금은 부끄러움과 동시에 나 역시 이 상황이 재밌게도 느껴졌다.


스케이트파크 아래의 기찻길로 벌써 여러 대의 기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빠르게 지나가는 사이

해도 뉘웃뉘웃 지고 있었다.

브뤼셀에 도착한 첫날에 그 어떤 관광명소도 가보지 못한 채 말이다.

스케이트파크의 높은 계단과 철창 사이로 저무는 해를 감상하고 있을 때

이제는 나의 친구들이 된 그들도 슬슬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즈마엘이 내게 물었다.

"너는 숙소가 어디야? 데려다 줄게."

"나 사실 숙소를 아직 안정해서. 오늘 원래 브뤼셀에서 유명한 곳들을 전부 구경하고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거든."

"어디로 떠나려고 했는데?"

"아마도 암스테르담?"

"설마 지금 간다는 건 아니지? 거기 도착하면 완전 어두울 텐데."

"오늘 너를 만날 줄도 몰랐고 여기서 이렇게 오랜 시간 있을 줄도 몰랐어서 그냥 떠나긴 아쉬우니까 일단은 여기서 하루 머물어야겠어."

우리의 대화를 함께 듣고 있던 막스가 말했다.

"저기 바로 위에 내가 일하는 가게가 있는데 거기에 소파랑 담요도 있으니까 거기서 자도 돼. 나도 종종 거기서 자기도 하고 그러거든."

뜻밖의 제안에 '오늘도 운이 좋구나'라는 생각으로 고맙다고 얘기하는데

바로 마티스가 말했다.

"우리 집도 여기 근처인데 나는 여자친구랑 같이 살아. 너라면 그녀도 좋아할 테니까 우리 집에서 자는 게 어때?"

먼저 제안한 건 막스였는데 어쩌지 싶어 순간 난감해졌다.

둘의 얼굴을 살펴보니 막스는 '네가 원하는 대로'라며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으나

마티스는 내가 왠지 꼭 가야 될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그럼 막스 너한테도 정말 고맙긴 하지만 마티스네 집으로 갈게. 그리고 이즈마엘, 나에게 말을 먼저 걸어준 것과 나를 여기로 함께 데려와줘서 너무 고마워. 너를 못 만났다면 오늘같이 인상 깊은 하루는 없었을 거야!"


그렇게 모두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마티스와 함께 마티스네 집으로 가는 길에

티스는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밤 집에 머물 '손님'과 함께 간다는 얘기를 했고

집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에도 들러 '맛은 별로지만 제일 싸니까' 즐겨 마신다는 맥주를 10캔 샀다.

스케이트파크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그의 집까지 걸어가는 중 그가 내게 말했다.

"아까 막스를 따라갔으면 위험했을 지도 몰라."

"그게 무슨 말이야?"

"아까 막스가 너한테 자기 가게에서 자도 된다고 제안하기 전에 다른 애한테 얘기하는 거 얼핏 들었는데 너랑 자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네가 마침 숙소가 없다고 하니 그렇게 제안하는 것 보고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가 얼른 얘기했어."

세상에... 정말 그때 마티스가 아니었다면 오늘 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내게 그렇게 친절하고 웃는 얼굴이던 막스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엄청난 충격과 함께 그런 위험을 모면하게 도와준 마티스에게 더욱 한없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자 마티스는 손사래 치며 웃으며 말했다

"네가 막스를 따라가지 않고 나를 따라와줘서 내가 더 기쁘고 고마워."


스케이트파크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쭉 올라와 왼쪽으로 꺾어 다시 위로 쭉 올라온 높은 경사의 언저리에 위치한 마티스의 집에 우리는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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